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

(9) 학익동 OCI(옛 동양제철화학) 부지

글 박정환·사진 김순철기자

40년간 발생 폐석회 처리비만 1천억원

인천 남구 학익동 OCI(구 동양제철화학) 인천공장 전경. OCI는 지난 40여년 동안 독점적으로 소다회를 생산 , 공급하면서 국내 20대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인천 남구 학익동 OCI(구 동양제철화학) 인천공장 전경. OCI는 지난 40여년 동안 독점적으로 소다회를 생산 , 공급하면서 국내 20대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쩐(錢).’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요물이다. 어떤 이들에겐 없어서 한이고, 또 어떤 이들에겐 많아서 탈이다. 쫓아봐야 소용없다. ‘벌겠다’고 백방으로 발버둥쳐 봐야 남는 건 오히려 빚더미, 부질없는 일이다. 운대가 맞아 떨어지면 자석처럼 달라붙는다. 문득 옆을 둘러보면 어느 샌가 수북히 쌓여 있다. 다가서면 멀어지고, 물러나면 다가오는 것이 ‘쩐’이라 했던가. 하지만 돈에 굶주린 세상은 날마다 쩐과 전쟁을 치른다.

인천시 남구 학익동 OCI(옛 동양제철화학)의 터에서 접하는 생경한 느낌은 ‘세상엔 이런 일도 있구나!’라는 것이다.

2003년 12월31일.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희한한 일이 인천에서 벌어졌다. 2년 넘게 갑론을박을 벌인 끝에 인천시·남구·OCI·폐석회적정처리를위한시민위원회 등 4자가 협약서에 서명한 것이다. 협약서의 주요 내용은 ‘폐석회 전량을 바닷물 저수지(34만6596㎡)에 모두 매립한다’는 궁여지책이었다.

OCI의 폐석회는 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인천의 해묵은 골칫덩어리였다. OCI 인천공장은 1968년부터 석회석과 소금을 원료로 소다회를 독점생산하고 있었다. 소다회의 용도는 인공 조미료인 간장에서 화약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약방의 감초’격이었다.

내년 상반기 폐석회 매립 끝나

침전지 한 쪽에 해수를 공급하는 수송관과 보의 모습이 보인다.폐석회의 칼슘성분이 해수와 만나 푸른 빛의 침전수가 된다.

침전지 한 쪽에 해수를 공급하는 수송관과 보의 모습이 보인다.폐석회의 칼슘성분이 해수와 만나 푸른 빛의 침전수가 된다.

처음 이 폐석회는 갯벌이었던 OCI 인천공장 주변 256만5천690㎡를 매립하는 데 흙 대신 사용됐다. 그때만 해도 폐기물관리법시행령(1987년 4월)이 생기기 이전이라 문제될 게 없었다.

소다회 생산은 계속됐고, 부산물인 폐석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OCI는 폐석회를 인천공장 주변에 만들어 놓은 침전지에 차곡차곡 쌓아 가라앉혔다. 40여년 가까이 발생한 폐석회 양은 땅 속에 묻힌 116만㎥를 포함해 모두 596만㎥에 달해 도저히 손쓸 수 없을 지경이었다.

OCI는 t당 1만3700~1만6500원의 비용으로 처리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처리비만도 1000억 원 가까이 드는 이 어마어마한 양을 처리할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처리하겠다’고 받아주는 업체조차도 없었다.

폐석회는 분쟁의 씨앗이었다. 새 청사터를 물색하던 옹진군은 2003년 11월 남구 용현동 OCI의 땅 1만7500㎡를 83억 원을 주고 샀다. 하지만 터파기 과정에서 폐석회 3만5000㎥이 발생했다. 관할청인 남구가 폐기물 부적정처리로 옹진군에 과태료 1000만 원을 물렸다. 이에 옹진군은 이용자 대부분이 남구 주민인 옹진군보건소에 ‘남구 주민은 받지 말라’는 엄포성 지시까지 내리며 남구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2만명 수용 도시개발사업 예정

소다회 생산후 발생되는 부산물인 폐석회를 탈수시켜 만든 고형물이 컨베이어 벨트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소다회 생산후 발생되는 부산물인 폐석회를 탈수시켜 만든 고형물이 컨베이어 벨트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도로공사도 폐석회 문제로 한동안 OCI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도공은 인천대교 연결다리 부지로 OCI 땅 1만4784㎡를 76억 원에 매입했다. 이곳에서도 역시 폐석회 1만8000㎥가 나왔다. 도공은 OCI와 옥신각신 끝에 폐석회 처리비 15억 원을 뺀 채 땅값을 지불하고 말았다.

협약을 맺은 4자는 특혜성 시비를 없애기 위해 조건을 달았다. 당시 몇몇 시민단체가 OCI 땅이지만 유원지 시설인 유수지를 관리형 매립시설로 용도를 달리해 폐석회를 묻게 하는 것은 특혜라고 지적했던 터였다.

