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시절 생각나 선수들 대변”… 해임된 유남규 감독 읽음

“현역시절 생각나 선수들 대변”… 해임된 유남규 감독

결혼식을 눈앞에 두고 직장에서 쫓겨난 심정은 어떨까. 농심삼다수 탁구단 감독직에서 해임된 유남규 국가대표팀 감독이 그 처지가 됐다. 88올림픽 단식 금메달리스트이자 현 국가대표팀 감독인 그에게 해고는 나이 마흔에 찾아온 시련으로 여겨진다.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은 유감독은 1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이 마흔에 결혼을 앞두고 큰 인생 공부를 했다”고 해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내달 1일 윤영실씨(32·핸드백 디자이너)와 결혼한다.

졸지에 실업자를 남편으로 맞아야 할 신부의 반응이 궁금하다.

“국가대표팀 감독직은 변함 없으니까 앞으로 국가를 위해 더 명예롭게 일하라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농심삼다수에 있을 때도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당분간 꼬박꼬박 월급은 못갖다줘도 탁구 실력이 있는데 설마 제가 아내될 사람 하나 못 먹여 살리겠습니까. 그래도 힘든 시기에 제 곁에서 많은 힘이 되어줬어요. 그 고마움 평생 안 잊을 겁니다.”

사실 유감독은 이번에 삼다수와 갈등을 겪느라 체중이 4㎏ 정도 줄었다. 특히 소속선수 4명이 자신을 따라 팀을 떠난 게 가슴 아프다.

“고등학교 때 연봉 8000만원 주겠다는 곳을 뿌리치고 동아증권에 입단했어요. 1500만원부터 시작했지만 점차 대우가 나아진다는 약속을 믿었거든요. 농심삼다수 선수들을 보면 제가 선수시절 겪었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회사측에 선수들 입장만 강력하게 어필했던 것 같습니다.”

해고 통보를 받은 다음날. 그에게서는 해고자가 흔히 갖는 회사에 대한 적대감·분노감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

유감독은 오히려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움은 있다고 콕 찍어 얘기했다.

“탁구할 때는 저만큼 침착하고, 흥분 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바둑으로 치면 20수를 계산하고 있거든요. 여유가 있지요. 그런데 탁구 외적인 부분에는 성격이 좀 급해요. 직선적이고 싫고 좋고가 너무 분명하죠.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표현 방식을 좀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무리 내 말이 옳고, 내 생각이 맞더라도 속에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안되겠더라고요. ‘5초만 더 참고 생각하자’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유감독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신부 윤씨와 주례 선생님을 뵈러 길을 나섰다.

“결혼 준비도 여자친구 혼자 다 했어요. 저는 예복 맞출 때 찾아가서 사이즈를 잰 것밖엔 없습니다. 대표팀에 실업팀까지 맡아서 태릉선수촌 아니면 해외출장 가있는 시간이 더 많았거든요. 이제는 시간도 많아졌는데 그동안 못했던 것까지 더 신경써서 결혼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소속팀을 잃었다는 것은 유감독이 내년 베이징올림픽 준비에 더욱 집중할 계기가 됐다는 의미도 된다.

그는 “2008 베이징올림픽까지 대표팀 훈련에만 집중해서 좋은 성적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이제 좋은 것, 좋은 일만 생각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 임현주·사진 우철훈기자 korear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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