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데렐라 유니버스>展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절망의 순간 나타난 요정의 힘으로 무도회에 참석하게 되고, 유리 구두를 단서로 다시 만나게 된 왕자와 신데렐라의 러브스토리. 이 이야기는 프랑스 동화작가 샤를 페로가 1697년 민담으로 전해 내려오던 상드리용(Cendrillon: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여자)을 「옛날이야기(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e)」에 수록하면서 활자화 됐습니다.
이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신데렐라’는 영화, TV, 도서, 연극, 음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변주됐고, 내적 아름다움과 권선징악의 교훈을 남기며 오래도록 핍박받는 여성들의 성장·성공 스토리로 사랑받았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면서 ‘신데렐라’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콜레트 다울링은 「신데렐라 콤플렉스(Cinderella complex)」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자립할 수 없는 여성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 줄 남성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심리를 일컬어 ‘신데렐라 콤플렉스’라고 칭하며, 자신의 노력 없이 남성에게 의존하려는 여성의 심리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왜 하필 12시였을까. 종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원상복귀 되는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유리 구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두 사람은 그 이후에도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까. 어른이 되어 읽은 ‘신데렐라’는 또 다른 질문과 해석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이런 상상이 자리했습니다. 만약 2020년 여름, 서울 강남 한복판에 신데렐라가 등장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절대 뒤돌아보지 마.
만약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주우러 돌아갔다면,
그녀는 절대
공주가 되지 못했을 거야.”
동화책에서 벗어난 신데렐라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 <신데렐라 유니버스>展이 오는 8월 30일까지 서울 K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됩니다. 원작에 영감을 받은 작가들이 21세기에 이르러 심벌 또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신데렐라를 미디어아트, 벽화, 설치미술, 오브제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특히 ‘동화 속 요정이 현실에도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일까’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혹 성형외과 의사나, 명품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는 아닐까, 하는 엉뚱함으로 이어지는 재치 또한 눈여겨 볼만 합니다. 그럼,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신데렐라 유니버스>展의 대표작들을 조금 더 둘러볼까요.
◇세르지오 모라 디아즈
Breath
전시 입구에 설치된 칠레 작가 세르지오의 작품은 영상 미디어를 통해 빛, 움직임, 소리 등을 전달합니다. 가늘게 재단한 천 조각들과 벽으로 투사되는 영상 사이의 대조는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관람객이 마치 동화 속에 들어가는 듯한 몽환적인 경험을 선사합니다.
◇서명수
Rain Drop
각각의 빗방울에는 신데렐라가 겪었던 아픔과 고난의 순간들이 담겨있습니다. 어린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계모와 새언니들에게 따뜻한 방마저 빼앗긴 그녀는 추운 다락방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Rain Drop’은 신데렐라가 흘린 ‘눈물’을 의미합니다. 이 눈물은 스트레스와 마주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동화 속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는 신데렐라와 유사하다고 은유한 것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라고도 불리는 눈물이 형상화된 물방울이 각각의 경험에도 녹아들길 바라봅니다.
◇오지현
빗자루 at 7 p.m
신데렐라의 다락방 먼지보다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모든 것을 ‘정지’ 시켜놓은 2020년,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삶 또한 신데렐라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상황이 아닌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빗자루를 타고, 봉제 동물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무료한 시간을 달랬던 그녀의 모습에 비추어보면 말이죠.
◇차재영
Journey#Human
어린 시절, 한번쯤 상상해 봤을 겁니다. 역경에 처했을 때 마법처럼 초자연적인 존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를 괴롭히는 악당들을 처치해주는 그런 상상 말입니다. 차재영 작가의 설치작품은 천장에서 바닥으로, 바닥에서 벽으로, 벽에서 수레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이끌어갑니다. 그 속에서 어린 시절 내가 그렸던 신데렐라와 마주하기를 바라면서요.
◇서동일
내 인생의 주인공
다른 사람으로 향하는 마음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서동일 작가의 ‘내 인생의 주인공’ 입니다. 나는 괜찮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에게 고맙다고 외쳐보세요.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비교’임을 기억하면서요.
◇내 모든 순간을 찍어줘
Take Every Single Moment of me
현대사회에서 SNS는 강력한 소통의 도구이지만 그 속에는 역기능도 존재합니다. 자기 자신의 행복보다 온라인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대표적이죠. 그 모습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뱅크시의 ‘Dismaland’에 전시된 조각을 오마주한 ‘내 모든 순간을 찍어줘’는 죽는 순간까지도 파파라치에게 찍혀 영원히 고통받았던 다이아나 공주의 마지막을 보여줍니다.
◇미러룸
Mirror Room
미러룸은 독일의 작가 켄츠켄의 ‘Kinder Filman I’ 작품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입니다. 사람을 비춰야 할 거울에 다양한 색의 마스킹 테이프, 잡지, 스프레이 등을 덧대어 거울 속에 비친 이들을 동화 속 신데렐라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도심 속 신데렐라로 표현했습니다.
◇김수은
Blossom in the
거울은 무엇인가를 그대로 비추어 보여줄 때 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울의 모양, 색상을 보고 거울을 선택하기도 하죠. 본래의 목적보다 거울을 보는 이들의 욕망이 더 커짐을 꼬집은 ‘Blossom in the’를 통해 작가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무도회 다음날
Hangover
‘무도회 다음날’은 트레이시 에민, 뱅크시, 사라 루카스, 베로니카 라이언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K현대미술관 학예팀이 제작한 작품입니다. 트레이시 에민은 자기 고백적 작품으로 유명한데요. 이 작품 역시 더러운 다락방에서 일어난 주인공이 현실 속에서도 사랑스러울까, 라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침대 위 정리 안 된 이불, 여기저기 버려져 있는 콘돔, 쓰러져 있는 술병 등 적나라한 이 모습이 2020년을 살고 있는 신데렐라의 방일지도 모르니까요.
◇레오다브
Mad.c
레오다브 작가는 신데렐라 동화 속에 나타난 시대적 배경을 뛰어넘는 의지에 주목했습니다. 신데렐라 스토리텔링에 등장하는 폭압과 압정에 대한 저항을 반달리즘으로 재탄생 시켰는데요. 과거에 유지되던 의존의 상징인 유리 구두 위에 ‘No more’를 적어 신데렐라의 독립성과 자유의지를 보여줬습니다.
핍박받던 신데렐라부터 저항하는 신데렐라까지, 다양하게 표현된 작품들을 본 소감이 어떤가요. 이번엔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고정관념을 깬 나만의 신데렐라를 현실로 데려와주세요. 12시가 되기 전에.
■ <신데렐라 유니버스>展
2020년 5월 9 ~ 8월 30일
서울 K현대미술관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
성인 1만5천원,
중고등학생 1만2천원, 초등학생 1만원
미취학아동 8천원, 36개월 미만 입장 불가
Sergio Mora Diaz, 서명수, 오지현, 차재영, Huntress Janos, 헤이즐, 김수은, 박제성, 이민홍, 윤채린, 최영림, 서동일, 김진수 참여
<올댓아트 김지윤 에디터 allthat_art@naver.com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