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갯벌의 시대···역간척으로 ‘사라진 갯벌’ 살려낸다

윤희일 선임기자
충남 서천갯벌의 유부도 인근을 걷고 있는 국제자연보존연맹(IUCN) 지정 멸종위기종 넓적부리도요. |충청남도 제공

충남 서천갯벌의 유부도 인근을 걷고 있는 국제자연보존연맹(IUCN) 지정 멸종위기종 넓적부리도요. |충청남도 제공

충남 서천갯벌, 전북 고창갯벌, 전남 신안갯벌, 전남 보성·순천갯벌 등이 ‘한국의 갯벌’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26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서해안에 펼쳐진 갯벌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 뒤에는 갯벌의 가치를 알고 사라진 갯벌을 살리기 위해 땀흘린 지자체의 노력이 있었다. 충남도는 과거 간척사업으로 사라진 갯벌을 되찾기 위한 ‘역간척 사업’에 힘을 쏟기로 했다.

충남 서천군 장항항에서 바라본 서천갯벌. 멀리 유부도와 대죽도 일대에 되살아난 갯벌이 보인다. |충청남도 제공

충남 서천군 장항항에서 바라본 서천갯벌. 멀리 유부도와 대죽도 일대에 되살아난 갯벌이 보인다. |충청남도 제공

■염전으로 사라진 갯벌, 바닷물로 되살렸다

서천 갯벌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부도(충남 서천군 장항읍 송림2리) 일대가 사실상 ‘버려진 땅’이었다. 오래 전 염전으로 변했지만, 염전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염전도 아니고 갯벌도 아닌 상태로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충남도는 이 염전에 바닷물(해수)을 유통시켜 갯벌을 살리기로 하고 2017년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우선 유부도와 이 섬의 부속섬인 대죽도 일원에 있던 폐염전의 방조제를 철거하고, 방조제를 이용해 통행하던 주민들을 위한 다리를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사업은 올해말 종료된다. 이런 사업이 진행되면서 바닷물이 폐염전으로 들어가게 됐고, 무려 3만3000㎡에 이르는 갯벌은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갯벌이 살아나면서 칠게와 버들갯지렁이, 서해비단고둥처럼 이름도 생소한 희귀종들이 몰려들었다. 저어새와 넓적부리도요 같은 국제 멸종위기 철새들도 둥지를 틀었다. 올해까지 추진된 이 사업에는 68억6800만원 예산이 투입됐지만 그 가치는 헤아릴 수가 없다.

갯벌로 되돌아오기 전 유부도에 있던 폐염전. 충청남도 제공

갯벌로 되돌아오기 전 유부도에 있던 폐염전. 충청남도 제공

되살아난 서천 갯벌은 결국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갯벌, 자랑스러운 충남의 세계자연유산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갯벌 세계유산목록 등재 결정을 전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양 지사는 “서천 유부도 갯벌의 가치를 일찌감치 확인하고 생태복원에 주력해 온 충청남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며 “서천 유부도는 충남이 보유한 천혜의 자연 보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갯벌은 개발과 개척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공간”이라면서 “한국 갯벌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는 갯벌 정책의 패러다임을 대대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간척으로 사라진 갯벌을 ‘역간척’으로 되살려라

국내에서는 과거 식량 생산을 늘리고 국토를 넓힌다는 이유로 서울시 면적의 2배가 넘는 서남해안 갯벌을 육지(일부는 호수)로 만들었다. 충남도의 경우 1980년대 시행된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인해 무려 1만5000㏊ 갯벌이 사라졌다.

서산AB지구 간척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으로 생긴 호수 중 하나가 천수만 부남호(서산시 부석면, 태안군 남면)다. 하지만 담수호로 변한 이 호수의 수질은 6등급으로 농업용수로의 사용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오염된 담수를 방류하는 과정에서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경우도 많다.

충남도가 간척사업으로 사라진 부남호 일대의 갯벌을 역간척으로 되살리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역간척은 간척으로 훼손된 연안 하구와 담수호에 해수를 유통시켜 해안과 갯벌의 기능을 복원하고 수질을 개선하는 것을 말한다. 방조제 건설로 인해 해수의 흐름이 단절되면서 사라진 갯벌을 해수유통을 통해 복원하고 자연적으로 해양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연의 순리를 먼저 받아들인 네덜란드·독일 등 유럽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간척사업을 중단하고 역간척을 추진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휘어스호(북해 연안 담수호)의 환경개선을 위해 2004년 역간척을 추진했다. 당초 해수유통이 시작되고 나서 2년이 지나야 환경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3개월만에 환경개선 효과가 나타난 바 있다.

부남호 전경. 제방 앞 바다와 달리 호수 쪽 물은 뿌옇다. |충청남도 제공

부남호 전경. 제방 앞 바다와 달리 호수 쪽 물은 뿌옇다. |충청남도 제공

충남도는 부남호 일원을 대상으로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역간척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도는 수중암거를 설치해 호수로 해수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바닷물이 들어가야만 사라진 갯벌이 복원되기 때문이다. 이 사업을 추진하면 928㏊ 갯벌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충남도 관계자는 “역간척을 이용한 해수유통으로 갯벌을 되살려내겠다”면서 “다만 아직까지는 복원할 갯벌의 세부 구역은 확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사업에는 2972억원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충남도는 보고 있다.

도는 부남호 역간척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오염된 해양생태환경으로 인한 수질악화, 악취 등으로 지속돼온 주변 지역 투자 기피 등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역간척으로 복원된 자연갯벌을 활용한 친수형 수변공간을 조성하고 생태중심의 마리나 시설 등이 들어서면 지역경제도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는 부남호 역간척 사업을 주요 국가사업계획에 포함시켜줄 것을 건의하기로 하고 11월에는 정책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충남도 해양정책과 이성남 팀장은 “부남호는 경제성, 시급성, 가능성 측면에서 역간척이 가장 적합한 곳”이라면서 “과거 천혜의 어족자원 산란지였던 천수만의 위상을 되살리고 부남호 등 연안 담수호의 해양생태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역간척의 추진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충남도는 부남호 역간척 사업이 좋은 효과를 거두는 경우 다른 간척지에 대해서도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갯벌의 가치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흥미로운 자료가 많다. 1997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는 갯벌의 편익은 간척 농지의 100배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게재됐다. 해양수산부가 2012년 실시한 해수부 2단계 연안습지 기초조사에서 우리나라 갯벌의 경제적 가치는 1㎢당 63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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