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의 거장 카푸어, 세계적 주목받는 양혜규 전시를 한눈에

도재기 선임기자

국제갤러리, 아니쉬 카푸어·양혜규 작품전

카푸어, 현존과 부재 등 경계를 넘나들어

양혜규, 특유의 공감감적 작품 한옥서 즐겨

아니쉬 카푸어의 ‘In-between’(2021, Oil, fibreglass and silicone on canvas, 244 x 305 x 62cm, ⓒ Anish Kapoor. All rights reserved DACS/SACK, 2023, 사진  Dave Morgan, 왼쪽)과 양혜규의 ‘동면 한옥’ 전시 전경 일부. 국제갤러리 제공

아니쉬 카푸어의 ‘In-between’(2021, Oil, fibreglass and silicone on canvas, 244 x 305 x 62cm, ⓒ Anish Kapoor. All rights reserved DACS/SACK, 2023, 사진 Dave Morgan, 왼쪽)과 양혜규의 ‘동면 한옥’ 전시 전경 일부. 국제갤러리 제공

이달 초 프리즈·키아프 아트페어 당시부터 지금까지 관람객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전시가 있다. 아트페어 당시엔 해외 미술 관계자들이 유독 많이 찾은 곳이기도 하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 ‘아니쉬 카푸어’와 국제적으로 뜨거운 주목을 받는 양혜규의 ‘동면 한옥’ 전이다. 카푸어 전은 K1~K3 3개 전시실에서, ‘동면 한옥’ 전은 전시공간으로의 개관을 앞둔 국제갤러리 한옥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아니쉬 카푸어’ 전

아니쉬 카푸어의 ‘Tongue’(2017, Silicone, paint on canvas, 244 x 183 x 110cm, ⓒ Anish Kapoor. All rights reserved DACS/SACK, 2023, 사진 Dave Morgan, 왼쪽)과 K2 전시장 전경 일부.국제갤러리 제공

아니쉬 카푸어의 ‘Tongue’(2017, Silicone, paint on canvas, 244 x 183 x 110cm, ⓒ Anish Kapoor. All rights reserved DACS/SACK, 2023, 사진 Dave Morgan, 왼쪽)과 K2 전시장 전경 일부.국제갤러리 제공

현대미술 거장인 카푸어(69)의 작품은 조각, 회화, 드로잉 등이 선보인다. 격정적이고 괴기스럽다는 느낌부터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순해 사유적이고 미니멀의 극치까지 느낄 수있는 작품전이다. 지나칠 정도로 드러내 보이려는 작품부터 모든 것을 품어 안아 숨기는 작품까지, 생명과 탄생은 물론 죽음과 종말의 경계를 아우르는 전시회다. 출품작은 20여 점에 불과하지만 신작·근작이 많고 다양해 세계적 작가 카푸어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있다.

널찍한 공간인 K3에는 단 4점의 조각이 전시됐다. 유독 물질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비정형의 괴석같은 바위, 인간의 내장 같기도 한 형상의 작품들은 거대하고 육중한 덩어리감을 안긴다. 작품 인상과는 다른 실리콘과 유리섬유·거즈 재료에 탁한 검정과 진한 빨강색, 특유의 질감까지 어우러지면서 물질성은 극대화된다. 생명이 잉태되는 태초이거나 종말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4점의 작품에도 전시장이 꽉 찬 듯한 것은 가로·세로 2~4m 크기, 무게 600~700㎏에 이르는 대형이란 이유도 있지만 특유의 물질성이 큰 역할을 한다.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이 선보이고 있는 국제갤러리 K3 전시장 전경 일부. 국제갤러리 제공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이 선보이고 있는 국제갤러리 K3 전시장 전경 일부. 국제갤러리 제공

K2에서는 카푸어가 근래 집중적으로 작업하는 회화들을 만난다. 매끈한 평면의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툭 튀어 나오고 쑥 들어가기도 한 조각적 회화다. 혀, 심장 등 신체의 장기들을 떠오르게 하는 화면에는 핏빛이 흘러내린다. 아주 끈적한 질감이어서 비린 냄새까지 나는 듯할 정도다. 괴기스러우면서도 묘한 아름다움 속에 분출하는 원초적 생명력, 살고자하는 뜨거운 욕망과 그 뒷편 어쩔 수없는 죽음 등이 겹쳐진다.

