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빵’ 작가에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입력2020.04.18 14:17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0.04.18 14:23

동화책 ‘구름빵’ 작가로 잘 알려진 백희나 작가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는 소식이 최근 들려왔습니다. 방탄소년단(K Pop), 봉준호(K 영화)에 이어 ‘코로나’ 시국에서 빛을 발하는 ‘K 의료진’ ‘K 의료보험’ ‘K 방역’에 더해진 백 작가의 쾌거는 지친 일상에서 조금이나마 한국인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반가운 뉴스였는데요. ☞관련기사 보기

상금이 무려 6억원이 넘습니다! 수상도 수상이지만 거액의 상금까지 받으니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작 백 작가는 수상 확정 이후 잇단 언론 인터뷰에서 그간 자신이 겪었던 마음 고생을 언급했는데요. 도대체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기에 세계 최대 아동문학상 수상 소식 앞에서도 마음놓고 기뻐하지 못했던 걸까요?

백희나 작가 ㅣ네이버 인물정보

2003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백희나 작가의 ‘신인’ 시절이었죠. 그 유명한 ‘구름빵’ 원고를 들고 출판사 ‘한솔교육’을 찾아갑니다. 당시 ‘관행’대로 계약금과 원고료 명목으로 소정의 금액을 받고는 저작물과 관련한 일체의 권리를 출판사에 양도한다(매절 계약)는 조항에 서명한 게 그만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엔 원작의 저작재산권은 물론, 원작을 재가공한 2차 저작물에 대한 권한 등이 다 포함돼 있었습니다. 꺼림칙했지만 책을 낼 수 있다는 기쁨에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거지요. 출판사가 돈을 들여 자신의 책을 찍어준다는 데 시시콜콜 계약 조건을 따질 ‘용감한’ 신인 작가가 과연 몇이나 됐겠습니까. 당시만 해도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사회 저변에 뿌리내린 상황도 아니었고 저자도, 출판사도 훗날 ‘구름빵’이 가공, 확대 재생산되면서 지금처럼 무한대로 영역을 넓히고 나서리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구름빵, 2004년 ㅣ네이버 책

그림책 ‘구름빵’의 인기는 제목처럼 때론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때론 빵처럼 부풀어올랐습니다. 지금까지 45만 권 이상이 팔렸으며 프랑스·대만·일본·중국·독일·노르웨이 등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됐습니다. 모두 10개국 언어로 번역됐지요. 책을 원작으로 하는 TV 애니메이션, 어린이 뮤지컬 등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며 캐릭터 상품이 등장했고 일부 지자체엔 ‘구름빵 버스’, ‘구름빵 체험관’도 생겼습니다. ‘구름빵’을 재가공한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뮤지컬 ‘어린이 구름빵2’ ㅣ네이버 공연정보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곰은 재주가 넘고 돈은 주인이 번다는 속담이 있지요? ‘구름빵’이 딱 그랬습니다. 백 작가가 아무리 뛰어다녀도 수입은 별반 달라지는 게 없었습니다. 저작권 수익은 고스란히 출판사와 출판사가 2차 저작물 생산 과정에서 계약을 맺은 다른 업체들에 돌아갔습니다. 당초 2003년 백 작가와 한솔교육이 맺은 ‘일방적’ 계약 때문에요. 2004년 단행본 ‘구름빵’ 출간 이후 한솔교육이 밝힌 공식 매출액만 해도 20억이 넘습니다. 이 중 백 작가에게 돌아온 건 고작 1850만원이 전부입니다. 원작에 담은 저자의 의도나 취지와 달리 변형된 부가 상품이 출현하더라도 원저자는 막을 방도가 없습니다. 속수무책인 것이지요.

출판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한솔교육’과 결별한 백 작가는 출판사를 옮겨 저작 활동을 이어갑니다. ‘장수탕 선녀님‘ ’알사탕‘ ’팥죽할멈과 호랑이‘ ’북풍을 찾아간 소년‘ ’분홍줄‘ 등 그의 작품은 출간될 때마다 문단과 평론계, 독자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알사탕, 2017년 ㅣ네이버 책

‘한솔교육’ 등을 상대로는 저작권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결과는 1, 2심 모두 패소.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만 큰 희망을 걸긴 어려운 상태. 한솔교육 등과 벌인 수년 간의 법적 분쟁 과정에서 백 작가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둠 속 한 줄기 빛’처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 소식이 들려온 겁니다.

번번이 패하면서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백 작가의 소송 제기가 결코 무의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출판사의 일방적인 출판 계약 관행이 사회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으니까요. 원 콘텐츠를 보유한 작가들의 권리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퍼지면서 작가들도 예전에 비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출판사들도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1인 출판’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출판 플랫폼들이 생겨나고 있는 흐름 또한 출판계를 비롯한 문화예술계의 콘텐츠 생산 유통 과정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세계 아동문학사에 길이 남을 쾌거를 이뤄낸 대한민국 작가 백희나! 앞으로도 그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기대하고 또 응원합니다.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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