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혁당 사건 30년과 사형제읽음

꼭 30년 전인 1975년 4월8일, 대법원은 이른바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을 확정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날 새벽 민청학련 학생들을 배후조종했다는 터무니없는 누명을 쓰고, 수감 중인 서울구치소에서 전격 처형됐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신속한 형 집행이었다. 인혁당 관련자들은 영구집권을 획책하던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희생된 정치적 피해자들의 대표격이었다. 사형제라는 합법의 틀은 갖추었으되 그것은 철저히 정치적 반대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언필칭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지금이야, 사형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는 사라졌다고 해도 반문명적 형벌제도라는 사형제의 본질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어떤 수사법(修辭法)을 동원해 사형제를 설명하려 해도 그것은 결국 국가의 이름으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점에서 전근대의 산물이다.

국제적으로도 사형제를 폐지했거나 사실상 폐지한 나라가 계속 늘어나 현재 118개국에 이르고 있다. 한때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러시아조차 2000년에 이미 사형제를 폐지했다. 반면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78개국에 불과하다. 특히 유럽연합(EU)에는 사형제를 폐지해야만 가입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제도는 선진화 수준을 가늠하는 징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제 국가인권위원회는 전원위원회에서 사형제 폐지 찬성입장을 정하고 이런 의견을 국회에 표명하기로 결정했다. 사형제는 생명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란 것이 인권위의 설명이다. 이런 결정에 국회가 반드시 따를 의무는 없다 하더라도 국가기관 최초로 사형제 폐지 의견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그렇다면 국회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사형제 폐지에는 명분도 있고, 현실적인 여건도 갖춰져 있다. 이미 여야 의원 175명의 서명으로 제출된 사형제 폐지 특별법안을 신속하게 심의해서 통과시키는 일만 남아 있는 셈이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훈련 지시하는 황선홍 임시 감독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라마단 성월에 죽 나눠주는 봉사자들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선박 충돌로 무너진 미국 볼티모어 다리 이스라엘 인질 석방 촉구하는 사람들 이강인·손흥민 합작골로 태국 3-0 완승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