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이 있다? 윈도우 페인터 ‘나난’의 ‘그림같은 삶’ 속으로

올댓아트 송지인 인턴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3.20 16:08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3.20 16:28

■ 나난 개인전 : The Pictorial Life <그림같은 삶>, 잠실 에비뉴엘 아트홀, 2019년 3월 31일까지.

전시 전경. |에비뉴엘 아트홀

마음이 따뜻해지는 전시였습니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식물과 꽃처럼, 싱그러운 설렘이 마음속에서 몽글몽글 피어납니다. 나난 작가의 진심을 담은 ‘그림같은 삶’의 이야기, ‘Pictorial Life’를 찾아 그의 작품을 감상한 이들은 하나같이 이번 전시에 대해 ‘힐링’되는 전시라 평했습니다. SNS에 그의 이름과 작품명을 검색하면 칭찬일색의 글로 피드가 채워집니다. 도대체 나난 작가와 그의 작품에는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요.

나난 작가와 그의 작품 ‘롱롱타임플라워’.|스피커

국내 최초 ‘윈도우 페인터’로도 유명하지만,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롱롱타임플라워’를 비롯해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작품들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나난 작가. 꽤 오랜 기간 작가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개인전을 열지는 않아 많은 팬들이 아쉬워했었는데요. 오랜 고민 끝,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나난 작가의 첫 개인전 현장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난 작가의 윈도우 페인팅 작품들. 왼쪽은 N서울타워, 오른쪽은 예술의전당.|나난 작가 홈페이지

MNET <윤주의 봄날>에서 공개된 나난 작가의 윈도우 페인팅 작품.|나난 작가 홈페이지

나난, LONG LONG TIME FLOWER NO.191_2019_종이 위에 과슈 채색, 오리고 고정, 픽사티브_무반사 유리, 미송 프레임_프레임 700 x 840 mm (내부 540 x 680 mm) |스피커

특유의 조곤조곤한 말투로 자신의 작품 세계와 인생에 대해 말하는 나난 작가는 글자 그대로 평온하고, 진솔한 인물이었습니다. 상투적인 질문에 오히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하는, 꾸밈없고 솔직한 모습의 그에게서 진정한 예술가의 면모가 돋보였습니다. ‘나난’이라는 사람을 그대로 전시한 듯 전시 공간 곳곳에는 그림과 사람, 자연을 향한 그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는데요. 오늘은 나난 작가와 함께 둘러본 그의 ‘그림같은 삶’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전시 전경.|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우아하고 고상해서 그림같은 삶이라는 게 아니에요.
제 인생의 모든 아름다운 순간에 그림이 있었기에
‘그림같은 삶’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저는 그림과 함께하는, 그림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살았으니까요.”
- 나난 작가와의 인터뷰 중에서 -

에비뉴엘 아트홀 전경.|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서울 잠실역에 위치한 롯데월드타워.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내려 조금 걸어가면 에비뉴엘 아트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나난 작가의 첫 개인전 ‘The Pictorial Life : 그림같은 삶’이 열리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에비뉴엘 아트홀 전경과 전시 포스터.|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전시장에 들어서면 좌측에 전시 소개 글이 적혀 있습니다. 사이이다 작가가 촬영한 나난 작가의 사진도 걸려 있습니다. 나난 작가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번 전시를 보게 된다면, 이 공간의 글을 꼭 읽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전시 공간은 5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섹션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져 있습니다.

전시 소개 글 전경. |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정면에는 ‘Nanan’s flower shop’이라고 적힌 부스가 보입니다. 그런데, 이 꽃집의 ‘알바생’이 어딘가 낯익습니다. 나난 작가입니다.

‘Nanan’s flower shop‘ 전경, 나난 작가가 아르바이트(?) 중이다. |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Nanan’s flower shop’, 이름 그대로 ‘나난의 꽃집’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 네. 꽃집이에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엽서나 노트 같은 것보다, 저만 보여줄 수 있는, ‘나난’만의 굿즈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꽃집을 차리게 되었어요. 제 작품 ‘롱롱타임플라워’를 소장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사실 작품이라는 건 한 사람만을 위한 소장품이잖아요. 그런데 요즘 시대는 ‘공유 경제’ 시대거든요. 그래서 작품을 소장하는 기쁨을 많이 분들이 공유하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롱롱타임플라워’를 파는 꽃집을 만들었어요.

