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서 만난 사람

배우 김성녀, 1인 32역 ‘58살 요정’

“한 10년 더해야 하는데… 놀만하니 늙었네요”

한 땀, 두 땀…. 한밤중 1~2시간 잠잘 시간을 줄여 바느질 하는 그는 또 누군가에게 선물할 색색의 조각이불을 짓는다. 지난해부터 맛들인 조각이불 만들기는 죽는 날까지 계속할 취미이자 ‘보은 프로젝트’다. 첫 이불은 지난해 남편에게 환갑 선물로 건넸다. 배삼식 작가, 인터넷에 ‘배우 김성녀의 미학’이란 블로그를 만들어 1000여건의 자료를 올려놓은 어느 팬 등 뜻밖의 선물을 받는 이들이 탄생하고 있다.

[무대서 만난 사람]배우 김성녀, 1인 32역 ‘58살 요정’

“밤에 잠 안 자고 미쳤지요. 하지만 기계로 드르륵 박는 것도 아니고 한 땀씩 정성스럽게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이불이잖아요. 연극도 마찬가지예요. 디지털 시대의 온전한 아날로그니까요. 이제 놀 만하니 늙어있지 뭐예요. 이 작품, 초연 때 약속처럼 10년은 해야 하는데….”

배우 김성녀(58). 그의 근심이야 어찌됐든 지난 14일부터 시작된 뮤지컬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을 보노라면 한 20년간은 너끈해보인다. 2005년 초연 때 김성녀가 자신의 이름을 처음 내건 것이다. 일제, 해방, 6·25 전쟁 등 요동치는 현대사의 파고 속에서 한 여인이 겪는 질곡의 시간이 촘촘히 박음질 된 작품이다. ‘빨갱이’로 몰린 한 남자가 집 안의 벽 속에서 40년을 숨어지내면서 그의 아내, 어린 딸 순덕과 나누는 사랑이 슬프지만 따뜻하다. 일본 작가의 원작을 배삼식 작가가 우리 시대 상황으로 바꾸었다. 김철환 작곡의 노래도 아름답다.

김성녀는 극 중에서 네댓살 된 여자 아이부터 칠순의 남자 노인까지 1인 32역을 생생히 연기한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담금질되는 사람이라지만 ‘배우 씨앗’이 따로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난해 대구 공연에서는 1500명 관객이 기립해 당황했다고 한다.

“공연 때마다 마음 쏠리는 인물이 달라져요. 27살부터 벽속에서 살아야 하는 남편의 마음으로 애끓는 날도 있고, 딸 순덕이가 돼서 더 울컥하기도 하고…. 나를 지켜주는 벽속의 요정이오? 글쎄요. 연극 세계속의 요정은 있어요, 손진책씨!”

[무대서 만난 사람]배우 김성녀, 1인 32역 ‘58살 요정’

극단 미추의 대표이자 남편인 손진책 연출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손 연출가는 지난 13일 리허설 현장에서도 작은 수첩에 적어놓은 지시사항들을 아내와 스태프에게 꼼꼼히 전달했다. 김씨 부부는 해마다 극단 미추의 대표상품인 ‘마당놀이극’을 선보인다.

“마당놀이 이미지가 너무 강한 게 사실이지만 그동안 연극 작품들도 많이 했는데 잘 모르시더라고요. ‘벽속의 요정’ 초연 때 어느 관객이 ‘김성녀도 연극 잘하네’ 하는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마당놀이극’은 극단 미추의 한해 농사고 그걸 잘해야 ‘열하일기만보’처럼 다른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어요. 마당놀이는 젊은 사람들한테 빨리 넘기고 정극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남편이 극단 대표이다보니 ‘마누라 내세운다’는 말을 들을까봐 김성녀 개인에게 조명이 갈 만한 작품은 더 하지 못한 탓도 있다. ‘벽속의 요정’도 PMC 송승환 대표가 판을 벌여 할 수 있었다.

“배우 중에 나처럼 친구 없이 혼자 노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학교(중앙대 국악대학 학장)에서도 그렇고요. 어디가서 할 일 없이 차 마시고 그런 걸 못했요. 술, 담배도 못하고요. 덕분에 네살짜리 여자애 연기도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앞으로도 포근한 이불처럼 좋은 작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죠.” 오는 24일까지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747-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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