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여년 만에 모습 드러내
한반도 고선박 중 최대 규모
고려시대의 곡물 운반선으로 보이는 고선박이 1000년여 만에 전남 해남 송호해수욕장 갯벌에서 확인됐다.
‘해남선’으로 이름 붙여진 이 고선박은 국내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15척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고선박 내부에서는 볍씨 같은 각종 씨앗, 도기 등의 유물이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 5월 해남군 송지면 송호해수욕장 해역에서 선체 일부가 발견·신고돼 수중 발굴조사가 이뤄진 ‘해남선(海南船)’의 조사 결과 11세기 초반~12세기 중반에 제작된 고려시대의 고선박으로 드러났다”고 19일 밝혔다.
조사에서는 ‘해남선’의 선체 바닥면인 저판이 모두 7열로 구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해양문화재연구소는 “저판의 규모로 볼 때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굴된 고선박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며 “현재 해남선은 저판, 좌현 2단·우현 3단의 선체 양옆 외판 등이 남아 있으며, 최대 길이는 약 13.4m, 최대폭 4.7m 크기”라고 밝혔다.
‘해남선’ 내부에서는 볍씨와 여러 종류의 씨앗들이 담긴 도기를 비롯해 기와, 숫돌, 나무로 만든 닻을 가라앉히기 위해 매다는 돌인 닻돌 등 모두 15점이 확인됐다. 해양문화재연구소는 “수습된 유물들과 선체 부재들의 방사성탄소연대 분석 결과 11세기 초반에서 12세기 중반쯤으로 나타났다”며 “당시 제작·운항한 고려시대 곡물 운반선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해남선’ 발굴로 현재까지 우리나라 해역에서 발굴된 고선박은 모두 15척이 됐다.
수중발굴로 드러나는 고선박들은 침몰 당시의 일상생활 용품을 비롯해 수출입 제품 등 다양한 유물을 싣고 있어 ‘보물선’으로 불린다. 무엇보다 고선박은 당대 역사와 생활문화상 복원은 물론 전통 배(한선), 해상 운송체계나 국제교류 등 역사적·학술적·기술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그 가치가 높다.
지금까지 국내 바다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고선박은 인천 옹진군 영흥면 섬업벌 해저에서 2013년 확인된 ‘영흥도선’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배다. 배 내부에서는 여러 유물과 함께 황금빛을 내는 당시 최고급 도료인 황칠이 발견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고려시대 고선박은 ‘해남선’ 발굴로 모두 11척이 됐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에서 발굴된 ‘마도 1·2·3호선’ 등이 대표적 고려 선박이다. ‘마도 3호선’은 1265~1268년 사이에 전남 여수 일대에서 거둬들인 곡물과 전복 등을 싣고 강화도로 가던 중 침몰했으며, ‘마도 1호선’은 1208년 나주와 해남·장흥 등의 곡물을 개경으로 운반하던 중 난파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213년쯤 전북 고창 일대에서 모은 곡물 등을 싣고 개경으로 가던 ‘마도 2호선’에서는 유물 400여점이 나왔는데, 이 중 청자 매병과 대나무 조각을 다듬어 각종 물품명 등을 적은 표식인 죽찰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마도 해역 인근인 대섬 앞바다에서는 청자운반선인 ‘태안선’이 발굴되기도 했다. 고려시대 배로는 또 경기 안산시 대부도 해역에서 발견된 ‘대부도선’ ‘대부도 2호선’을 비롯해 ‘신안 안좌도선’(전남 신안군 안좌도), ‘군산 십이동파도선’(전북 군산시 십이동파도), ‘목포 달리도선’(전남 목포시 달리도), ‘완도선’(전남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고선박은 지금까지 1척만 발굴됐다. 1417~1421년 세금으로 거둬들인 세곡과 분청사기 같은 공물을 싣고 한양으로 운항하다 침몰한 ‘마도 4호선’이다.
그동안 서남해 해역에서는 2만여점의 도자기를 비롯한 수많은 유물로 유명한 중국 원나라의 선박인 ‘신안선’을 비롯해 ‘진도 통나무배’ 등 중국 선박들도 확인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 해남선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보존 처리를 진행할 것”이라며 “해남선의 좌초 경위와 성격 등을 규명하기 위한 구체적인 연구도 순차적으로 수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