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치면 10m···‘보물급 고려시대 사경’ 일본서 돌아왔다

도재기 선임기자

14세기 제작 절첩본 형태 ‘묘법연화경 권제6’

문화재청, 공개···“일본인 소장자에게 구입”

감지에 금·은니 필사, 빼어난 변상도 등 구성

전문가들 “고려 불교문화 연구 등 귀중 자료”, “조성기 없어 아쉬워”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일본인 소장자로 부터 구입을 통해 환수한 고려시대의 사경 ‘묘법연화경 권제6’을 15일 언론에 공개했다. 사진은 환수 사경의 변상도와 본문(경문) 앞 부분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일본인 소장자로 부터 구입을 통해 환수한 고려시대의 사경 ‘묘법연화경 권제6’을 15일 언론에 공개했다. 사진은 환수 사경의 변상도와 본문(경문) 앞 부분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

고려 말(14세기)에 불경을 정성 들여 손으로 옮겨 쓰고 장정한 사경(寫經)인 ‘묘법연화경 권제6(妙法蓮華經 卷第6)’이 일본에서 환수됐다.

불화와 함께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핵심 축인 사경은 현존하는 유물이 극히 적고, 종교적·미적 가치와 함께 불교사·사경 신앙·서지학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미 14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묘법연화경’의 사경인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제1~7’ ‘상지은니 묘법연화경 권제1~7’ 등은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제6’ 등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문화재청은 15일 오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일본에서 환수한 고려시대의 사경 ‘묘법연화경 권제6’을 언론에 공개했다.

14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경은 감지(쪽물을 들인 검푸른 색의 종이)에 금은 가루(니)를 아교풀에 개어 글자를 쓰고 그림을 그려 병풍처럼 접었다 펼 수 있도록 한 절첩본 형태다. 본문에 해당하는 경문(經文)의 글자가 은니로 쓰여 기존의 유사한 유물 명칭 사례를 따르면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제6’이 된다. 크기는 접었을 때 세로 27.6㎝, 가로 9.5㎝이며 펼치면 가로 1070㎝에 이른다.

이번에 환수된 ‘묘법연화경 권제6’은 총 7권 28품으로 구성된 ‘묘법연화경’ 가운데 제6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 후진(後秦·384~417)시대의 승려 구마라집(344~413)이 한문으로 번역한 7권 28품의 ‘묘법연화경’이 가장 널리 유통됐는데 그중 제6권을 옮겨 적은 것으로, 18~23품의 내용이 담겼다.

흔히 ‘법화경’으로 불리는 ‘묘법연화경’은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기본 사상으로 한다. ‘대방광불화엄경’(화엄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삼국시대 이후 많이 유통된 불교경전이자 고려시대 사경의 주요 대상이 된 경전이다.

‘묘법연화경 권제6’에서 금 가루로 정교하게 불경의 내용을 압축해 그림으로 표현한 변상도(사진 위)와 변상도의 세부 모습. 문화재청 제공

‘묘법연화경 권제6’에서 금 가루로 정교하게 불경의 내용을 압축해 그림으로 표현한 변상도(사진 위)와 변상도의 세부 모습. 문화재청 제공

고려시대 사경인 ‘묘법연화경 권제6’의 앞 표지(왼쪽)와 뒷면 표지. 문화재청 제공

고려시대 사경인 ‘묘법연화경 권제6’의 앞 표지(왼쪽)와 뒷면 표지. 문화재청 제공

고려시대 사경으로 국보로 지정돼 있는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제1~7’의 표지들(위)과 본문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문화재청 제공

고려시대 사경으로 국보로 지정돼 있는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제1~7’의 표지들(위)과 본문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문화재청 제공

‘묘법연화경 권제6’의 구성은 표지와 경전 내용을 압축해 그림으로 표현한 변상도, 본문인 경문, 뒤 표지 등으로 이뤄져 있다. 표지는 위쪽에 경전 제목을 적고, 아래로는 금니로 그린 4개의 연꽃과 은니로 새긴 넝쿨무늬가 여백 없이 가득 차 있다.

