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戰 불 끄면 ‘욕망’도 꺼지나…다시 시작된 전쟁읽음

유인경 선임기자

이중구·황운하서장 “집창촌 해체” 소신 선언

단속 비웃듯 인근서 더 호황…변종업소 활개

2004년 9월23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법’(이후 성매매방지법)이 처음 시행되었을 때 대한민국은 요지경 속이었다. 많은 남성들이 “맹자도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는데 그걸 어찌 법으로 막느냐”며 ‘9·11 테러보다 더 무서운 테러’라며 한숨을 쉬는가 하면 고매한 경제단체 대표도 “성매매방지법 시행후 숙박업소는 물론 제주도 등 관광지까지 불경기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하수구 문화도 필요하다”는 철학적 발언을 했다. 또 수십년간 각종 데모에 익숙한 국민들조차 놀랐던 성매매종사 여성들의 ‘생존권 보장’ 시위도 발생했고 ‘탈성매매 여성’의 재활사업이 여성부의 주요 업무로 자리잡았다.

경찰의 집중적 단속으로 대부분의 집창촌은 불이 꺼졌으나 여전히 심야나 은밀한 곳에서 성매매가 이뤄진다. 동네에 혐오시설은 사라졌지만 성매매는 더 깊고 더 넓게 퍼져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경찰의 집중적 단속으로 대부분의 집창촌은 불이 꺼졌으나 여전히 심야나 은밀한 곳에서 성매매가 이뤄진다. 동네에 혐오시설은 사라졌지만 성매매는 더 깊고 더 넓게 퍼져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로부터 4년, 다시 대한민국에 성전(性戰)이 시작됐다. 경찰대 1기 동기인 경찰서장 2명이 대한민국의 집창촌 해체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중구 서울 동대문 경찰서장(46)과 황운하 대전 중부 경찰서장(46)이 그 주인공이다. 황 서장은 올해 3월 고향인 대전 중부서장에 부임하자마자 인권 사각지대인 유천동 집창촌을 임기 중 완전 폐쇄하겠다고 공개선언을 했다. 연일 형사들과 기동대를 투입하고 소방서, 구청 등을 끌어들인 결과 현재 절반이 넘는 업소가 문을 닫았다. 황 서장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더욱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이중구 서장은 부임한 7월초부터 장안동 안마시술소들의 욕조를 떼어 압수하는 등 영업의지를 무력화하는 강력단속을 펴 ‘장안동 저승사자’란 별칭을 얻었다. 또 업주들의 상납 경찰 리스트 공개 협박 등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모습으로 지역주민들은 물론 국민들의 호응도 뜨겁다.

하지만 이 뜨거운 전쟁에 여전히 회의적이거나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원래 성매매법은 경찰의 의지에 따라 단속하고 눈감아주기도 하는, 눈에 띄면 잡고 불을 끄면 내버려두는 ‘바퀴벌레 잡는 법’이라 언론플레이가 끝나면 다시 잠잠해질 것”이라거나 “공개형인 집창촌이나 안마업소를 단속해도 더 은밀하고 더 다양한 성매매업소가 확산될 것”이라는 풍선론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성매매특별법은 득보다 해악이 더 많은 법일까, 또 4년간 정부는 이 법의 정착을 위해 어떤 일들을 했을까. 성전이 펼쳐지고 있는 현장, 성매매척결의 대명사이면서도 여성계로부터 가장 위험한 인물로 지적받은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 그리고 탈성매매에 성공한 여성을 만나 성매매특별법 4년을 조명해봤다.

집창촌은 줄어들고 성매매는 증가했다

지난 4년간 각종 통계자료만 보면 성매매를 뿌리뽑겠다는 법의 취지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듯보인다. 성매매 집결지와 성매매 여성의 숫자는 시행 초기에 비해 확실히 줄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성매매 방지법 제정 초기 전국 1969곳에 이르던 성매매 집결지 업소는 단속 이후 2007년 9월에는 995곳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성매매 여성도 5717명에서 2508명으로 눈에 띄게 감소했다. 성매매 집결지하면 떠올리는 서울 ‘미아리 텍사스’ ‘청량리 588’, 인천 ‘옐로 하우스’, 대구 ‘자갈마당’, 부산 ‘완월동’ 등 대표적 장소도 썰렁하기만 한 소강 상태다. 경찰은 “우리는 1960년대 윤락행위방지법이 시행될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성매매 업소에 대해 단속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현재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유흥가에 홍등(紅燈)이 꺼졌다. 큰길 따라 1㎞ 가깝게 윤락업소가 늘어선 거리 건물 외벽에 커다랗게 붙은 ‘안마’ 두 자는 빛을 잃었다. 단속반이 100t 분량의 욕조, 침대, 샤워용품 등 집기류를 철거해갔으니 성매매 여성이 있다해도 영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중구 서장은 부임과 동시에 단속을 시작, 업주 6명에 종업원과 손님 등 16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장안동 주민들은 “동네 이미지가 너무 나빠 속상했는데 이 서장이 해결해주는 것 같아 속시원하다”며 “우리 동네만이 아니라 전국의 성매매업소가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性戰 불 끄면 ‘욕망’도 꺼지나…다시 시작된 전쟁

