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북방으로, 아득한 유년으로… 시의 근원 찾아서 ‘가슴을 연’ 여정

이영경 기자

곽효환 시집 ‘지도에 없는 집’

길을 찾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지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고자 하는 커다란 방향이나 목적지가 없는 사람에게 지도는 애당초 사유의 대상이 아니다. 예컨대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세계에 관심을 집중했던 최근의 젊은 시인들에게 지도는 시어 목록에 등재되지 않은 낱말일 것이다.

머나먼 북방으로, 아득한 유년으로… 시의 근원 찾아서 ‘가슴을 연’ 여정

그런 면에서 곽효환 시인(43)은 지도를 사유하되 지도의 틀을 해체하기를 꿈꾸는 사람이다. 그의 시선은 몽골과 북만주와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고 이라크 바그다드, 멕시코행 비행기에 머문다. 그는 지구적 규모의 세계를 시편으로 노래하지만 세계를 자신의 고정된 사유의 틀 안에 넣기를 거부한다, 아니 경계한다. 그래서 그의 두 번째 시집의 제목은 <지도에 없는 집>(문학과지성사)이다.

“칠흑의 길을 앞서 간 이들을 따라/ 바다를 닮은 호수를 품은 내륙 도시를 지난다/ 호반을 둘러싼 아름드리 오동나무/ 굽고 비틀리고 휘어진 굵은 가지 마디마디/ 먼저 이 길을 간 사람들의 삶이 그랬을지니/ 더디게 더디게 오는 여름 저녁놀 아래서/ 편지를 쓴다, 누군가 꼭 한 번 읽어줄”(‘앞서 간 사람들의 길’)

앞서 간 사람들의 길을 함께 따라가는 시인의 발걸음은 북방으로 향한다. 이번 시집에는 ‘열하기행’ 연작시를 비롯해 북방 지역의 광활하고 황량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시편들이 유독 많다. 시인은 북방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적 경험을 사유하기도 하면서 그곳 사람들과 인간적 연대와 소통을 꿈꾼다.

“나는 경계의 둑을 걷고 있다/ 사방으로 열린 광활한 대륙에서/ 새 길이 열리듯이 새로운 소통을 꿈꾸면서도/ 몸은 주저주저/ 끊어진 철교 앞에/ 더는 갈 수 없다는 경계석 앞에 멈춰 서 있다”(‘다시 길에 서다-열하기행1’)

“혹독한 계절을 타고 풀과 물을 따라 유목하는/ 길 위의 사람들에게 아득한 시절의 내가 있다/ 말을 타고 건넌 초원과 사막과 호수와 강의 기억들…북방 대륙을 가로질러온/ 나를 닮은 검은 얼굴들이 있다// 가없는 대륙에 맨 처음 길을 연/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나를 닮은 얼굴들’)

시인의 여정은 북방으로 향하는 한편 자신의 유년의 기억과 추억으로 이어진다. “내 유년은 전주천 공수레 다리 아래로 흘러갔다…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과 쉽게 사라지고 새로워지는 것들이/ 뒤섞인, 더러는 여전하고 더러는 낯선 그 거리/ 흑백사진 같은 그 세월 영영 갔어도/ 가슴 한구석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유년을 적시고 간 기억들”(‘고무신 배를 띄우다’)

공간적으로는 머나먼 북방까지, 시간적으로는 자신의 아득한 유년으로 이어진 여정에서 그가 찾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 자신의 시의 본질, 근원일 것이다. 그 본질은 하나의 물길을 이루지 않으며 틀을 짓지 않는다. “들리지 않느냐/ 실핏줄 같은 작은 도랑과 개울과 시내의 숨소리가/ 개천과 샛강의 전언이 이렇게 들리지 않느냐/ -나의 바람은 거대한 물길이 아니다”(‘고무신 배를 띄우다’)라고, “지도에 없는 길이 끝나는 그곳에/ 누구도 허물 수 없는 집 한 채 온전히 짓고 돌아왔다”(‘지도에 없는 집’)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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