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보다 개처럼 살아라

정승보다 개처럼 살아라

개만도 못한 XX라고? 우리 선조들은 욕 하나를 지을 때도 얼마나 탁월하셨던가. 지난 한해, 되돌아보면 우리는 정말 개만도 못할 때가 많았다.

개가 바라본 인간세상. 그 요지경을 통해 우리가 개에게 배워야 할 것들을 찾아보면 어떨까. 개팔자가 상팔자라는데, ‘개의 해’를 맞아 올 한해 상팔자로 한번 살아보자.

#1. 개보단 나아야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이 미쳐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이 인간을 공격한다고 쳐봐. 그 순간에도 마지막 최후까지 인간의 편이 되어 함께 싸워줄 유일한 동물이 있다면 뭘꺼 같아? 바로 우리야.

산넘고 물건너 3년 만에 옛 주인을 찾아온 ‘곰순이’ 얘기를 들려줄까? 2004년 어느날, 경기 연천의 한 식당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더러운 개 한마리가 들어왔어. 몸엔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털은 듬성듬성 빠진 데다 어디서 다쳤는지 왼쪽 발엔 피가 고여 절뚝거리기까지 했지.

당연히 주인은 발길질을 하며 밖으로 개를 쫓아냈어. 그런데 발에 차이면서도 이 개는 오히려 꼬리를 흔들고 재롱을 피우는 거야. 이상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3년 전 강원도 철원 사람에게 팔아넘긴 ‘곰순이’였던 거지. 연천과 철원 사이는 지뢰밭이 널려 있는 군사지역인 데다, 산세가 험한 봉우리와 강을 건너야만 하는 곳인데 말야. 인간들은 곰순이를 ‘기특한 개’라며 한동안 화제에 올렸대나봐.

정승보다 개처럼 살아라

‘똑똑한 진돗개라서?’ 천만의 말씀. 곰순이는 인간들이 ‘이 똥개만도 못한 놈’이라며 남을 무시할 때나 들먹거리던 바로 그 ‘누렁이’였다고. 비록 똥개라도 우리 개들은 한번 정을 준 존재에겐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신의를 저버리지 않아.

근데 솔직히 말해 요샌 가끔 회의가 들곤 해. 인간이 과연 우리가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신의를 바칠 만한 존재일까? 개도 사흘만 기르면 주인을 잊지 않는데, 평생을 길러준 부모에게 발길질을 하고 심지어 흉기까지 들이대는 사람들의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질 않나. 우리 친구 ‘스너피’가 연루되기도 했던 그 사건도 그래. 어제는 ‘베스트 프렌드’라더니 오늘은 ‘다 쟤가 속인 것’이라며 서로 폭로전만 일삼고. 도심 한복판에선 농민과 전경이 육탄전을 벌이다가 나이 많은 농민분이 전경 방패에 맞아 숨을 거뒀다며. 개싸움도 아니고 대체 그게 뭐람.

‘개만도 못한 놈’이라며 애먼 우리를 들먹여도 좋으니, 제발 진짜 개만도 못한 놈이 되진 말아줘. 당신들만 보며 목숨 다해 신의를 바치는 우리를 봐서라도.

#2. 개처럼 벌면서 개처럼 놀아라

당신도 새해 목표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거야?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왜 개처럼 번 돈을 하필 정승처럼 써야 돼?

사실 따져보면 제대로 돈 쓰는 정승은 찾아보기 힘들잖아. 예나 지금이나 녹봉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곳저곳 재물만 긁어모아 자기 당 육성하는 데 온갖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최근에도 그래. 지난 한해만도 얼마나 많은 정승들이 돈 잘못 써서 검찰을 들락날락했어. 누구는 부동산 투기하다 옷 벗고, 누구는 돈으로 표를 사서 금배지 떼고, 누구는 돈으로 꼬시려다 도청 테이프 때문에 곤욕 치르고.