K1의 바깥과 안쪽 전시실 두 공간은 이전 전시실 분위기와 크게 다르다. 안쪽 전시실에는 그 유명한 ‘반타블랙’을 활용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2014년 영국 기업이 탄소나노 기술로 개발한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색으로, 빛을 99.96% 흡수한다. 이 검은색은 카푸어가 사들여 자신만이 독점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비판을 받기도 해 ‘카푸어의 블랙’으로도 불린다.

‘카푸어 블랙’으로 불리는 ‘반타블랙’을 활용한 작품 세부(위)와 K1 전시장 전경 일부. 국제갤러리·도재기 선임기자

‘카푸어 블랙’으로 불리는 ‘반타블랙’을 활용한 작품 세부(위)와 K1 전시장 전경 일부. 국제갤러리·도재기 선임기자

물질성을 가시화한 다른 작품들과 달리 깊이를 알 수없는 심연 같이 온통 검은 원형·사각형 등은 물질성을 단번에 삼켜 사라지게 한다. “물질을 통해 물질을 초월하는” 셈이다. 보는 이를 빨아들일 듯한 작품들은 정면에서 보면 그저 평면의 형태뿐이다. 하지만 옆에서 자세히 보면 앞으로 툭 튀어나온 형상들이 있다. 빛이 모두 흡수됨으로써 우리의 눈은 정면에서는 그 형상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K1 바깥 전시실에는 소품의 종이에 과슈 작업을 만날 수있다.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는 “드러냄과 숨김, 생성과 소멸, 현존과 부재, 물질성과 비물질성, 삶과 죽음 등 양가적·다층적 사유를 하게하는 작품전”이라며 “지금도 여전히 예술적 실험과 인문학적 탐구를 계속하는 작가는 최근 작업을 통해 새삼 삶과 예술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양혜규의 ‘동면 한옥’ 전

양혜규의 ‘동면 한옥’ 전시장 전경 일부. 국제갤러리·도재기 선임기자

양혜규의 ‘동면 한옥’ 전시장 전경 일부. 국제갤러리·도재기 선임기자

양혜규(52)의 ‘동면 한옥’ 전에는 10여년 작품부터 최신작까지 대표적 조각·평면·설치 등 30여 점이 선보인다.

특별한 주제를 사유해보는 기획전이라기 보다 국제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한국 현대미술가인 양 작가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오랜만에 한 자리에서 감상하는 전시회다. 나아가 기존 화이트 큐브에서와 달리 한옥에서도 시각은 물론 청각·후각 등 공감각을 자극하는 작가 특유의 작품들을 통해 작업의 흐름, 깊어지는 예술세계를 맛볼 수 있는 자리다.

양혜규의 조각과 평면작품이 함께 배치된 ‘동면 한옥’ 전경 일부. 국제갤러리 제공

양혜규의 조각과 평면작품이 함께 배치된 ‘동면 한옥’ 전경 일부. 국제갤러리 제공

전시장에서는 광원 조각인 ‘토템 로봇’(2010), 인조 짚을 주재료로 직조한 연작 ‘중간 유형’(2015~)의 하나인 ‘중간 유형-서리 맞은 다산의 오발 이무기’(2020) 등을 먼저 만난다. 아직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은 한옥이라는 장소적 특성을 살려 대들보부터 바닥까지 설치됐다. 용이 돼 막 하늘로 승천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막 바닥으로 내려앉은 것일까. 무지개빛 방울을 가득 단 몸체에 해저·사막·열대 등의 지역을 상징하는 인조 식물을 담은 주머니로 구성된 ‘소리나는 행성 주머니-홍예 식물 지도’는 최신작이다.

