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창설 30년의 광주비엔날레…공간 탐구로 동시대 현안들 성찰

도재기 선임기자

부리오 예술감독, 15회 광주비엔날레 주제는 ‘판소리-21세기 사운드스케이프’

“우리 모두 관계된 중요한 공간, 예술적으로 다양한 탐색 필요”

“판소리 형식 빌린 치말한 전시 구성·형식”으로 “영화 보듯 감상하는 전시 기대”

내년 9월 열릴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자 프랑스 전시기획자· 이론가인 니콜라 부리오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공간 탐구의 작품들을 통해 이 시대 인류의 주요 이슈들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영화 보듯 감상하는 전시를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내년 9월 열릴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자 프랑스 전시기획자· 이론가인 니콜라 부리오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공간 탐구의 작품들을 통해 이 시대 인류의 주요 이슈들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영화 보듯 감상하는 전시를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국내 최대 규모의 격년제 국제 현대미술제인 광주비엔날레가 내년에 제15회이자, 창설 30주년전으로 열린다.

국내 비엔날레 시초인 광주비엔날레는 세계 미술계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미술문화 발전을 도모하고 5·18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이 지닌 다양한 가치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취지로 출범했다. 1994년 설립·조직위원회가 구성되고, 이듬해 (재)광주비엔날레가 구성됐으며 9월에는 ‘경계를 넘어’란 주제로 40여개국 작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개최됐다.

이후 부침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열렸고, 올해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란 주제로 지난 4월 개막한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다음달 9일까지 진행된다. 통상 짝수 연도 9월에 열리지만 코로나19 사태로 행사가 연기되면서 올해개최됐고, 내년부터는 다시 짝수 연도 9월 개막으로 정상화된다.

그동안 광주비엔날레가 열릴 때마다 그 존재 이유와 발전 방향 등을 둘러싸고 여러 논의가 이뤄지고,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광주비엔날레는 이제 국제적으로 아시아의 주요 비엔날레로 자리매김했다. 더욱이 한국 미술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광주비엔날레의 국내외적 역할론이 강조되기도 한다. 비엔날레 창설 30주년 기념 전시이기도 한 내년 제15회 광주비엔날레가 더 주목되는 이유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는 ‘판소리- 21세기 사운드스케이프(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를 주제로 내년 9월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광주 일대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진다.

지난달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프랑스의 전시기획자이자 1990년대 ‘관계미학’론으로 국제적 이론가 반열에 오른 니콜라 부리오(58)와 (재)광주비엔날레는 지난 26일 이 같은 주제 공개와 함께 내년 비엔날레 운영방향 등을 일부 내놓았다.

부리오 감독은 “내년 비엔날레는 공간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비엔날레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후변화, 인류세, 거주 위기, 탈식민, 페미니즘, 소수자 문제, 인간과 비인간 관계 등 이 시대 주요 현안들은 결국 모두 공간과 관계돼 있다”며 “특히 기후변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은 인류와 공간의 관계를 급격하게 변화시켰고 공간에 대한 달라진 우리의 감각과 지각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두와 관계를 맺고 있는 공간은 개인의 내밀한 공간부터 지구적 차원의 공간, 미시적 분자부터 우주, 멀티버스 등 가상 공간까지 다뤄질 수 있다”며 “다양한 공간을 다채로운 시각으로 탐구해 예술적으로 표현·반영하는 작품들이 비엔날레의 큰 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 만의 방’을 통해 페미니즘을 드러낸 사례도 언급한 그는 “작가들의 공간 탐구 작품이 그동안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고 덧붙였다.

내년 광주비엔날레가 극히 개인적인 물리적·사유적 공간은 물론 사회적·지구적·과학적 공간 등 다양한 공간에 대한 깊은 탐색을 담은 작품들을 통해 인류가 맞닥뜨린 이 시대의 주요 현안들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며 성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나아가 급격한 변화 속에 공간에 대한 다시 보기, 재인식, 재창조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혀진다.

부리오 감독은 “비엔날레는 지역적 특성에서 시작해 국제적 보편성, 세계로 나아가는 만남·교류의 장이 돼야 하며, 전시 또한 주제와 형식의 조화로운 만남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점에서 17세기에 등장해 이어져온 한국의 판소리는 지역적 특성, ‘공공장소(판)의 소리’나 ‘서민의 목소리’라는 상징성, 특히 그 서사구조와 소리꾼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이 돋보인다”며 “공간 문제란 주제를 판소리처럼 음악적으로, 소리의 형식으로 구현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부리오 감독은 “비엔날레가 많은 작품을 그저 나열하는 형식이 돼서는 안된다”며 “작품들이 영화 속 하나의 시퀀스처럼 주제와 어우러지고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도록 치밀하게 구성함으로써 마치 영화를 보듯 감상하는 전시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는 다음달 9일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본전시장에서 만나는 엄정순 작가의 작품들(왼쪽)과 이번 비엔날레 포스터. 광주비엔날레 제공

제14회 광주비엔날레는 다음달 9일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본전시장에서 만나는 엄정순 작가의 작품들(왼쪽)과 이번 비엔날레 포스터. 광주비엔날레 제공

전시는 3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지구라는 물리적 공간이 갖가지 측면에서 포화상태가 돼 인간과 인간 등 다양한 관계들이 치열해지고 심각해진 현 상황을 공간 부족에 따라 음향의 충돌로 소음이 발생하는 ‘라르센 효과’에 빗댄 섹션,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는 다양성과 세상의 복잡성에 주목하는 작품이 중심이 될 ‘다성음악’ 섹션. 인간의 공간을 넘어 비인간의 공간이나 극소적 분자·광대한 우주 세계같은 다른 차원의 공간 탐색을 불교의 ‘옴’같이 단순하지만 무한확장 가능성이 있는 근본적이고 태초적 소리에 빗댄 ‘태초의 소리’ 섹션이다.

전시는 본전시 외에 카페, 대안예술공간, 공원, 상점, 공공장소 등 광주 곳곳의 다양한 장소에서도 시각 요소에 소리가 융합된 예술프로젝트들이 벌어져 일상적 공간이 지닌 힘과 가능성도 살펴볼 예정이다.

부리오 감독은 “예술이라는 공간은 시대와 문명을 초월해 현실을 재구성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사회적 삶과 시공간을 재창조할 수 있는 곳”이라며 “광주비엔날레가 그런 예술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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