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충격적인 희대의 연쇄살인범읽음

지난해 하반기 서울에서 잇따라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이 예상대로 동일범으로, 희생자가 부유층 노인과 출장마사지 여성 등 모두 19명에 달한다니 충격적이다. 노인들을 1차 범행대상으로 삼았다가 집안에 있던 다른 식구들까지 둔기로 내리쳐 살해한 것이나, 속칭 보도방이나 출장마사지 여성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죽인 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체를 토막내고, 이들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열 손가락의 지문을 도려내는 잔혹함을 보인 것은 인면수심의 극치이다. 외국영화에서나 보아온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이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났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불우한 환경에서 거듭된 교도소행에 이혼을 당하는 등의 개인사가 여성과 부유층에 대한 맹목적이고 무차별적인 증오심으로 작용했다는 범행동기도 놀라울 뿐이다. 이미 사건마다 현금과 저금통장, 귀중품 등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아 원한 등에 의한 단순살인이 아닌 부유층과 사회에 대한 ‘증오범죄’로 추정은 됐지만, 오직 증오심으로 19명에 달하는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범죄를 자행했다는 점은 충격을 넘어 경악이다. 개인적·사회적 소외감에서 나온 맹목적인 증오가 타인에게 공격적으로 표출되는 사례가 범죄유형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지적돼 왔지만, 이같이 개인적 불행의 원인을 모두 외부환경으로 돌리며 자행한 연쇄살인이 우리의 현실이 되리라고는 그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우리 사회도 각종 해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범죄에 직면하는 것 같아 심히 염려스럽다.

이러한 희대의 살인마를 검거한 것은 더 이상의 범죄를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경찰의 쾌거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달 초 서울 역삼동 한 여관에서 여성 출장마사지사를 감금,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긴급 체포됐던 피의자가 경찰에서 그 사건에 대한 감금·폭행 혐의는 부인하면서도 연쇄살인사건을 저지른 장본인이라고 진술했음에도 경찰의 조사를 받던 중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주했던 사실은 아찔하기만 하다. 얼마 뒤 다시 검거됐기에 망정이지 희대의 살인마가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는 법이 없고, 도피중 자살할 결심까지 했다니 자칫 서울판 ‘살인의 추억’이 영구히 미궁으로 빠질 뻔했기 때문이다. 경찰의 실책이 아닐 수 없다. 도주 12시간 만에 불심검문에서 그를 다시 붙잡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불행의 원인을 모두 외부환경 탓으로 돌리며 19명이나 살인을 한 피의자의 범죄를 엄중히 다뤄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이런 범죄를 유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범죄가 충동적인 일회성 범죄가 아니라 오랜 기일에 걸쳐 누적된 소외감과 사회 복수심에서 비롯된 ‘반복범죄’라는 점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에 이어 지존파, 막가파 사건 등에 이은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나 자신과 가족도 언제 어디서든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증오범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시급하다. 우선 소외감·좌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사회적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요구된다. 아울러 극단적 이기주의, 인명경시, 물질만능주의 등을 타파하기 위한 사회 전반의 노력이 종합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시점이다. 각종 제도마련에 따른 사회의 건강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이러한 유형의 범죄는 언제라도 되풀이될 수 있는 잠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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