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원문화연구소 발굴조사 성과 발표
“백제 토기 댜량 발굴, 백제 성 확실시” “지금의 석성 전 토성 흔적 확인”
성 내부선 부뚜막, 집수 시설도 드러나
삼국시대의 산성 유적으로 고구려와 백제·신라가 서로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다퉜던 장미산성(사적)이 원래 백제가 처음 쌓은 성으로 확인됐다.
한강을 따라 충주 분지로 드나드는 길목인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한 충주의 장미산성은 그동안 성을 처음 쌓은 주체가 삼국 중 누구냐를 놓고 논란이 있어온 중원역사문화권의 대표적 산성이다.
장미산성은 또 지금까지 돌로 쌓은 석성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을 가능성도 발굴조사에서 새롭게 드러났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는 “장미산성(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 발굴조사에서 성을 처음 쌓았던 세력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다량의 백제 토기를 발굴했다”고 21일 밝혔다. 백제가 장미산성을 처음 쌓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다.
백제 토기들은 장미산성 성벽 안쪽의 부뚜막 등 취사 관련 시설 주변에서 20여 점이 집중 출토됐다. 중원문화유산연구소는 “토기들은 항아리와 시루, 3개의 다리가 달린 삼족기, 접시에 여러 형태의 긴 굽을 붙인 굽다리접시(고배) 등으로 5세기 전반의 백제 토기”라며 “이들 토기는 장미산성의 축조 주체와 시기, 운영 시점 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일부 토기는 백제 한성 도읍기(한성백제, 기원전 18년∼475년) 왕성으로 확실시되는 서울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토기들과 특징이 비슷해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중원문화유산연구소 어창선 학예관은 “장미산성은 성의 축조 주체와 시기, 변천 과정, 성 내부 생활공간 등에 대한 여러 궁금증이 끊임 없이 제기돼온 유적”이라며 “장미산성을 처음 축조한 세력이 사용한 토기들이 백제 토기로 나타남에 따라 백제가 처음 성을 쌓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밝혔다. 장미산성에서는 그동안 백제는 물론 신라, 고구려 토기와 기와 조각들이 일부 발견돼 학계에서는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차례로 성을 점령해 경영한 것으로 추정해왔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장미산성이 원래 토성이었으나 석성으로 변화됐을 가능성도 확인됐다.
중원문화유산연구소는 “북쪽 성벽 중앙부 조사 결과, 성벽은 처음에 흙을 켜켜이 치밀하게 다져 최대 너비 11m, 높이 5m 안팎으로 쌓았다”며 “이후 성벽은 먼저 만들어진 토축 성벽의 바깥면을 일부 절단하고 안쪽과 바깥쪽 모두 돌로 쌓은 석축성벽으로 변화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석축 성벽의 규모는 너비 7m, 높이 3m 이상으로 추정됐다. 어창선 학예관은 “일부만 발굴조사가 이뤄지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장미산성이 원래 토성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굴조사에는 흙으로 쌓은 성벽과 같은 시기에 사용한 부뚜막 등 취사 관련 시설, 산성의 운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물을 모아두는 집수 시설의 일부도 성 내부에서 확인했다.
연구소는 “석성으로 알려져 있는 장미산성이 처음에는 토성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 이를 쌓았던 세력이 백제와 밀접하게 관련됐다는 사실, 성벽 구조와 축조기법·내부 시설의 배치 양상 등을 새롭게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발굴조사였다”며 “앞으로 추가 발굴조사를 통해 산성의 운영과 생활상을 상세하게 규명하고, 성벽과 성내 시설의 구조를 명확히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는 22일 오전과 오후 두차례에 걸쳐 발굴조사 현장에서 그동안의 조사 성과와 출토 유물을 공개하는 학술간담회, 일반인들을 위한 공개간단회를 개최한다. 중원문화유산연구소와 충주시는 장미산성의 구조와 내부 시설물의 활용·시기적 변천 과정을 밝혀내고, 보존·활용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2022년 10월부터 연차적으로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