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전위적 실험미술, 마침내 한국미술사에서 대접 받나

도재기 선임기자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

당시 주요 작가들 작품활동·대표작들 선보여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기획

9월 해외전···“한국미술사 재정립 계기의 전시”

한국의 전위적 실험미술을 살펴보는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김구림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 (1969,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소장). (C)김구림. 구겐하임 미술관 제공

한국의 전위적 실험미술을 살펴보는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김구림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 (1969,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소장). (C)김구림. 구겐하임 미술관 제공

‘한국의 실험미술’을 말할 때는 늘 ‘1960~70년대’가 따라붙는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실험미술은 전위예술을 뜻하는 ‘아방가르드’와 거의 동일시돼 기존 예술의 가치나 인식·개념을 전복시키는 새롭고 혁신적인 미술을 말한다. 실험미술이라는 보통명사가 한국 미술에서는 ‘1960~70년대’가 붙어 고유명사화된 셈이다. 그만큼 1960~70년대는 한국 미술사에서 전위적 실험미술이 꽃을 피웠다.

한국의 실험미술은 당시 첫선을 보인 ‘오브제 미술’ ‘입체미술’ ‘해프닝’ ‘이벤트’, 실험 영화·비디오 작업을 지칭한다. ‘오브제 미술’은 일상 용품을 활용한 작품이며, ‘입체미술’은 개념적 설치미술이다. ‘해프닝’ ‘이벤트’는 행위예술·퍼포먼스라 할 수 있다. 기존 회화·조각의 틀을 넘어선 탈장르적 작업이다.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당시만 해도 기존과는 다른 개념·방식의 작품으로 기성 예술체제를 혁신하고자 했다.

실험미술 작가들의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군사독재 정부의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통제, 급격한 산업화·도시화로 가치관과 생활양식이 급변하는 시기였다. 경찰에 체포돼 고초를 겪기도, 불온세력·퇴폐작가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이것도 예술이냐”는 비아냥도 들었다. 그럼에도 현실 회피적이거나 권력·지배 이데올로기에 복무한 작가들과 달리 이들은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되새기고 사회·대중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작업을 해냈다.

당시 실험미술은 지금의 한국 현대미술을 풍성하게 만든 한 뿌리이자 토대다. 현대미술 형식·내용의 다양성 확장, 예술가로서의 의식·태도의 성찰, 미술제도의 변화, 대중의 인식 확대 등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 의미와 가치에도 불구하고 실험미술은 2000년대 들어서야 관련 전시·연구가 시작됐다. 한국 현대미술사를 장식한 앵포르멜, 단색화, 이후의 민중미술 등에 가려진 것이다. 최근에야 국내는 물론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다.

성능경의 ‘여기’(1975, 종이에 젤라틴 실버 프린트, 작가소장). (C)성능경. 작가 제공

성능경의 ‘여기’(1975, 종이에 젤라틴 실버 프린트, 작가소장). (C)성능경. 작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관에 마련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는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실험미술을 이끈 김구림·성능경·이강소·이건용·이승택 등 주요 작가 29명과 대표작 90여점, 관련 자료 30여점을 선보인다. 당시 실험미술을 한국 미술사 속에서 재조명, 자리매김해보자는 것이다.

전시는 특히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기획해 서울전에 이어 뉴욕 구겐하임미술관(9월), 로스앤젤레스 해머미술관으로 순회해 한국 실험미술을 해외에 본격 소개한다는 의미도 크다. 리처드 암스트롱 구겐하임미술관장은 “재료와 과정에 대한 실험미술가들 공통의 급진적 접근 방식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아방가르드 실천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며 “끊임없이 질문하고 창조하려는 그들의 용기와 상상력, 열망은 우리에게 영감과 용기를 준다”고 평가했다.

6개 소주제로 구성된 전시는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실험미술의 여러 양상들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작가 모임 ‘오리진’ ‘무동인’ ‘신전동인’ 등과 이들의 연합전 ‘청년작가연립전’(1967) 등이 핵심이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와 기성 미술계를 비판하고 ‘반(反)미술’ ‘탈매체’ ‘탈장르’를 주창한 주요 작업들을 소개한다. 첫 페미니즘 작업인 정강자의 ‘키스미’(1967), 군사장비를 활용한 이태현의 연작 ‘명’(1967) 등이다.