벽면의 흑경 조각 ‘칠흑같이 회전하고 반사하며 흐르는 검은 큐브형 수도꼭지-비늘 굴린 정사각형 #17’(2023)을 지나면 저 앞 좁은 공간에 작품들이 그득해 마치 보물창고, 수장고같은 분위기를 낸다. 빨래 건조대를 방울로 감싸는 등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연작 ‘소리 나는 접이식 건조대-마장 마술 #7’(2020), ‘소리 나는 돌림 무엇이든 흐름 반구 #22’(2022)를 비롯해 ‘중간 유형’ 연작 작품들이다. 특히 창문 너머 뒤뜰에는 나무를 감싸고 있는 ‘중간 유형-탄소 맞은 수컷 칠발 이무기’(2023)가 보인다.

다른 전시공간에는 ‘래커 회화’ 연작과 판화 작업,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지역 여행 중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생생히 감각한 울퉁불퉁한 길의 지형과 이동의 과정을 추상적으로 담은 ‘멀미 드로잉’ 연작 등이 있다. 또 전통 무속의 설위설경에서 영감 받은 ‘황홀망’ 연작을 접이식 병풍으로 제작한 작품, 민속적 수공예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을 잘 보여주는 조각 등도 함께 선보인다. 중정에는 전통설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영감받은 설치 ‘소리나는 동아줄’(2023) 등이 눈길을 잡는다.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 조각·설치를 대들보와 기둥·서까래·중정 등이 두드러지는 고즈넉한 한옥에서 감상하는 독특함이 있다. 더욱이 전시장에는 여러 한약재 냄새가 풍기고, 곳곳에 전기 양초들이 조명 역할을 한다. 전시장으로의 개관이라는 새 봄을 기다리며 동면하는 한옥에서 승천을 앞둔 작품들을 만나는 셈이다.

양혜규의 ‘동면 한옥’ 전 전시장 전경 일부. 국제갤러리 제공

양혜규의 ‘동면 한옥’ 전 전시장 전경 일부. 국제갤러리 제공

한편 지난 수년동안 국제적 미술관·비엔날레·갤러리 등에서 작품전을 가져온 양 작가는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개인전·단체전·프로젝트 등을 통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3월 브라질 미술관에서 남미 첫 개인전을 연 그는 최근 막을 내린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벨기에 겐트 현대미술관S.M.A.K에서는 개인전을 마쳤다. 벨기에에서의 개인전은 오는 11월 핀란드 헬싱키미술관으로 순회한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 스마트뮤지엄, 호주국립미술관에서는 개인전이 진행 중이고, 중국에서 열리고 있는 ‘아란야 플레인 에어 아트 프로젝트’에는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의 도보다리 회담 중 들린 새소리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으로 분단 상황을 담은 대형 야외 설치작 ‘비대칭 렌즈 위의 DMZ 철새-휘욧 휘욧 주형기(되지빠귀)’를 선보이고 있다. 11월에는 미국 뉴욕 퍼포마비엔날레에 초대받아 구겐하임 미술관내 극장에서 모노드라마 ‘죽음에 이르는 병’이 상영되는 등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곳이 줄을 잇고 있다.

‘동면 한옥’ 전은 10월 8일까지, 아니쉬 카푸어 전은 10월 22일까지다.


Today`s HOT
합동 군사 훈련 위한 대만 공군 미라지 전투기 이탈리아에서 열린 배들의 경쟁 스타십 우주선의 성공적 이륙,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 두르가 푸자 축제를 기념하는 방글라데시 신도들
사형 반대 캠페인 동참 촉구 시위 방글라데시 두르가 푸자 축제를 기념하는 신도들
네팔의 다샤인 축제에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낮은 주택 임대료 요구 시위를 벌이는 스페인 시민들
허리케인 밀턴, 플로리다 주를 강타하다. 2024 노벨문학상 첫 한국 작가 한강 레바논에서 대피하는 터키 국민들 반려견과 고양이에게 무료 백신을 제공하는 수의사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