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이끌 60인]내가 본 박찬욱

나는 박찬욱 감독을 존경한다. 박감독의 데뷔작 ‘달은…해가 꾸는 꿈’(1992)에 빗대 표현하자면 ‘박찬욱은…류승완이 꾸는 꿈’이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영화감독을 꿈꾸던 고교 시절부터 박감독을 선망했다. 데뷔하기 전 독립영화협회 워크숍에서 다큐멘터리 수업을 받을 때 인터뷰를 핑계로 박감독을 만났고, 제작이 무산된 ‘야간비행’과 두번째 영화 ‘3인조’(1997)에 연출부로 참여해 현장수업을 받기도 했다. 각본·연출작업 외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신문과 영화전문지 등에 발표한 글은 내 영화의 자양분이 되었다. 이 글은 최근 ‘박찬욱의 오마주’와 ‘박찬욱의 몽타주’라는 제목으로 재발간되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박감독은 변함이 없다. 영화를 보고, 독서를 하고, 음악·미술감상을 하는 데 여념이 없다. 뭘 봤는데 어떻더라, 어떤 음악·미술을 쓰면 좋겠더라, 그때 이렇게 찍었으면 더 좋았을 걸, 이런 영화는 어떨까 등 영화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 언제 어디에서나 영화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어느 영화청년에게도 뒤지지 않을 박감독의 열정이 부럽고,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끊임없이 ‘악착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박감독을 나는 진정으로 존경한다.

박감독은 창조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를 위해 어떤 시도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식당에서 메뉴를 정할 때에도 늘 새로운 걸 선택할 정도다. 남들이 안 먹는 걸, 먹지 말라고 하는 음식을 굳이 선택하기도 한다.

박감독은 몸은 40대인데 정신세계와 언행은 혈기 넘치는 청년이나 다름없다. 미군 장갑차에 효순이와 미선이가 희생됐을 때 삭발투쟁을 벌이고,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고, 영화감독조합을 결성하고, 존경받는 예술가로 선정되면서 받은 상금 2천만원 전액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기부하는 등 영화작업 외적인 활동에도 열심이다.

언젠가 한 신문에서 박감독의 작품을 폄훼하는 글을 실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글은 정도가 심했다. 스크린쿼터 축소와 관련해 박감독을 표적으로 삼은 것이었다.

어쨌든 박감독은 주위 시선에 아랑곳 않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주위에서 더이상 박감독을 의도적으로 흔드는 일은 없어야겠다. 더 좋은, 박감독다운 영화를 보고 싶다면 그가 영화작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놔둬야 할 것이다.

〈류승완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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