관람객이 구매한 꽃을 직접 포장하는 나난 작가. |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꽃을 전부 직접 포장하시고 계시네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 반응은 좀 어떤가요?
: 요즘은 SNS를 통해서 바로바로 알 수 있잖아요.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를 달아서 올라온 사진들을 보면 저도 놀라요. 같은 꽃인데도 꽃병의 형태, 집의 분위기, 꽃을 어떻게 조합했느냐에 따라 정말 다양한 모습이 연출되거든요. 꽃꽂이 콘테스트를 열어야 하나 싶을 정도에요. 제가 나와서 포장도 하고 사인도 계속하다 보니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이 꽃집에서의 활동이 하나의 퍼포먼스가 되는 것도 즐겁고, 와주시는 분들께서 너무 좋아해 주셔서 기뻐요.

전시 전경.|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나난 작가의 꽃집 왼편에는 그가 그림과 함께 해온 삶의 기록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가운데 진열대 위에 나난 작가가 실제 작업을 할 때 사용한 물감, 가위, 천, 오브제 등이 보입니다. 작가는 이 진열대를 하나의 작업 책상처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이중 작은 메모가 눈에 띕니다. 그가 이번 전시 출품작을 고르기 위해 고민하던 중 찾아낸 메모에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어린 시기, 오랜 절친인 사이이다 작가에게 전한 말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 19살이었다는 작가의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림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애정이 느껴집니다.

전시 전경.|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나는 지금 너무 어려서 내가 무엇이 돼야 할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
하루를 살더라도 내 꿈에 떳떳해지고 싶다.
환경을 탓하며 내 꿈에 나태해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항상 스케치북과 연필을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 지금, 그리고 먼 미래에 내 모습에
부족함이 없게 노력할 것이다.”
- 나난, 전시품 메모 내용의 일부 -

나난 작가의 오브제와 원화들.|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나난 작가가 작업에 사용한 도구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광고 창작을 전공한 객원 기자. 그것이 나난 작가의 첫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그림을 향한 애정과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잡지사 기자로 취직한 그곳에서 일러스트레이터 활동도 병행하게 됩니다. 국내 최초의 ‘윈도우 페인터’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입니다.

작가의 삶의 기록이 담긴 물건들.|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광고 창작을 전공하셨어요. 객원 기자로서의 시작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 제가 처음 일한 잡지 매체에서 취재하고자 했던 주제가, 그 시대 젊은 층의 하위문화에 관한 것이었어요. 테크노 클럽, 언더그라운드 클럽, 펑크 밴드, 피어싱, 타투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그 잡지 매체의 편집장님이나 기자분들께서 다들 30대 중반 이상이셨거든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런 문화가 익숙하지 않으니 좀 더 젊은 객원 기자를 쓰자”라는 의견이 나온 찰나에 우연히 저를 알게 되신 거예요. “서울예대에 웬 날라리 같은 애가 있는데 피어싱도 하고, 걔가 클럽도 다 안대” 하고요(웃음). 그런데 저한테는 그 일이 취재라기보다, 그냥 제 친구들 인터뷰하면 되는 거였죠.

그런데 작가로 전향하셨네요.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사랑했어요. 그림 그리는 것을요. 그런데 이 취재가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다 보니 편집장님께서 입사를 권유하셨어요. 정말 고민했죠. ‘나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덜컥 기자가 되어버리면 내 꿈은 어떡하지?’ 그래서 편집장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갑자기 포트폴리오를 가져오라고 하시더라고요. 포트폴리오라고 하기도 창피한 그림 몇 개를 가져가서 보여드렸더니, 기사와 함께 실릴 일러스트 그림을 그리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기사도 쓰고, 기사에 어울리는 그림도 그리게 된 거죠. 그게 기자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나난의 시작이었어요. ‘특별한 계기’랄 것은 없어요.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제 꿈을 놓지 않았을 뿐이에요.

