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도안 ‘그들만의 자문위’…사학자 등 빠져읽음

한국은행의 1만원권 신권에 담긴 혼천의 논란이 새 5000원권으로 옮아가고 있다.

화폐 도안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한국은행이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지 못하고 도안작업을 관(官) 주도로 진행해 문화적 상징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화폐도안 ‘그들만의 자문위’…사학자 등 빠져

선문대 고고학과 이형구 교수는 29일 “시중에 통용되고 있는 5000원권 신권 뒷면의 그림도 우리 문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월부터 발행된 5000원권 신권은 앞면에 율곡 이이를, 뒷면에는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담았다. 한국은행은 당시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8폭 초충도 그림에서 수박과 맨드라미를 도안화해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교수는 “도안에 사용된 수박은 아프리카 열대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언제 전래됐는지 불분명한 것”이라며 “중국에서도 수박을 서쪽에서 온 오이라고 하여 ‘시과(西瓜)’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폐에 쓰기에는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신사임당 초충도 중 방아깨비, 개구리 등 우리나라 자연에 서식하는 것들을 소재로 했으면 더 좋았다는 뜻이다.

화폐 도안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는 근본 원인은 한국은행의 화폐도안전문위원회의 외부 자문위원에 순수 역사학자나 문화재 전문가가 한명도 없고, 미술계 위원으로만 구성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발권규정과 시행세칙에 따르면 화폐도안자문위원회는 5명 이상 1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발권국장이 위원장을 맡는다. 외부 자문위원은 시각디자인 전공 4명, 색채전문가 1명, 미술사 전공자 1명으로 6명 모두 미술계 인사로 구성됐다. 나머지 4명은 한국은행과 조폐공사 관련 직원들이다. 한국은행측은 “지폐에 따라 테마가 다른데 처음부터 이 모든 사람을 다 포함할 수는 없다”며 “해당 사항이 생기면 따로 자문을 구하고 자문료를 주는 식으로 운영했다”고 설명했다.

문화연대 황평우씨는 “화폐나 우표, 국새 등 도안관련자문위원회를 보면 규정에만 묶여 경직되게 운영된다”며 “만약 자문위원회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주제라면 소위원회를 두어 소위원회에서 탄력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이번 1만원권 신권처럼 과학기술을 지폐 주제로 사용하고자 했다면 과학기술 소위원회를 따로 구성하거나 최소한 과학사 학자의 의견을 공개 청취했어야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외국에서는 화폐 도안에 전통문화, 자연환경, 각 분야의 다양한 인물들이 단축된 역사·문화 자료로 기획되고 있다. 화폐를 예술작품으로 수집하는 소장가가 늘어날 정도로 그 문화적 가치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한나라당 정종복 의원은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가 화폐 도안을 주도해 위폐방지나 기술적인 부분에만 주력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의원은 “화폐는 나라의 상징이며 국기 다음으로 소중한 것이므로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제대로 담아야 한다”면서 “역사학자 및 해당분야 전문가, 문화재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의무적으로 반영토록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정·강병한기자 e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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