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상상력으로…코로나 블루로부터 ‘유쾌한 탈출’읽음

올댓아트 권재현 에디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3년 만에 개막…11월21일까지

C-U-T(닐스 엥스트룀, 발렌틴 말름글렌, 빅토르 포겔스트룀, 아론 포겔스트룀, 카론 닐센, 카이우 마르케스 드 올리베이라)의 프로필 사진. 밍 웡 제공. 사진 테레스 외르발

C-U-T(닐스 엥스트룀, 발렌틴 말름글렌, 빅토르 포겔스트룀, 아론 포겔스트룀, 카론 닐센, 카이우 마르케스 드 올리베이라)의 프로필 사진. 밍 웡 제공. 사진 테레스 외르발

영상·설치·사진·회화·사운드·웹 기반…국내외 작가 41명의 작품 58점 선봬
첫 외국인 예술감독 융 마 “전 지구적 위기 속 예술을 통한 공감과 연대 필요”

‘대중미디어’를 통해 예술과 세상이 소통하는 도심 축제를 추구해온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3년 만에 개막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주최로 2000년 시작한 이 행사는 원래 지난해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1년 미뤄졌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를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전시가 열리는 지금도 여전히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19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까닭이다. 경제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우울한 시대풍경에 예민하게 반응한 41명(팀)의 국내외 젊은 작가들이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어떤 형태로든 ‘코로나19’가 이들의 작품 속에 스며들었다. 이번 비엔날레의 제목도 그래서 ‘하루하루 탈출한다(One Escape at a Time)’로 정했다. 전시를 관통하는 열쇳말은 ‘도피주의’(Escapism)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역사상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예술감독을 맡은 융 마(전 파리 퐁피두센터 큐레이터)는 “도피주의라고 하면 흔히 문제를 책임지지 않고 회피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지금이야말로 코로나로 상징되는 전 지구적 위기로부터 벗어나려는 인류 전체의 상상력과 예술 및 대중문화를 통한 공감, 폭넓은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들 힘겹고 우울한 시기를 헤쳐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각종 제한과 봉쇄 조치도 버겁지만 장기화에 따른 소통의 단절, 정보 격차, 빈곤, 소외, 정체성, 젠더·계급·인종 갈등, 난민, 환경, 소수자 차별과 혐오 등이 지구촌 인류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은 각자 처한 위치에서 이와 같은 현상을 진단하고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를 모색했다. 저마다 기발한 상상력과 감각을 발휘해 작품에 녹여냈다. 영상, 설치, 사진, 회화, 드로잉, 사운드, 웹 기반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현대미술 작품 58점이 이번 행사 기간 내내 서울시립미술관 안과 밖,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넘어서는 유통망을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

리랴오, ‘모르는 채로 20200205’, 2020, 3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각 6분52초, 10분39초, 16분45초. 작가 제공

리랴오, ‘모르는 채로 20200205’, 2020, 3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각 6분52초, 10분39초, 16분45초. 작가 제공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로 봉쇄령이 내려졌을 때 중국 작가 리랴오는 우한에 거주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꼭대기에 비닐을 매단 나무 장대를 들고 무작정 거리로 나갔다. 손바닥 위에 장대를 올려놓고 균형을 잡으며 인적이 끊긴 거리 곳곳을 누볐다. 고립 상황에서 밀려드는 상념과 두려움, 불안, 슬픔의 감정들로부터 회피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그 퍼포먼스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기록한 비디오 작품을 이번 전시에 출품했다.

K팝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싱가포르 출신 작가 밍 웡은 한국 아이돌 양성 시스템을 깊이 관찰한 경험을 토대로 스웨덴 K팝 보이밴드 ‘컷(C-U-T)’을 기획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왕립예술학교 학생 6명으로 결성한 컷은 언어와 외양은 달라도 복장부터 표정, 춤, 노래하는 모습, 노래의 분위기, 제스처까지 한국의 아이돌 그룹을 쏙 빼닮았다. 이번 전시를 위해 뮤직비디오와 인터뷰 영상 등을 제작했고 신곡 ‘만화경(KALEIDOSCOPE)’도 발표했다. 대중음악 산업에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국경을 넘어 전 세계가 음악으로 하나 되는 경험과 가능성을 제시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담은 실험 프로젝트 작업이다.

미네르바 쿠에바스, ‘작은 풍경을 위한 레시피’, 2021, 벽면에 아크릴, 가변 크기. 픽셀 아트 디자인: 프란시슈액 얀 노보트니악. 벽화 작업: 고경호, 김민정, 김수연, 이건희, 이제, 최주웅.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설치전경. 촬영: 홍철기, 글림워커픽쳐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미네르바 쿠에바스, ‘작은 풍경을 위한 레시피’, 2021, 벽면에 아크릴, 가변 크기. 픽셀 아트 디자인: 프란시슈액 얀 노보트니악. 벽화 작업: 고경호, 김민정, 김수연, 이건희, 이제, 최주웅.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설치전경. 촬영: 홍철기, 글림워커픽쳐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로비 전체를 감싸는 미네르바 쿠에바스의 대형 벽화 작업을 마주하게 된다. 1970~1980년대에 유행한 픽셀 비디오 게임과 같은 시각언어를 사용해 과거로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멕시코 출신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양 산수화의 풍경을 배경으로 했다. 가운데 검은 옷을 입고 산속에 돌아앉은 여인은 ‘동물복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임순례 영화감독을 오마주한 인물이다. 산과 안개를 배경으로 한 화면 오른쪽 아래 ‘생뚱맞게’ 자리한 스팸의 이미지가 무차별 도륙 시스템으로 인한 동물권 문제와 육류 대량 소비가 불러온 식품산업의 실상을 고발한다.

LED 스크린에 이산화탄소, 미세먼지, 방사선 등 대기오염 측정 모니터를 설치해 실시간으로 생성된 데이터를 일출과 일몰의 이미지로 전환시켜 표현한 아일랜드 출신 작가 유리 패티슨의 작품도 눈에 띈다. 언뜻 보면 아름답지만 마구잡이 개발과 인류의 탐욕이 불러온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작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지난 8일 개막해 오는 11월21일까지 이어진다. 서울 전역의 도서관·카페·상점·서점·음식점·클럽·음반매장 등 민간과 공공 문화 거점 97곳에서도 영상, 사운드트랙, 포스터, 오브제 등 다양한 비엔날레 콘텐츠들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삼성역에 설치된 80m 크기 미디어캔버스인 케이팝스퀘어미디어는 이번 행사 기간 동안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매시 두 번씩 비엔날레 참여 작가 5인(팀)의 작품을 순차적으로 소개한다. 비엔날레의 공공프로그램 ‘메아리’는 토크, 퍼포먼스, 강연, 워크숍, 전시투어 등 다양한 형태로 전시의 외연을 확장하며 현대미술과 관객의 접점 다변화를 시도한다. 비엔날레 웹사이트(mediacityseoul.kr)에서 사전 예약하면 참여 가능하다. 오디오 가이드는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도슨팅 앱과 전시전문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큐피커’를 통해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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