기자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던 매거진의 단행본.|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나난 작가의 삶의 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 공간에서는 그가 처음 매거진의 기자로 활동했을 때부터 이후 완전히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 현재까지의 기록이 그의 그림과 함께 남아 있습니다. 나난 작가는 자신의 인생을 ‘그림’ 없이 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제목이 <그림같은 삶>입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그림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나난 작가가 ‘윈도우 페인터’로서 처음 활동할 때 여행 가면 들고 다녔던 포트폴리오도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때 당시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여서, 윈도우 페인터라는 직업에 대해 설명하기가 애매했다고 합니다. 해외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윈도우 페인터’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기에, 그는 자신이 페인팅한 창문 사진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항상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윈도우 페인팅 작품 사진이 담겨 있는 포트폴리오.|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지금까지 작가님의 삶의 기록이 이 전시장에 모두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에디터, 일러스트 작가, 윈도우 페인터까지 쭉 이어지는 기록들이요.
: 제가 에디터로 활동했던 잡지의 단행본도 있고요. 그때 찍었던 사진이나 당시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도 있죠. 여기 있는 페인트 마커는 제가 처음 윈도우 페인팅을 할 때 썼던 거예요. 친구가 “페인트 마카라는 게 있는데 한번 써볼래?”라고 해서 쓰다가, 우연히 창문에 그렸는데 너무 잘 접목이 되고 잘 어울렸던 거죠. 그래서 윈도우 페인팅에 이 마카를 쓰게 되었는데, 이 회사에서 지금은 이 마카를 ‘페인트 마커’라고 하지 않고 ‘윈도우 마카’라고 해서 팔더라고요.

나난 작가가 사용했던 페인트 마카. 지금은 ‘윈도우 마카’라는 이름으로 팔린다.|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그만큼 윈도우 페인팅이라는 작업을 카피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겠네요.
: 네. 쉽게 따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윈도우 페인팅이라는 작업을 처음 시작한 오리지널 작가로서, 이 작업이 긍정적인 의미로 확산되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캠페인을 시작했죠. 공익적인 의미를 담으면서도, 미술을 전공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윈도우 페인팅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한마디로, “따라 할 거면 다 따라 해라!”

누구나 쉽게 윈도우 페인팅을 할 수 있는 <나무는 베어지지 않았고 트리는 만들어졌다> 캠페인 키트.|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나난 작가가 말한 윈도우 페인팅 캠페인 중 하나인 <나무는 베어지지 않았고 트리는 만들어졌다>. 모양자와 펜, 스티커를 넣은 키트를 제작해, 창문에 모양자를 대고 펜으로 따라 그리면 누구나 쉽게 멋진 트리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 위에 스티커를 붙이면 친환경적이고 아름다운 트리가 완성됩니다. 이 프로젝트 키트가 진열된 바로 위에는 나난 작가의 또 다른 대표 프로젝트, ‘나난 가드닝’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나난 가드닝 현장 사진들.|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나난 가드닝’ 프로젝트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요?
: 작업실에서 남산이 가까워서 아침에 산책 가는 것을 즐겨요. 어느날 산책길에서 우연히 잡초를 보고 ‘나난 가드닝’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았는데, 혼자서 계속 자라고 있더라고요. 눈길이 갔죠. 그런데 잡초라는 것이 다년생이 아니라 겨울이 되면 죽어서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제 그림도 시간이 흐르면 지워져야 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쉽게 지워지는 아크릴 물감이라던가 크레파스로 칠했어요. 식물 없는 맨바닥에 했던 것도 있죠. 작업실 앞 골목길에 ‘일방통행’이라는 글자가 많이 지워져서 문제가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이 위에 글자를 다시 칠했는데, 그게 용산구청에 보고가 되었죠. 얼마 후에 구청에서 이곳을 말끔하게 정비해주셨어요.

