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누아르’ 르네상스 다시 오나…범죄스릴러 ‘매드 디텍티브’읽음

‘무간도’ 이어 평단·대중 호평…거울방 총격신 압권

1980~90년대 중반 홍콩 범죄영화는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우위썬(吳宇森) 감독이 중심이 돼 창조해낸 이 영화들은 ‘홍콩 누아르’라 불리며 숱한 추종자를 양산했다. 그러나 이후 비슷한 영화들이 양산되자 관객들은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에 따라 많은 영화인들이 할리우드로 건너가면서 홍콩 범죄영화는 급속도로 쇠락기를 맞았다.

‘홍콩 누아르’ 르네상스 다시 오나…범죄스릴러 ‘매드 디텍티브’

2002년작 ‘무간도’는 홍콩 범죄영화의 부활을 알리는 작품이었다. 인기에 힘입어 총 3부작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디파티드’로 리메이크되면서 명장 마틴 스콜세지에게 뒤늦은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을 안기기도 했다.

18일 개봉한 ‘매드 디텍티브’는 현재 홍콩 범죄영화의 성취도를 증명하는 영화다. 이 작품의 공동감독 중 한 명인 두치펑(杜琪峰·53)은 현재 홍콩영화의 ‘지존’으로 불린다. 과거 홍콩 범죄영화는 상업성이 높은 반면 비평가로부터 외면받았고, 왕자웨이(王家衛)는 비평가와 일부 마니아의 지지 속에서 살아왔다. 반면 두치펑의 영화들은 완성되는 족족 칸, 베니스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고 있으며, 자국내 흥행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매드 디텍티브’ 역시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사람의 내면에 감춰진 여러 개의 인격을 통찰하는 번 형사. 범행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는 데는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만, 퇴임하는 상사에게 자신의 귀를 잘라 선물하는 등의 기행으로 경찰을 떠난다. 몇 년 뒤 숲에서 절도 용의자를 추적하던 왕 형사가 실종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사건을 맡은 호 형사는 번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번은 왕 형사의 동료인 치와이가 사건의 범인이며, 그에겐 7개의 인격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다중인격을 다룬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매드 디텍티브’의 가장 뛰어난 아이디어는 특정인의 다중인격을 여러 명의 배우가 함께 표현한다는 점이다. 우유부단해 보이는 중년 남성, 냉철한 젊은 여성, 폭력적인 젊은 남성 등이 무리를 지어 다닌다. 때로 인간은 위기에 몰리면 일을 쉽게 처리해줄 또 하나의 인격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악한 인격들과 어울리지 못한 양심은 무리와 떨어져 방황하기도 한다. 번 역시 아내가 자신을 떠나버리자, 이해심 많은 아내의 인격만을 떼어내 함께 산다.

영화 종반부 거울방에서의 대결은 ‘매드 디텍티브’의 하이라이트이자, 공동감독인 두치펑, 위자후이(韋家輝·46)의 야심이 뻗어있는 지점을 짐작케 하는 명장면이다. 번, 치와이의 여러 인격, 호 형사는 여러 개의 거울이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창고 같은 방에 모인다. 거울에는 치와이의 각기 다른 인격들이 혼란스럽게 오간다. 정교한 계산 아래 치밀하게 촬영된 이 장면은 영화사에 남아있는 오슨 웰스의 걸작 ‘상하이에서 온 여인’(1947)을 연상시킨다. 훗날 리샤오룽(李小龍)도 ‘용쟁호투’(1973)에서 거울을 이용한 액션을 선보인 바 있다.

이같이 최근 홍콩 범죄영화가 상업성, 작품성 양 측면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홍콩 영화산업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아시아의 유망한 신인을 발굴하는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서는 2년째 홍콩 영화를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제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선판매 후 작품을 대충 만드는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세계 영화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홍콩 영화산업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콩시장 한계  새 것 창조해야” 위자후이 감독·류칭윈 인터뷰 

‘홍콩 누아르’ 르네상스 다시 오나…범죄스릴러 ‘매드 디텍티브’

‘매드 디텍티브’는 9월초 열린 제2회 충무로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관객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이미 할리우드에도 판권이 팔린 상태다. 영화제 참석차 내한한 공동감독 위자후이, 주연 류칭윈(劉靑雲·44)을 만났다.

-‘다중인격을 보는 형사’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었나.

“인간이 범죄를 저지를 때 나타나는 나쁜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시시때때로 튀어나오는 다양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연구했다.”(위자후이)

-1980~90년대 주목받던 홍콩의 범죄영화는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그 이유와 대안은 무엇인가.

“비슷한 경향의 작품을 반복해서 찍었기 때문이다. 최근 홍콩 영화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반복해 찍을 만한 것조차 없어서 새 것을 창조해야 할 상황이 왔기 때문인 것 같다.”(류칭윈)

“영화를 만들면서 염두에 두는 것은 홍콩뿐 아니라 더 많은 시장의 관객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점이다. 홍콩 시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위자후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제작 환경면에서 어려워진 점은 없나.

“영화가 쇠퇴하던 시점에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됐다. 한국, 일본 시장은 떨어져 나갔지만 본토 시장이 열렸다. 중국 자본이 유입될 길이 열렸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지만, 예전만큼 자유로운 표현이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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