그런 의미에서 올해 목표를 이렇게 바꿔보는 건 어때? ‘개처럼 벌면서 개처럼 즐겨라’로 말이야. 개처럼 번다는 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어라 일만 한다는 뜻으로 오해하진 말아줘. 그건 우리 개의 특성을 무시한 발언이라고.

정승보다 개처럼 살아라

우릴 한시간만 잘 관찰해봐.

우리에겐 따분한 게 없어. 주변의 풍경, 냄새, 소리, 상대방의 사소한 움직임까지 세상 모든 게 흥미롭지. 사냥개는 주인이 신발만 신어도 일하러 나갈 생각에 즐거워서 껑충껑충 뛰고, 경찰견은 지겨운 훈련인데도 매번 신이 나서 열성적으로 원반을 물어오잖아.

우린 원하는 것이 묻혀 있으면 찾을 때까지 죽어라고 땅을 파. 무척이나 재밌는 표정으로 말이야.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도 않아. 으르렁거리는 것으로 충분할 땐 물어뜯지 않는 법이지.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놀기. 그게 바로 우리 개들의 삶이야.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을 즐길 줄 알고, 맛있는 음식은 감사한 마음으로 남김없이 먹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제일 먼저 뛰어나가 맞이하지. 행복하면 온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해.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부러워만 하지 말고 당신도 한번 그렇게 살아봐.

#3. 유기견지수

요즘 우리들 사이에서도 ‘노숙개’가 큰 이슈가 되고 있어. 옛날엔 덩치 큰 누렁이나 바둑이뿐이었는데, 요샌 새침떼기 치와와나 뽀얀 말티즈까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더라고. 한번 잘 봐봐. 신기하게도 우리를 보면 경제를 읽을 수 있으니까.

정승보다 개처럼 살아라

어디 구체적인 통계(서울 기준)를 살펴볼까? 벤처붐이 남아 있던 2002년엔 구조된 유기견 수가 3,404마리에 불과했어. 그게 2003년이 되면서 7,389마리로 배 이상 늘더니 2004년엔 1만5천6백88마리로 네 배 이상 뛰더라고. 그러더니 주가가 1,000을 돌파했다던 지난해는 증가세가 조금 줄어 1만8천여마리로 소폭 늘더군.

한마디로 돈 있을 땐 우리가 원하지도 않은 중성화수술 시켜주고, 털 염색해주고, 옷도 사입히더니 돈 없으면 쉽게 내다 버린단 거지. 어쩌겠어. 우리야 주인의 인생유전과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애들 학원 하나 줄이는 건 벌벌 떨어도, 우리집 막내라며 귀여워하던 강아지는 하루아침에 내다 버릴 수 있는 게 사람이잖아.

그래서인가. 비교적 잘사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는 유기견 숫자가 적더라고. 지난해(11월 기준) 강서구는 구조된 유기동물 숫자가 1,194마리였고, 은평구는 912마리, 관악구는 818마리였어. 도둑고양이도 포함된 수치지만 대부분이 우리 애완견들이지. 그런데 재밌게도 부자동네라는 강남구는 753마리, 서초구는 366마리에 불과한 거야. 그나마 강남구는 워낙 유동인구가 많아 다른 지역 사람들이 지하철역 근처에 버리고 간 수치가 포함된 것 같다고 하더군.

사람들은 복잡한 경제지표를 단순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지수를 쓴다지? 맥도널드 지수 같은 거 말이야. 이쯤되면 아예 유기견 지수도 하나 만들어보면 어때? 유기견 숫자를 보면 지금 서민경제가 어떤지 알 수 있으니 말이야. 더불어 우리 애완견의 생명을 액세서리처럼 여기는 당신들의 양심지수도 말이지.

〈정유진기자 sogun77@kyunghyang.com〉



Today`s HOT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400여년 역사 옛 덴마크 증권거래소 화재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장학금 요구 시위하는 파라과이 학생들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케냐 의료 종사자들의 임금체불 시위 2024 파리 올림픽 D-100 솔로몬제도 총선 실시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