그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OCI는 없어지는 유수지 대신 100억 원 가량을 들여 남동구 장수동 인천대공원 호수(4만6200㎡)에 대체시설을 마련해야 했다. 여기에 유수지를 매립한 뒤에는 체육공원으로 조성한 뒤 지상권을 남구에 설정해야 한다. 용현·학익 도시개발구역으로 묶인 인천공장터 중 2만5410㎡를 도시개발한 뒤 남구에 기부체납해야 한다는 조건도 지켜야 한다.이를 담보하기 위해 OCI는 121억 원의 이행보증금을 땅으로 인천시에 내야만 했다.

OCI은 885억 원을 들여 현대건설과 맺은 폐석회 관리형매립지 조성공사가 내년 상반기에 끝나면 인천공장터 112만㎡를 포함해 155만7천여㎡의 규모의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공업지역인 이곳은 복합단지를 중심으로 2만2000명(8149가구)을 수용할 수 있는 주거와 상업용지로 바뀐다.

40년에 걸쳐 갯벌이 공장용지로, 공장용지가 주거·상업용지로 변하면서 OCI는 ‘쩐의 전쟁’에서 승자로 남게 됐다.

도시개발을 앞두고 있는 제2경인고속도로 북측 폐석회 침전지.

도시개발을 앞두고 있는 제2경인고속도로 북측 폐석회 침전지.

불모지에 세운 공장 황금알을 낳다

OCI 인천공장 유래1965년 바다매립 공장 착공12개 계열사 글로벌화학기업

지금의 OCI는 인천시 남구 학익동 인천공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불모지에 세운 공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줄은 그 누구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1960년대 바다 매립은 봇물 터지듯 성행했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년)과 농지개량사업촉진법으로 인해 1년에 12건꼴로 매립면허가 나갔다. 매립의 주체는 81%가 개인으로, 공장용지 마련 목적이 66%로 절반을 넘었다.

1965년 대통령공고 제1호로 경인종합개발계획이 발표된 직후 OCI는 매립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2007년 타계한 창업주 고 이회림 회장은 1965년 10월 학익동에 소다회 공장을 착공했다.

하지만 공장을 가동하려면 하루 15만t의 냉각용 공업용수가 필요했다. 학익동 공장과 바로 옆 지역인 연수구 옥련동 일대에 수십 개의 시추공을 뚫고 지하수를 찾았으나 모두 허사였다. 이 어마어마한 양을 수돗물로 충당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냉각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닷물이었다. 이래서 강구한 것이 매립사업이었다.

지금 경인방송 써니FM방송국 해안도로 앞길이 물막이 공사 자리다. 그 당시에는 대역사(大役事)였다. 길이 2150m를 돌로 쌓아 막아야 했다. 공사를 맡은 건설회사가 착공에 들어갔다가 포기하고 손을 떼기 일쑤였다. 물살이 급해 제방의 돌과 흙이 쓸려나갔던 것이다.

이 회장의 지시로 OCI가 직접 매립에 나섰다. 먼저 제방자리에 맞춰 거대한 나무 틀을 짰다. 그 다음 광산용 레일을 깔고 손수레로 나른 흙과 돌로 나무틀을 채웠다. 간척사업할 때 돌을 잔뜩 넣은 컨테이너로 물막이하는 공법과 흡사했다. 대한탄광을 운영했던 이 회장의 노하우였다.

OCI의 물막이 공사의 성공은 숱한 역경을 이겨낸 ‘마지막 개성상인’ 이 회장의 삶과 빼닮았다. 1917년 개성시 만월동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개성서 제일 큰 서점인 ‘숭남서관’에 점원으로 취직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였다.

‘장사를 배우려면 큰 상점에 취직해야 한다’는 모친의 조언에 따라 잡화 도매상인 ‘손창선’ 상점에 역시 점원으로 취직한 이 회장은 그 곳에서 장사 기술을 배운 뒤 1937년 포목도매상인 ‘건복상회’를 차렸다.

그 뒤 이 회장의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1951년에는 국내에서 수출실적이 1, 2위를 다툴 정도로 규모가 컸던 개풍상사를 설립·운영했다. 1955년에 대한탄광을 인수하고, 1956년 대한양회 설립에 이어 1959년에는 고 최태섭 한국유리 회장 등과 함께 서울은행을 창립했다.

1968년 물막이 공사의 성공은 이 회장의 또다른 성공 신화를 예고했다. 개인으로는 가장 넓은 인천시 남구 용현·학익동 앞의 바다 256만5천690㎡(77만6000평)를 매립하고 소다회 공장을 준공했다. 화학산업의 불모지였던 국내에서 당시 ‘동양화학’이라는 이름으로 중화학산업의 첫 깃발을 꽂았던 것이다.

OCI는 40년 동안 무기·정밀·석유석탄 화학분야에서 카본블랙과 과산화수소, 소다회 등 40여 종의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화학기업으로 성장했다. 2006년 3월 동양제철화학은 카본블랙 세계 3위 생산업체인 미국 컬럼비안케미컬을 인수하면서 삼광유리공업와 유니드, 유니온, 이테크건설 등 12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미국·캐나다·영국·독일 등 12개 국에 현지공장과 지사를 두고 있다. 2007년에는 태양광 산업의 핵심 기초 소재의 원천기술인 폴리실리콘을 개발해 전북 군산에 제1생산 공장을 준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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