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학 비리 고발하며 목숨 끊은 어느 시간강사

40대 대학 시간강사가 교수가 되려면 수억원을 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광주 모 사립대 시간강사 서모씨(44)는 ‘이명박 대통령님께’라고 쓴 유서에서 “교수 한 자리가 1억5000만, 3억이라는군요. 저는 두 번 제의를 받았습니다. 2년 전 전남의 한 사립대에서 6000만원, 두달 전 경기도의 한 사립대학에서 1억을 요구받았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자신이 직접 쓴 다른 사람 명의의 논문만 수십편이 넘는다는 논문 대필 실상도 고발했다.

처지를 비관하긴 했지만 서씨가 없는 얘기를 만들어 냈을 것 같지는 않다. 시간 강사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정규교수노조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대학 임용비리와 정규직 교수 중심의 불합리한 시스템을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간강사만 6명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60대 강사 부부가 시간강사의 교원 신분 회복을 요구하며 960여일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국내 4년제 대학 시간강사는 5만5000여명으로 이 중 강사료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전업강사는 3만여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대학 전체 강의의 55%가량을 담당하고 있다. 똑같은 강의를 하는데도 시간당 강의료는 평균 3만5000원 정도로 전임교수 임금의 10~20% 수준이다. 몇개 대학을 빼고는 4대 보험료도 보장받지 못한다. 그러고도 전임교수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다하며 수모를 겪고, 언제 밥줄이 끊길지 모르는 고용 불안에 떨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래서야 교육의 질적 성장이니 대학 경쟁력 강화를 얘기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환경은 최고 지식인 집단의 생존과 관련된 심각한 사회안전망의 문제가 됐다. 툭하면 세계에 뒤진다는 한국 대학 교육의 질적인 면에서도 더 이상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들을 착취하고 학대하면서 교육의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는 1977년 유신 정권이 저항적 지식인들을 캠퍼스에서 내쫓기 위해 교육법을 개정해 박탈한 것이다. 이 때문에 2007년 17대 국회는 시간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담은 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사학재단들의 반대로 흐지부지됐다.

교과부와 정치권은 이제라도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과 사기 진작에 적극 나서기 바란다. 경찰도 서씨가 죽음으로 고발한 대학의 부정과 비리를 수사해 썩은 곳을 도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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