이 서장의 의지도 확고하다. 이 서장은 인터뷰에서 “성매매업소는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유린은 물론 인근 주민에게 큰 피해를 주며 탈세의 온상이 되고 있어 반드시 뿌리뽑겠다”고 밝혔다. 한 안마시술소 업주가 목숨을 끊기도 했고 다른 업주들이 “돈 상납받은 경찰들의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수십억 원의 시설비를 투자한 업주가 ‘생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성매매는 불법이므로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이 서장과 황 서장의 이런 소신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불 꺼진 장안동과 달리 다른 집창촌들은 차이는 있지만 성매매법이나 최근의 성전을 비웃듯 영업 중이다. 장안동 안마시술소가 문을 닫자 인근 안마시술소는 더 호황이라는 소문도 있다. 서울 영등포역, 용산역, 청량리역 등 역근처의 집창촌은 겉으로는 불이 꺼져 있으나 속칭 ‘삐끼’라 불리는 이들이 호객 행위를 한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남성이나 중년여성들이 길가는 행인에게 다가와 “우리 집으로 와” “연애하고 가” 등의 말을 건네며 성매매를 주선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물론 경찰도 부지런히 역할을 한다. 역전 파출소 앞 경찰차는 수시로 성매매 집결지 주변을 순찰한다. 서울경찰청은 추석 연휴 후엔 촛불시위 등에 주력하던 기동경찰대 등을 이런 집창촌 부근에 파견해 순찰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처럼 집창촌이나 공개형 성매매업소는 성매매방지법 시행과 경찰의 단속으로 줄어들었지만 성매매는 성매매방지법이나 경찰을 비웃듯 급증하고 있다. 우선 성매매 혐의로 검거된 인원이 갈수록 늘고 있다. 2003년 1만2737명에서 2007년에는 3만9236명으로 늘었다. 특별법 제정과 경찰단속으로 성매매가 휴게텔·애인방·인형방 등 변종 업소, 인터넷·해외 성매매 등으로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주택가나 도심 번화가에도 오피스텔에서 전화로 예약받아 성매매를 하는 오피스텔 성매매가 확산되고 있다. 그뿐인가. 대딸방, 키스방, 여대생 마사지 등 교묘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변형된 유사성매매업소에서는 여대생, 주부들까지 “직접 성행위를 하지 않는데 무슨 죄냐”며 학비나 카드빚을 갚는다는 이유로 나서고 있다.

서울 논현동의 룸살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원생 강미영씨(25)는 “패스트푸드점의 시급 3500원 정도로는 학비를 마련하기 어려워 인터넷 구인사이트를 보고 이곳에 나왔는데 방학기간 중 하루 20만원 정도 벌었다”고 했다. “2차를 강요하진 않지만 성경험이 있어 특별히 거부감을 느끼진 않는다”고 말하는 그에게 성매매가 불법이라거나 순결·사랑에 대해 말하기가 민망했다.

이런 변종 업소들이나 겉으론 성매매를 하지 않는 룸살롱, 노래방 등의 겸업(?)업소는 뚜렷한 처벌 근거가 없어 경찰이 단속에 애를 먹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 역시 알선 부분의 증명이 어렵기 때문에 처벌 근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휴게텔 등은 영업정지, 허가취소 등 행정처분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비해 단속에 애로가 있다는 것이 경찰의 주장이다.

성매매 금지법에 담긴 가장 큰 의미는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이다. 집창촌 등 성매매업소에 감금되어 가족에게 연락도 못하고 하루에 수십 명씩 손님을 받아 몸을 다치거나 병에 걸려도 “주사 한 대 맞으면 된다”며 방치하는 업주들. 살이 1㎏ 찔 때마다 벌금을 받고 화장품, 옷, 가구 등을 마구 떠안겨 빚만 지게 하는 악덕포주들에게 시달려 인권은커녕 당장 내일 하루를 어찌 살지 계획할 능력조차 상실한 이들을 구제해 ‘인간답게’ 살게 해주려는 것이 목적이다.