변상도는 4개 화면으로 구성됐다. 화면 오른쪽에 ‘묘법연화경’을 설법하는 석가모니부처와 불법을 닦는 권속을 비롯해 사람들이 성내며 돌을 던져도 ‘그대들은 모두 성불하리라’고 말하는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 제20품)의 장면, 타오르는 불꽃 속에 자신의 몸을 바쳐 공양하는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 제23품) 등 가장 극적인 내용을 표현했다.

화면 오른쪽의 설법 장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화면을 선으로 빼곡하게 채운 점 등은 14세기 후반 고려 사경의 특징으로 꼽힌다. 경문은 모두 108면에 걸쳐 이어지는데 한 면당 6행씩, 금니로 테두리 경계를 그리고 각 행은 은니로 17자의 글자를 정성스럽게 적고 있다. 김종민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은 이날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해 안진경, 조맹부 등 다양한 서체가 어우러진 사경이어서 더 주목된다”며 “변상도도 빼어난 수준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배영일 마곡사 성보박물관장은 “고려, 조선시대의 사경을 모두 합해도 국내외를 통틀어 150여건이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번 환수 사경은 종교적·학술적으로 귀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 관장은 “사경의 발원자, 제작연도 등을 알 수 있는 조성기가 없고, 전체 7권의 완질이 아닌 한 권뿐이어서 아쉽다”며 “아마 마지막 권인 권제7에 조성 관련 기록이 있을 것으로 보여 권제7이 하루빨리 발굴, 공개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국보로 지정돼 있는 고려시대 사경으로 흰 닥종이(백지)에 먹으로 글자를 쓴(묵서) ‘백지묵서 묘법연화경 권제1~7’. 호림박물관 소장. 문화재청 제공

국보로 지정돼 있는 고려시대 사경으로 흰 닥종이(백지)에 먹으로 글자를 쓴(묵서) ‘백지묵서 묘법연화경 권제1~7’. 호림박물관 소장. 문화재청 제공

고려시대에 특히 성행한 사경은 원래 불교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제작됐으나 점차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발원을 통해 공덕을 쌓는 방편으로 여겨지며 신앙이나 수행의 한 형식으로 발전했다. 아예 국가기관인 사경원을 통해 국가의 안녕을 빌거나, 사망한 부모의 극락왕생 등을 바라는 개인적 목적으로 제작이 널리 확산됐다. 실제 이번에 환수된 사경의 약왕보살본사품에는 ‘묘법연화경’이 “여러 경전 가운데 제일”이며 “이 경전을 듣고 스스로 쓰거나 다른 사람을 시켜 쓰면, 얻는 공덕은 부처님의 지혜로 그 많고 적음을 헤아려도 끝을 알 수 없다”고 적혀 있기도 하다.

이날 공개된 사경을 들여온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일본인 소장자가 재단에 매도 의사를 밝히면서 이번 사경의 존재가 처음 확인됐다”며 “이후 문화재청의 행정지원, 수차례에 걸친 재단의 면밀한 조사와 협상, 복권기금을 재원으로 마침내 지난 3월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 ‘묘법연화경 권제6’은 불교 문화유산으로서의 종교적 가치와 뛰어난 미적 가치를 함께 자랑하며, 7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보존 상태가 좋아 향후 다양한 연구와 전시 등에 활용될 것”이라며 “이번 공개가 고려 사경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고려인의 바람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은 환수된 사경의 추가 정밀조사, 전시 계획 수립 등을 통해 향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보물로 지정돼 있는 고려시대 사경으로 쪽물을 들인 감지에 금가루(금니)로 본문을 쓴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제6’의 변상도 부분. 문화재청 제공

보물로 지정돼 있는 고려시대 사경으로 쪽물을 들인 감지에 금가루(금니)로 본문을 쓴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제6’의 변상도 부분.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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