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듀오, 그들이 세상을 뒤집는 방식

올댓아트 박경은 allthat_art@naver.com
입력2019.03.29 18:40 입력시간 보기
수정2019.03.29 18:41

현대 미술계에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단짝’이라고 불리는 듀오 엘름그린&드라그셋이 두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혹시 2015년 서울 태평로 플라토 미술관에서 열렸던 인상적인 전시회 ‘천개의 플라토 공항’을 기억하는 관람객이라면 이들이 이번엔 어떤 드라마를 펼쳐낼 지에 대한 기대감이 클 것이다. 전시공간 자체를 작품의 무대로, 관람객을 무대에 서는 등장인물로 끌어들이는 독창적이고 기발한 작법 덕분에 이들은 세계 미술계에서 단단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2번째 내한 개인전 ‘Adaptations’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전시관(K3)에 들어서면 관객을 맞는 것은 고속도로다. 아스팔트로 만들어진 묵직한 캔버스 위엔 방향과 속도를 알리는 선이 그려져 있다. 아예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 도로를 토막내 벽에 붙여놓은 것 같다. 전시장 중심부엔 교통 표지판이 서 있다. 매끈한 스테인레스 스틸로 제작된 교통표지판은 아무 지시사항도 없다. 거울처럼 대상을 그대로 비출 뿐이다. 천장에는 터널을 연상케 하는 흰색 조명등이 두 줄로 이어진다. 이제 막 완공된 고속도로에 관람객들이 올라 서 있는 셈이다.

국제갤러리 3관(K3) 엘름그린 & 드라그셋 개인전 《Adaptations》 설치전경 ㅣ 국제갤러리

이번 작업은 무슨 의미일까. 작가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대인들에게 교통표지판은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존재이지만 100년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 기호는 지금 우리 삶의 일부이다시피 하고, 우리의 행동과 방향을 제약한다. 우리는 이가은 통제에 익숙한데, 이 익숙함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싶었다.”

낯익은 요소들과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 새로운 사고를 지향해보자는 취지다. 이 작업에 사용된 아스팔트와 페인트는 실제로 도로에서 사용되는 것들이다.

K2전시관은 좀 더 강한 비틀기의 의미를 담고 있다.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선이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 조각상이 발코니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발코니에 서서 사색하는 모습으로 읽힐 수도 있을테지만 전시장에 들어온 관람객이 그로부터 관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묘한 경험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국제갤러리 2관(K2) 엘름그린 & 드라그셋 개인전 《Adaptations》 설치전경 . 왼쪽이 Looped bar, 오른쪽이 Multiple meㅣ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2관(K2) 엘름그린 & 드라그셋 개인전 《Adaptations》 설치전경 . 오른쪽 작품이 Observer ㅣ 국제갤러리

‘Looped Bar’라는 제목이 붙은 원형의 바는 모순 덩어리다. 맥주탭은 손님들이 있는 바깥쪽에서 작동하도록 돼 있고, 종업원이 있어야 할 공간에 손님용 의자가 있다. 출입구도 없어 완전히 막혀 있는, 원래의 기능을 상실한 공간이다. 원래 소통의 공간이었던 곳이 배제와 무력감의 공간으로 변모한 이유가 무엇인지 관람객들에게 질문하는 듯 하다. 그 답은 옆에 놓여있는 구조물 ‘Multiple Me’와 연결시키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여러 개의 원형 거울이 부착돼 있는 직사각형의 뚫린 구조물이다.

엘름그린&드라그셋은 누구?

덴마크 출신의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 Elmgreen.58)과 노르웨이 출신인 잉가 드라그셋(Ingar Dragset.50)은 1995년부터 함께 작업해 왔다. 두 사람은 모두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엘름그린은 시를 썼고 드라그셋은 연극을 했다.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1994년 코펜하겐에서 처음 만났고, 서로를 ‘알아봤다’. 예술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커플’이 된 이들은 다양한 퍼포먼스와 설치작업을 통해 미술계에 존재감을 알렸다. 20년째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2002년 독일의 가장 권위있는 미술상 ‘함부르크 반 호프상’(Hamburger Bahnhof)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전시공간까지도 작품으로 바꾸는 이들의 퍼포먼스는 마치 한편의 연극과도 같다.

엘름그린& 드라그셋 ㅣ 국제갤러리 제공 (사진촬영 안천호)

2005년에는 미국 텍사스 주의 사막 도로변에 프라다 매장을 세웠다. 차도 잘 다니지 않고 사람 그림자도 찾기 쉽지 않은 메마른 땅 한가운데 휑뎅그렁하게 서 있는 모습은 냉소적인 유머를 자극한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들이 선보인 작품 ‘콜렉터의 죽음’이다. 전시관은 멋진 인테리어와 고가의 작품으로 꾸며진 콜렉터의 집이다. 그런데 마당 한쪽에 있는 작은 풀장에는 익사한 남자의 시신이 떠 있다. 도대체 이 집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걸까. 드라마틱한 서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들의 전시는 많은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9 베니스 비엔날레에 선보인 ‘컬렉터의 죽음’ ㅣ 위키피디아

2015년 서울 플라토 미술관을 찾았을 때 이들은 미술관 입구에 이정표를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전시공간 전체를 공항으로 바꾸면서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예술적 체험의 기회를 제공했다.

플라토 미술관 외부 전시물(왼쪽), 내부 전시 전경. ㅣ네이버 미술 캐스트(삼성플라토 미술관 제공)

전시기간 2019년 3월21일~4월28일
전시 장소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2, 3관
문의 (02) 735-8449

<올댓아트 박경은 allthat_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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