정강자의 ‘키스미’(1967, 2001년 재제작, 혼합매체, 아라리오컬렉션) 전시 전경. 도재기 선임기자

정강자의 ‘키스미’(1967, 2001년 재제작, 혼합매체, 아라리오컬렉션) 전시 전경. 도재기 선임기자

실제 방독면 등을 재료로 한 이태현의 ‘명 1’(1967, 2001년 재제작, 작가 소장). (C)이태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실제 방독면 등을 재료로 한 이태현의 ‘명 1’(1967, 2001년 재제작, 작가 소장). (C)이태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작가들은 급격한 산업화·도시화와 대중문화 확장이 낳는 여러 파장도 작품화했다. 서울 도심과 사람들을 통해 도시화 속 다양한 풍경을 담아낸 김구림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1969) 등이 대표적이다.

전위적 작업에 대한 작가들의 관심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제4집단’ 등의 결성으로 이어진다. ‘제4집단’은 공권력 탄압에도 1970년 광복절을 맞아 한국 문화의 독립을 선언하는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1970)을 열었고, 이를 계기로 정부의 전위예술 억압이 강화돼 제4집단은 결국 해체됐다. 장발·미니스커트 단속도 시작됐다. 이론지 ‘AG’ 발간과 탈매체적 다양성과 반미학의 일상성을 강조하는 작업을 한 AG 작가들의 작품도 살펴본다.

한국 실험미술은 전통의 부정을 기반으로 하는 일반적 전위미술과 달리 전통의 재발견을 통해 한국 미술의 탈서구화, 전통의 현대적 계승 등을 강조한 것도 특징이다. 일본 식민지배의 역사, 정치적 억압 등 역사의 특수성에 따른 것으로 이승택 등의 작품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 실험미술의 핵심 단체인 ‘ST(Space & Time)’는 1971년 첫 단체전을 시작으로 1981년까지 활동했다. 동서양 미론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등 작품의 논리적·이론적 틀을 정립한 이들은 개념적 설치미술, 행위미술인 ‘이벤트’, 한국적 미술을 고민한 다양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군사정권의 언론탄압 등을 은유한 성능경의 ‘신문 1974.6.1. 이후’ 등 여러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강국진의 ‘시각 I, II’(1968, 네온 조명, 스테인리스 스틸,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C) 황양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강국진의 ‘시각 I, II’(1968, 네온 조명, 스테인리스 스틸,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C) 황양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건용의 작품 ‘손의 논리’(1975, 2019년 인화, 리움미술관 소장)를 중심으로 한 전시 전경 일부(왼쪽)와 1968년 서울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 아래 강변에서 열린 퍼포먼스(강국진, 정강자, 정찬승의 ‘한강변의 타살’, 사진 황양자 제공) 기록.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건용의 작품 ‘손의 논리’(1975, 2019년 인화, 리움미술관 소장)를 중심으로 한 전시 전경 일부(왼쪽)와 1968년 서울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 아래 강변에서 열린 퍼포먼스(강국진, 정강자, 정찬승의 ‘한강변의 타살’, 사진 황양자 제공) 기록.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승택의 ‘무제(새싹)’(1963, 2018년 재제작, 옹기에 채색, 구겐하임 아부다비 소장, 왼쪽)와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 전경 일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승택의 ‘무제(새싹)’(1963, 2018년 재제작, 옹기에 채색, 구겐하임 아부다비 소장, 왼쪽)와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 전경 일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국 실험미술사를 정리하는 전시회에서 이젠 원로작가들이 된 당시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흥미롭다. 한국 현대미술의 어제를 통해 오늘, 내일을 살펴보며 급변하는 시대 속에 예술, 예술가의 존재 의미도 되묻는 자리다.

안휘경 구겐하임미술관 큐레이터와 장기간에 걸쳐 전시를 기획·구현한 강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관은 “이번 전시가 한국 실험미술의 확장적 고찰의 계기이자 한국 미술사 재정립의 토대, 해외에서의 새로운 담론을 촉발시키는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강 학예관은 “당시 작품들에는 정치적 아방가르드·민중미술 같은 직접적 리얼리즘과는 다른 ‘은폐의 언어’들이 투영돼 관람의 흥미를 더할 것”이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작업을 지속한 작가들, 그 작품들이 지니는 현재적 의미도 되새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행사도 마련돼 김구림의 퍼포먼스 ‘생성에서 소멸로’(14일), 성능경의 ‘신문읽기’(21일), 이건용의 ‘달팽이 걸음’(28일) 등이 재현된다. 또 학술행사, 관람객 참여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국·영문 전시도록도 발간된다. 전시는 7월16일까지.

이건용, 이승택 등의 작품이 전시된 전시장 전경 일부(왼쪽)와 전시회 포스터. 도재기 선임기자

이건용, 이승택 등의 작품이 전시된 전시장 전경 일부(왼쪽)와 전시회 포스터. 도재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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