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가 내게 거는 말···‘훅’ 들어와 내면 깊이 다가오네

이영경 기자

마크 로스코·이우환의 만남

페이스갤러리에서 10월26일까지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마크 로스코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 제공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마크 로스코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 제공

마크 로스코(1903~1970)의 그림은 어려운 동시에 어렵지 않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커다란 직사각형과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색채의 겹침과 번짐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형상과 거리가 멀다. 로스코의 그림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로스코의 아들 크리스토퍼는 대학 시절 여자친구가 로스코의 그림을 보고 “크고 부드러운 냉장고”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전한다.

그때문에 로스코의 그림은 불시에 관객의 깊은 곳으로 ‘훅’ 치고 들어온다. 그의 그림은 ‘무엇을 말하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스스로의 내면과 감정을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로스코의 그림은 ‘창문’에 주로 비유되는데, 밖이 아닌 내부를 들여다보게 하는 안으로 난 창문이다. 경계가 부드럽게 흐려진 직사각형과 겹겹이 쌓아올린 색채의 레이어를 보면 단단히 눌려있던 내면의 감정들이 부피를 늘리며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관객들이 많은 이유다.

“‘지식’으로는 로스코에 대해 알 수 없다. ‘지식’이 당신의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함을 일깨우는 대화를 나누려면 로스코어를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심리학자·작가인 크리스토퍼는 <마크 로스코, 내면으로부터>에서 말한다.

‘로스코어’로 거는 말에 귀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로스코의 1950~60년대 색면추상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 이우환이 로스코 유족의 소장품 중 직접 선정한 그림들이다.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로스코의 딸 케이트와 아들 크리스토퍼를 지난 3일 페이스갤러리에서 만났다. 크리스토퍼는 “두 작가의 작품은 단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마크 로스코의 아들 크리스토퍼(왼쪽)과 딸 케이트가 아버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영경 기자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마크 로스코의 아들 크리스토퍼(왼쪽)과 딸 케이트가 아버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영경 기자

마크 로스코 ‘No. 16 ’(1951), oil on canvas, 171.8cm × 113.3 cm 페이스갤러리 제공

마크 로스코 ‘No. 16 ’(1951), oil on canvas, 171.8cm × 113.3 cm 페이스갤러리 제공

전시장 2층, 로스코의 그림 6점이 어둑한 방에 걸렸다. 로스코는 생전에 자신의 그림을 관객이 홀로 감상하며 그림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을 바라볼 수 있길 바랐다. 보라와 회색, 검정 등이 주조를 이루는 회화와 붉은색 회화 가운데 밝은 연두와 초록의 ‘No.16’(1951)이 눈에 띈다. 깊은 초록색과 밝은 연두색의 대비가 생명력과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그 밑에 어른거리는 붉은색이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깜깜해 보이는 ‘No.5’(1964)는 어둠 속에서도 검정, 회색, 짙은 보라색의 미세한 차이와 레이어가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듯하다. 그림 수는 작지만 “그림을 음악과 시만큼이나 감동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로스코의 말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로스코는 자살로 생을 마감해 그의 작품들은 절망·우울과 연결되어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케이트는 “아버지는 관대하고 타인에게 친절함을 베푸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한다. 케이트는 “아버지는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을 둘러싸고 싶다고 말하셨는데, 저희는 어린 시절 실제로 작품 안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전시 개막에 맞춰 크리스토퍼가 쓴 <마크 로스코, 내면으로부터>(은행나무)도 함께 출간됐다. 로스코의 예술과 삶에 대해 깊이 탐구한 책으로, 로스코를 한결 더 깊고 가까이 이해할 수 있다.

전시장 3층에선 이우환이 2018~2023년 사이 제작한 최근작들을 만날 수 있다. 빨강, 파랑, 초록 등 선명한 색과 그것을 포착하고 칠한 작가의 붓질이 섬세하면서도 명확하게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신작 ‘Response’(2023)에선 처음으로 돌과 같은 모양으로 칠한 그림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전시는 각 층에서 개별적으로 열리지만, 이우환이 직접 고른 로스코의 작품들을 통해 두 작가의 ‘영적이고 내면적 만남’을 상상해볼 수 있다. 전시는 10월26일까지.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우환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 제공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우환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 제공

이우환 ‘Response’(2022). acrylic on canvas, 218 cm × 291 cm × 6cm 페이스갤러리  제공

이우환 ‘Response’(2022). acrylic on canvas, 218 cm × 291 cm × 6cm 페이스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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