나난 가드닝 현장 사진들.|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나난 작가가 이태원이라는 곳에 펼친 예술 활동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친구인 사이이다 작가와 정신 작가와 함께 ‘이태원 주민 학교’를 세웠습니다. 서울시의 인큐베이터 사업에 선정되어, 그림 그리기, 윈도우 페인팅에 대해 강의했다고 하는데요. 이후에는 이태원에 사는 많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태원 주민일기’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자랑스러운 용산구민’상까지 받은 이 프로젝트는 전국의 시, 군, 구청이 앞다투어 벤치마킹했을 정도로 성공한 지역사회개발 사례로 꼽힙니다.

<이태원 주민 학교>와 <이태원 주민 일기> 단행본.|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나난 작가는 수많은 브랜드와 활발히 협업해왔습니다.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의 기업들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는데요. 전시장에는 나난 작가가 그간 선보여 온 콜라보 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완성품만 진열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난 작가의 이번 전시에서는 콜라보 제품에 쓰인 원화도 함께 공개됩니다. 모두 나난 작가가 손으로 그린 그림들입니다. 그는 두 번 세 번 더 손이 가더라도,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린 후 스캔을 받아서 벡터 작업으로 환원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화장품 브랜드 록시땅과 콜라보한 제품과 원화.|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화장품 브랜드 웨이크메이크와 콜라보한 제품과 원화. 스티커 한 장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수북히 쌓일 정도로 많은 원화를 그렸다.|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정말 많은 브랜드와 협업하셨어요. 숨겨진 비하인드스토리 같은 것들이 있는지 궁금한데요.
: 록시땅 같은 경우는 한국 지사가 아니라 프랑스 본사에서 직접 연락이 와서 핸드크림에 입힐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신세계의 SSG(쓱) 홍보물과 상품 배송 차량에 그려져 있는 그림도 제 작품인데, 저희 엄마가 제일 좋아하시는 콜라보 작품이죠(웃음). 원래는 이런 분야에 대해 잘 모르시는데, 이마트를 가면 제 그림이 걸려 있고, 전국을 누비는 배송 차량에 제 그림이 그려져 있으니까요. 아모레퍼시픽과도 협업했었는데, 제가 조금 더 연령이 낮았을 때는 라네즈 제품 커버에 입힐 그림을 그렸고, 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서는 아이오페 제품 커버의 그림을 그렸죠. 그런데 라네즈 제품이 중국과 홍콩에서 인기가 정말 많았었어요.

유통 브랜드 SSG와 콜라보한 포스터 이미지. 배송 차량에도 나난 작가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화장품 브랜드 라네즈, 아이오페와 콜라보한 제품.|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왼쪽부터) 화장품 브랜드 라네즈, 아이오페와 콜라보한 제품.|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중국과 홍콩이요? 어떤 접점이 있었나요?
: 그때 송혜교 씨가 이 제품의 광고모델이었는데, 이 콜라보 제품을 들고 촬영한 CF가 중국에서도 전파를 탔거든요. 그런데 그걸 보고 홍콩의 월드트레이드센터 광고주가 “송혜교가 들고 있는 저 제품의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냐”고 수소문해 저를 찾으셨고 홍콩에 초청해주셨어요. 월드 트레이드 센터 4층 백화점을 빙 둘러싼 거대한 창문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림 그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센터 측에서도 홍보를 해야 하니까 인터뷰를 해달라고 했는데, 중국의 보도 매체가 워낙 많잖아요. 아침에 그림 그리러 나가기 전에 인터뷰를 거의 매일 했죠. 그 프로젝트를 진행한 2개월 동안의 인터뷰 횟수만 대략 60번이었어요.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 중 하나였죠. 작업에 대한 프라이드도 올라갔지만 육체적인 고통도 상당했어요.

