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우 작가, 대만 국립중정기념당서 개인전 ‘응집’
새기고 또 집적하는 ‘도장 작가’…신작들로 대만서 첫 선
손톱만한 것부터 명함 크기에 이르기까지 도장, 전각같은 인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표현할 수있다. 이름 뿐아니라 온갖 형상의 사물, 추상적 감정은 물론 자신의 정신세계, 삶의 다양한 표정도 담아낸다. 특정 쓰임새를 위한 실용품부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품에 까지 이른다. 특히 전서체로 새긴 전각은 오랜 역사 속에서 ‘전각 예술’ ‘방촌의 예술’로 평가받고 있다.
글자와 그림·조각이 어우러지는 인장은 여느 매체들과는 다른 특유의 밀도 높은 조형적 아름다움을 품는다. 여기에 만든 이의 정체성이 담긴 분신같은 상징성까지 곁들여진다. 물론 고도의 집중력,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작가의 수도자적인 작업·태도도 필수적이다.
중견작가 이관우(54)는 국내외에서 ‘도장 작가’ ‘인장 작가’로 유명하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에게 젊은 시절 어느날, 방치된 빈 집에 나뒹굴던 나무 도장이 숙명처럼 다가왔다. 한 사람을 대변·상징하는 도장은 사물이지만 그 사람, 인간을 상징하는 아주 작지만 어엿한 그림으로, 인간의 생명력이 응축된 존재로 느껴진 것이다.
그는 이후 인장 작업에 빠져들었고, 여러 재료에 사람 얼굴, 다채로운 문양, 탑이나 나무·백자 그릇, 나아가 자신의 내면 심상을 새겼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패널 화면에 수십개~수만개에 이르기까지 하나씩 모아 붙였다. 이 작업은 어느새 20년을 훌쩍 넘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미지를 처음 새기는 것부터 패널 화면에 어우러지게 집적하는 것까지 수많은 땀, 그만의 조형감각이 녹아든다. 작은 그림 수백~수천 개가 집적된 화면은 새로운 큰 그림을 만들어 낸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보는 이 저마다의 상상력을 자극해 다양하게 읽혀지는 것이다.
이관우 작가의 작품들이 대만 관람객들을 처음 만난다. 10월 4일부터 대만의 국립중정기념당 전시실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통해서다.
시리즈 작품명을 따라 전시명도 ‘응집(Condensation)’으로 한 작품전에는 신작을 중심으로 20여 점이 출품된다. 초기 작품에서 진화해 인장들을 레진으로 캐스팅함으로써 다채로운 색감까지 더해졌다.
이 작가의 말처럼 “어떻게 보면 숱한 모양·이미지·색감으로 이질적이지만 (패널 화면) 사각 틀 안에 모두 모여 있는 ‘응집’은 사람과 사람, 이들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어울려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 가는 세계를 이야기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공존시키고자 하는”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에 대해 중국 평론가 왕진강은 “생명철학으로 해석한 동양예술”이라고 평했다. 그는 “이관우의 ‘인장회화’는 독특한 재료와 창작·표현방식으로 미세한 ‘조각’과도 같은 독특한 ‘회화”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알록달록한 생명이 새겨진 응결, 나아가 (그들이 모인) 전체 인류 생명의 용솟음이 응결됐다”고 밝혔다. 미국 평론가·작가인 로버트 C. 모건은 “이관우는 작품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욕망을 버리는 것을 성취하려는 것 같다. 그의 작품은 영적이고 명상적”이라고 평했다.
이 작가의 작품전이 열리는 국립중정기념당은 대만의 역사와 정치·예술을 상징하는 대표적 건축물이다. 초대 총통인 장제스를 기념해 세워진 기념관으로 앤디 워홀 등 해외 유명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