4년이 지난 지금, 성매매 여성들은 행복해졌을까. 인권을 되찾고 밝은 세상에서 떳떳하게 살아갈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경찰 때문에 다 망했다”고 소란을 피우던 업주들은 문을 닫아도 다른 곳에서 변태영업을 하거나 철거된 곳에선 보상금을 받아 여전히 부유하게 산다. 성매매업소에 나와 있는 이들은 고용된 이들이고 진짜 업주들은 골프를 치고 외제차 굴리며 해외여행을 다니는 상류생활을 유지한다. 성매수를 한 남성들도 초범은 존스쿨(성범죄자 재범 방지학교)에 한 번 다녀오면 그뿐이다.

여성부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성매매 근절을 위해 이들에게 강력한 처벌과 단속을 요구하고 성매매 피해 여성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시선을 요구하고 있으나 아직은 미약하다. 각 지역 자활센터 등에서 쉼터를 마련해주고 도자기, 홈패션, 공예 등의 취미교실이나 글쓰기 등을 통한 심리치료도 해주고 탈성매매 여성이 탈성매매를 바라는 여성들에게 멘토가 되어 직접 상담을 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여성들은 대학에 진학하기도 했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자영업을 운영하는 등 과거를 잊고 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탈성매매 여성들은 아직도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매매특별법 덕분에 족쇄가 풀렸지만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식과 모순이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에 적응이 안 되는 이들이 더 많다.

자활센터에 모인 탈성매매 여성들을 만나보면 너무 구구절절한 삶의 굴곡에 가슴이 먹먹해져 “왜 그렇게 살았느냐”는 질문조차 잊게 된다. 대부분 갈등이 많은 가족,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가출해 다방, 술집 등지를 떠돌다 마지막에 집창촌으로 온 경우들이다. 술집에 나가서라도 돈을 벌어오라는 오빠, 구박이 심한 계모 밑에서 탈출해 이곳에 와서 업주들이 떠맡긴 옷과 생활용품에 이유 없이 채무자가 되고 휴일도, 밤낮도 없이 손님을 받고 아파도 병원에도 못 가는 생활을 10여년 하다 보면 아무리 지능이 높은 사람도 사고 기능이 정지된다. 39세에 인천 완월동에서 나와 자활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한 탈성매매 여성은 성매매 20년에 남은 것은 병뿐이라고 했다.

“목욕탕에 갈 때도 이모란 아줌마와 꼭 같이 가야 했어도, 제대로 돈을 받지 못했어도 그게 불법이라거나 인권이 침해받았다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그저 하루하루 살기에만 바빴고 어쨌든 먹고는 살았으니까요. 제 경우엔 업소 주인이 성매매특벌법 운운하며 내보냈는데 아마 나이가 많아 지정 손님도 없으니 저를 내보내고 새로운 종업원을 고용하려는 것 같아요. 자활센터에 와서야 처음으로 그림도 그려보고 글도 써봤는데 아직도 골목을 혼자 걷기가 두려울 만큼 홀로서기엔 익숙하지 않아요. 그래도 직업훈련을 받아 자격증을 딴 친구도 있고 검정고시 공부를 하는 친구도 있으니 저도 용기를 내야죠.”

일부에선 탈성매 여성들을 지도관리하는 시민단체들이 비용을 다른 곳에 써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왜 우리들이 낸 세금을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돈으로 써야 하느냐”며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도 많다. 또 여성부에서 신경써야 할 분야가 많은데 유독 탈성매매 여성들의 복지나 교육에만 비용과 시간을 쓰는 것 역시 다른 여성들에게 피해가 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지난 7월 세계 여성철학자 서울대회에 참석한 로지 브라이도티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교수는 “성매매를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로만 보는 것은 고정된 정체성”이라며 “무조건 성매매를 없애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성매매 여성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성매매는 정말 필요악이며 어떤 전쟁을 치러도 승자가 없을까. ‘지구촌 보안관’이라는 미국의 대통령 클린턴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국정 관련 전화를 받으면서도 모니카 르윈스키가 내리는 바지 지퍼소리에 더 귀를 쫑긋 세웠고 초등학생들의 음란사이트 가입이 급증하고 90세 영감님도 비아그라를 복용하며 성욕엔 정년이 없음을 자랑하는 세상. 법이 아니라 담당 경찰서장의 의지에 따라서만 단속되는 집창촌, 그리고 돈만 되면 여대생도, 주부도 성매매를 하는 세상.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성은 사고 파는 것이 아니다’라는 자각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올바른 성관념’에 대한 국민기초교육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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