나난 작가가 윈도우 페인팅한 홍콩 월드 트레이드 센터 내의 트리.|나난 작가 홈페이지

‘롱롱타임플라워’가 지금까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변천사가 원화와 함께 진열된 코너도 있습니다. 진열된 원화를 감상함으로써, 나난 작가가 작품 하나를 창조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그림을 그렸는지, 그 긴 노고의 시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순한 프린트물이었다면 이토록 깊은 인상을 주지는 못했을 텐데요. 그렇기에 이번 전시를 ‘감동적인’ 전시라고 평하는 이들이 많은 듯합니다. <그림같은 삶>은 이미 SNS 상에서 ‘힐링’ 전시로 호평이 자자합니다. 굿즈인 ‘롱롱타임플라워’와 함께 한 인증샷에는 ‘힘든 삶에 위로가 된다’, ‘마음속 상처가 치유받는 기분’ 등의 코멘트가 항상 따라붙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관람객의 반응이 기적같이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롱롱타임플라워’의 변천사.|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롱롱타임플라워’ 원화와 최근 작품.|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후기를 보면 너무 아름다운 전시였고, 힐링 되는 기분이었다는 말이 많아요. 특히 포토존이 굉장히 유명하더라고요.
: 너무 감사한 일이죠. 저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기뻐요. 그런 행복한 감정들이 그대로 그림에 녹아들어서 관람객분들이 그것을 온전히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사실 이건 일부러 포토존으로 만든 건 아니었어요. 제 작품 중에 이런 리스 모양의 그림이 있어서, 크게 하나의 설치 작업 형태로 만든 거예요. 그런데 관람객분들께서 포토존으로 쓰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모습들이 너무 좋아요. 저는 여기 오신 분들이 벽에 그린 그림만 보고 가시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림 안에서 같이 사진도 찍고, 자신만의 ‘롱롱타임플라워’도 사서 집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으로 가져가고, 그렇게 ‘그림같은 삶’을 각자의 스타일대로 자신의 삶 속으로 가져가는 그런 걸 정말 원했거든요.

(왼쪽부터) 나난 작가의 ‘롱롱타임플라워’ 작품(LONG LONG TIME FLOWER NO.190_2019_종이 위에 과슈 채색, 오리고 고정, 픽사티브_무반사 유리, 미송 프레임_프레임 700 x 840 mm (내부 540 x 680 mm)), 해당 작품을 전시장에 설치 작업 형태로 전시한 모습.|스피커, 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나난 작가의 윈도우 페인팅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네모난 나무틀 안의 유리에 그린 그림들은 이번 전시를 위해 그가 새롭게 그린 것으로, 평소 즐겨 그리는 그림체와 소재를 그대로 살렸습니다. 커다란 안경을 형상화해 설치한 작품들도 눈길을 끕니다. 나난 작가는 안경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사람의 몸에 쓰인 어떤 창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느낌을 살려 전시장을 채워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가 윈도우 페인팅의 매력에 끌렸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갤러리나 미술관같이 꼭 시간을 내어 가야 하는 공간이 아닌, 일상 속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한쪽 벽에는 그가 작업한 윈도우 페인팅 작품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왼쪽부터) 전시 전경, 장윤주 모델의 사진 아래에는 그에게 감사를 표하는 캡션이 붙어 있다.|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전시 전경.|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그간 윈도우 페인팅 작업을 굉장히 많이 하셨는데, 공개된 사진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 네. 정말 많은 작업을 했지만, 다 전시하면 감상에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아 이 정도 사진만 전시하기로 했어요. 그 많은 작업물만큼이나 사진 아래의 캡션이 저에게는 참 의미 있어요. 제 모든 작업은 혼자 이루어낸 것이 아니에요. 너무나 제 작업을 즐겨주는, 어릴 때부터 함께 해온 저의 뮤즈 장윤주 모델, 처음 윈도우 페인팅을 할 수 있게 창문을 내준 친구 정신 작가, 그리고 뉴욕에 가서 무작정 창문에 그림을 그리겠다고 포트폴리오를 내밀 때 함께 다녀 준 사람들까지. 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어요. 그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왼쪽부터) 전시 전경, 윈도우 페인팅 작품 상세 모습.|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전시장을 환하게 밝히는 ‘롱롱타임플라워’가 벽면에 일렬로 걸려 있습니다. 다채로운 색감과 아름다운 형태에 감탄이 절로 나는데요. 작품의 탄생기가 흥미롭습니다. 가장 가까운 지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소장했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었던 나난 작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작품을 소장한다는 개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하는데요. 친구의 웨딩 촬영에 그림 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선물했더니, 그가 기뻐하며 “이건 영원히 시들지 않는 부케네요!”라고 한 말에서 지금의 ‘롱롱타임플라워’라는 이름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롱롱타임플라워’ 시리즈 전시 전경.|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롱롱타임플라워’ 시리즈에서 공통적으로 열대 지방의 식물이나 꽃의 모양이나 색감이 많이 느껴지는데요.
: 단순히 제가 열대 지방의 식물이나 꽃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처음에 잡지 일러스트를 그릴 때도 그렇고, 윈도우 페인팅할 때도 제가 색상을 사용하지 않았거든요. ‘롱롱타임플라워’도 초기에는 검은 선으로만 그렸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시리즈를 통해 다양한 색상의 활용을 보여주게 되었는데,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서 생긴, 제 안에 있는 어떠한 색채의 느낌이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 것이겠죠. 하지만 특정 색채에 대한 선호가 어떤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저도 조금 더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아요.

