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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화혁명’코드…전류는 계속 흐른다

X세대를 기억하는가. 1990년대 초반 한국사회에 문화적 충격을 일으켰던 젊은이들. 그들의 행동방식은 기존 사고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어른들은 이들의 일탈에 혀를 찼다. 부모들로부터 돈 소중한 줄 모르는 ‘오렌지족’이라는 욕을 들었고 386에게는 ‘탈 이념의 사생아’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 X세대는 최초의 문화혁명을 이룬 세대다. 그러나 그들이 일으킨 혁명은 파괴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소비자본주의의 첨병으로 소비문화의 새로운 코드를 보여 주었다. 과연 X세대에 대한 평가는 정당한 것이었을까. 10여년이 지난 오늘, 처음으로 X세대의 안부를 묻는다.

[피플]첫 ‘문화혁명’코드…전류는 계속 흐른다

#문화를 먹고 자란 세대

X세대 이전까지는 ‘전후세대’ ‘4·19세대’ ‘산업화세대’처럼 정치·경제 사건이 세대구분의 기준이었다. 386은 특이하게 나이·학번·출생연도라는 생물학적 기준으로 정의된 세대지만 여기엔 ‘386=민주화운동 세대’라는 암묵적 등식이 존재했다. 하지만 X세대는 그런 잣대가 통하지 않는다. X세대는 핵가족화, 대중매체와 정보통신의 발달, 고도성장의 혜택을 받으며 성장했다. 기성세대의 눈으로 보면 ‘X’(알 수 없음)이지만 X세대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 X세대란 말은 90년대 초중반 존재했던 ‘특정 세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소비지향적이고, 정치보다는 문화에 관심있고, 자기 표현에 당당하고, 기존 질서에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않는, ‘모든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X세대는 문화적 욕구를 당당하게 분출한 첫 세대다.

#포스트 386? 프리 N세대?

386세대와 N세대에 끼인 X세대는 독특하다. 386만큼 정치에 관심은 없지만 중요한 이슈가 생기면 급속도로 뭉친다. ‘2030’이란 이름으로 386과 결합해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X세대였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386과는 ‘문화 DNA’가 다르다. X세대는 최초의 PC통신 세대이고 개인주의 세대다. 네트워크를 통한 의사소통이 익숙하고 디지털 문화에 빠르게 적응한다. ‘엄지족’처럼 빠르게 문자를 보낼 수 있고 직장상사의 눈을 피해 ‘싸이질’을 하는 세대다. 우리나라 얼리 어답터의 ‘북방 한계선’은 X세대, 바로 그들이다.

X세대는 채팅을 외계어로 하지 않고 하루종일 휴대전화를 끼고 살지도 않는다. 기성세대에 편입하면서 ‘자유’위에 ‘책임’을 덧입었기 때문이다. X세대는 N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를 제공하는 ‘제도권의 유일한 세대’다.

#다시 X세대를 꿈꾸며

X세대는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급속도로 해체됐다. X세대의 무분별한 소비가 ‘IMF시대’를 초래한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들의 강력한 소비욕은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강화시켰다. 6개월에 한번씩 휴대폰을 갈아치우는 습관은 한국을 IT강국으로 만들었고 영화, 드라마 등 문화콘텐츠에 대한 강한 욕구는 지금의 ‘한류 열풍’을 가능케 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기류를 바꾸어 가며 리드해 간 세대다. X세대 이후 10년간 네트워크(N)세대, 모바일(M)세대, 월드컵(W)세대, 참여(P)세대, 유비쿼터스(U)세대 등 숱한 세대가 등장했지만 X세대처럼 시대적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X세대는 그만큼 문화적 에너지가 넘치는 세대였다. 사회 전반적으로 ‘버전 업’이 요구되는 오늘, ‘제2의 X세대’가 등장하기를 기다린다.

▲대부분 연예인…서태지 ‘상징적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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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먹고 자란 세대답게 X세대를 대표했다는 인물은 대부분 연예인이다. X세대가 굴곡이 많았던 것처럼 이들도 적지 않은 부침을 겪은 것이 특징이다.

‘X세대의 심장’이라고 불린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 4월에 혜성같이 등장해 1996년 1월 바람같이 사라졌다. 이들의 은퇴와 더불어 X세대 담론은 실질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만큼 서태지는 상징적이었다. X세대는 ‘발라드와 트롯’의 10년 장기독재를 끝내고 댄스뮤직과 랩을 추앙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은 트렌디 드라마를 처음으로 즐기던 세대다.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마지막 승부’ ‘종합병원’ 등이 1993~94년에 쏟아져 나왔다. 이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장동건, 신은경, 박형준, 손지창, 심은하 등) 대부분은 X세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특히 신은경은 남성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전문직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그려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드라마와 힙합의 영향으로 농구가 크게 유행했다. ‘슬램덩크’가 만화판을 휩쓸었고 이 당시 등장한 이상민, 문경은, 전희철 등 ‘마지막 농구’ 세대가 여전히 한국 농구를 호령하고 있다. 또 이때는 ‘미소년 전성시대’였다. 화장품 ‘트윈엑스’의 광고모델이었던 김원준, 이병헌은 곱상한 외모로 젊은 층의 큰 인기를 누렸다.

〈글 김준일기자 anti@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hoto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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