나난, LONG LONG TIME FLOWER NO.185_2018_종이 위에 과슈 채색, 오리고 고정, 픽사티브_무반사 유리, 미송 프레임_프레임 700 x 840 mm (내부 540 x 680 mm) |스피커

과거의 경험이 작품 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시나요?
: 처음에는 몰랐어요. 예전에 누군가 “왜 이 투명한 창문에 열광을 하느냐”라고 질문했을 때, 저는 모든 건물의 창문이라는 존재가 다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대답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난 것이 ‘필름지’였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저에게 아버지가 애니메이션 공장에서 쓰고 남은 애니메이션 필름지를 가져다주셨거든요. 남들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릴 때 저는 애니메이션 필름지에 그림을 그렸어요. 그 필름지 위에 스머프가 그려져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제가 투명한 무언가 위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어쩌면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을 텐데, 그러한 경험들이 윈도우 페인팅을 시작하게 된 지금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전시 전경.|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시리즈 중 백자에 담긴 꽃이 눈에 띕니다. 나난 작가는 백자, 청자와 같은 우리나라 고유의 아름다움이 담긴 도자기를 좋아한다고 하는데요. 이를 작품에 담아내는 것 또한 그의 꾸준한 관심사였습니다. 그래서 최근의 ‘롱롱타임플라워’ 시리즈 작품 속에는 백자가 자주 등장합니다. 나난 작가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작품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민화에 등장하는 붓이나 책이 그의 ‘롱롱타임플라워’에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이국적인 느낌의 색상과 동양 문화를 상징하는 물건, 꽃의 형태가 만나 오히려 묘한 매력을 뿜어냅니다.

(왼쪽부터) 나난, LONG LONG TIME FLOWER NO.189_2019_종이 위에 과슈 채색, 오리고 고정, 픽사티브_무반사 유리, 미송 프레임_프레임 700 x 840 mm (내부 540 x 680 mm), 나난, LONG LONG TIME FLOWER NO.186_2018_종이 위에 과슈 채색, 오리고 고정, 픽사티브_무반사 유리, 미송 프레임_프레임 700 x 840 mm (내부 540 x 680 mm) |스피커

고려청자를 그린 작품 전시 전경.|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전시 출품작 중에는 나난 작가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것을 소재로 한 그림들도 있습니다. 혹은 정말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그려, 소유욕을 해소하기도 했습니다. 고려청자, 꽃, 협재 해변, 수영장, 저녁노을, 식사 시간의 모습까지, 작가의 개인적인 관심사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습도 모두 화폭에 담았습니다.

전시 전경.|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왼쪽부터) 나난, 협재 해변 Hyeopjae beach_2018_종이 위에 과슈 채색, 오리고 고정, 픽사티브_무반사 유리, 미송 프레임_프레임 360 x 460 mm (작품 270 x 390 mm), 나난, 커피 한 잔 a cup of coffee_2018_종이 위에 과슈 채색, 오리고 고정, 픽사티브_무반사 유리, 미송 프레임_프레임 360 x 460 mm (작품 270 x 390 mm) |스피커

전시장 가장 안쪽에 있는 ‘기도의 방’이라는 공간이 독특한데요. 어떤 의도로 만드신 건가요?
: 저는 아침마다 기도를 하는 습관이 있어요. 꼭 아침만이 아니라 모든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기도를 통해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흐르게 할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요. 그런데 누구나 사실 생각했던 것을 잊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 과정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한 방이에요. 한쪽에 십자가와 성경 책 같은 것을 두면 제 생각을 정리했던 기도를 잊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원래 이 공간의 이름은 ‘기도를 돕기 위한 그림들’이었어요. 방까지는 아니지만, 실제로 저희 집에도 이런 공간이 있어요. 유럽에 가면 집안에 그런 공간이 항상 있던데, 저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기도를 할 때의 저처럼, 이 ‘기도의 방’은 관람객분들이 한 템포 쉬어가는 공간,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전시장 가장 안쪽에 위치한 ‘기도의 방’.|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인터뷰를 마친 후 나난 작가는 서둘러 그의 ‘꽃집’으로 돌아가 다시 꽃을 포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인도 잊지 않았습니다. 작가를 기다리고 있던 관람객들에게 인사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는데요. “관람객과 소통을 많이 하는 것 같다”는 말에 외려 당황하며 “그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답하는 작가에게서 그림과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꽃을 포장하고 있는 나난 작가. 관람객과 대화하며 |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저는 지금의 ‘나난’도, 이 전시도 오직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고 싶지도 않고요.
지금까지 저를 응원해주고 저와 함께 해준 모든 이들, 이 전시를 열 수 있게 도와준 모든 분들,
그리고 이곳을 찾아주신 관람객분들까지 모두가 함께 완성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 나난, 작가 인터뷰 중에서 -

나난 작가와 그의 ‘롱롱타임플라워’ |사진 올댓아트 송지인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앞으로 더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오실 텐데요. 개인전을 여는 작가로서 예비 관람객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제 전시는 모든 분들에게 열려 있어요. 특히 ‘전공이 다르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려고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용기를 드리고 싶어요. 제 과거의 작업과 원화들, 제품을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사실 부끄럽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과 함께 했던 그 모든 기록들을 이렇게 내보이는 이유는, 그런 분들에게 “나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 이렇게 원하던 꿈을 이루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에요.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적으로 가져야 했던 직업도 놓지 않고, 제가 정말로 사랑하는 ‘그림 그리는 것’도 놓지 않았기 때문이죠. 전공을 한계치로 두지 마시고, 무엇 하나만 선택하려고 하지 마시고,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겁고 기쁜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찾아가시는 시간을 꼭 가져보시기를 바라요.

왼쪽은 윈도우 페인팅 작업을 하는 나난 작가의 모습, 오른쪽은 그의 작품 <행복에 관하여> (행복에 관하여 about happiness_2018_종이 위에 과슈 채색, 오리고 고정, 픽사티브_무반사 유리, 미송 프레임_프레임 460 x 360 mm (작품 390 x 270 mm))|스피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사람이고 싶다는 나난 작가. 그가 꽃집을 찾은 어린이 관람객에게 했던 말이, 전시장을 가득 메운 행복한 기운과 함께 긴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 재미있나요?
그래요. 그림은 그렇게 그리면 돼요.
재미있게 그리면 되는 거예요.”

■ 나난 개인전 : The Pictorial Life <그림같은 삶>
전시 기간 : 2019.03.01 - 2019.03.31
전시 장소 : 에비뉴엘아트홀 (서울 송파구 신천동 29, 에비뉴엘 월드타워 6층)
관람 시간 : 매일 오전 10시 30분 ~ 오후 7시 (백화점 휴점 시 휴관)
관람료 : 무료
문의 : 02-3213-2606

사진·자료|스피커(speeker), 에스팀(ESteem), 에비뉴엘 아트홀, 나난 작가 홈페이지, 올댓아트 송지인

<올댓아트 송지인 인턴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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