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순천만 갈대밭과 벌교장터

이원규 | 시인

“밥은 묵고 댕기냐” 국밥집 할매 사투리에 문득 어머니 생각이

30년 넘게 점심과 저녁 두 끼를 먹어왔으니 아침 식사는 내 생에 없는 밥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문 밖의 식구들인 말똥가리 ‘천’과 세 마리 강아지 ‘얼씨구’ ‘지화자’ ‘좋다’의 밥부터 챙기고는 냉수 한 사발을 마신다.

강아지 ‘얼씨구’ ‘지화자’가 우리 집에 온 것은 지난 겨울이었다. 산중 외딴집에 ‘고아르피엠 여사’와 단둘이 살다보니 둘 중 하나만 집을 비워도 말 그대로 적막강산이었다. 그러던 차에 말똥가리가 오고 강아지 두 마리까지 키우게 되었다. 한 마리는 중국종인 차우차우와 진돗개 황구의 혼혈이고, 다른 한 마리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인 리트리버와 진돗개 백구의 2세였다. 이름을 고민하다 큰놈은 ‘지화자’, 작은 놈은 ‘얼씨구’로 지었다.

해안선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이 산과 바다와 어우러져 천혜의 절경을 이룬 순천만의 모습.

해안선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이 산과 바다와 어우러져 천혜의 절경을 이룬 순천만의 모습.

‘뻘짓거리’가 횡행하는 하수상한 시절에 강아지들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라며 지은 이름이니 ‘지화자’를 술집 작부의 이름처럼 ‘화자야’로 부르는 등의 놀림쯤이야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화자’는 제 이름처럼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질 정도로 헥헥거리며 사랑의 아르피엠(RPM)이 높았고, ‘얼씨구’ 또한 발랄 발칙하게 잘 자라고 있다.

올봄 하동군 화개면으로 이사를 오자마자 ‘지화자’는 어느새 배가 불러오더니 급기야 ‘아비 없는 자식’ 여섯 마리를 낳았다(최근에야 알게 되었지만 아비는 구 이장댁의 진돗개였다), 너무나 예쁜 나머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다섯 마리가 분양되고 못난 자식 한 마리를 키우며 이름을 지어줬으니 ‘좋다’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얼씨구 지화자 좋다’ 한 문장이 완성되는 동시에 ‘다문화 가족’이 탄생한 것이다.

이틀치 밥을 챙겨주고는 모터사이클 시동을 걸었다. 자동차 운전을 할 줄 모르는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누가 뭐라든 20년 이상 ‘기마족’처럼 바이크를 탔다. 그동안 13대의 바이크를 갈아타며 한반도 남쪽을 70만㎞ 이상 달렸으니 2만리를 걸은 것과 더불어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의 ‘인간 내비게이션’이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길을 나선다. 굳이 역마살의 핑계를 대자면 가고 또 가본 곳도 계절마다 다르고 나이 들면서 바라보고 느끼는 곳곳의 지수화풍이 또 다르기 때문이다.

늦가을 단풍으로 따지자면 설악산도 좋고 지리산도 좋지만 단풍의 백미는 황금들녘이다. 누렇게 익어가는 나락과 검게 그을린 농부의 얼굴과 힘줄 돋아나는 구릿빛 팔뚝…, 이 가을 지상 최고의 단풍이 아닌가. 거기에다 갈대밭과 꼬막철의 갯벌이 곁들여진 순천만이 단연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순천만으로 더 잘 알려진 여자만(汝自灣)은 순천시를 중심으로 동쪽의 여수반도와 서쪽의 고흥반도에 둘러싸인 호수 같은 만으로 광활한 갯벌과 구불구불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이 산과 바다와 어우러진 천혜의 절경지다. 지금은 순천만 갈대밭이 람사르협약에 등록될 정도로 세계적인 습지가 되고 순천시도 생태수도를 표방할 정도로 적극적이지만, 10년 전만 해도 개발의 광풍으로 갈대밭을 다 파헤치려 했었다.

순천작가회의 시인들이 해마다 갈대시화전을 열고 동부지역사회연구소 등의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겨우 막아냈던 것이다. 순천만 갈대밭의 오늘을 보면 새만금 갯벌의 ‘뻘짓거리’가 확연히 드러나고, 4대강 사업은 또 얼마나 역천(逆天)의 일인지 순천(順天)에서 다 보인다.

갈대밭 탐사선의 선장은 이렇게 말했다. “올해는 재두루미 198마리가 왔당게. 근디 한 마리가 어제부터 안보여야. 고니도 한 마리 안보이고. 섬진강 댕기러 가더니 다른 놈들과 눈이 맞았나, 밀렵꾼 총을 맞았나. 아이고, 싸이나 든 막걸리를 묵고 죽었나, 참말로.” 혀를 끌끌 차며 마치 자식 걱정하듯이 말했다. 반은 농담인 듯했지만 가슴이 짠했다. ‘너남’ 없는 전라도 사투리의 진수라고나 할까.

순천만을 떠올리면 먼저 입속에 가득 군침부터 돌게 된다. 짱뚱어탕·꼬막정식·대하구이 등 집을 나선 여행자들에게 ‘무엇부터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안겨준다. 그런데 ‘나 홀로 여행’을 하면 먹는 문제가 만만치 않다. 두 명이 삼겹살 2인분을 시키면 ‘기본이 3인분’이라며 내쫓기는 관광지의 야박한 상술에 내상을 입어야 하는 판국에 눈치 없이 혼자 식당에 가다니! 하지만 방법은 있다. 기사식당이나 분식집 혹은 중국집에 가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남도의 어디를 가나 오륙천원이면 미안할 정도로 한 상 가득 20가지 이상의 반찬이 나오는 기사식당이 즐비하다. 뻔히 혼자 온 것을 알면서도 “혼잡니까?”하며 민망하게도 확인사살(?) 당하는 면박을 당하지 않아도 되니 입맛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다 내 자식 같아 그저 더 주고 싶을 뿐, 이문은 생각지 않는다는 김행금 할머니. 배고픈 장꾼들에게 뜨뜻한 국밥을 말아내는 그에게서 내 어머니의 모습이 느껴진다. | 이원규 시인

다 내 자식 같아 그저 더 주고 싶을 뿐, 이문은 생각지 않는다는 김행금 할머니. 배고픈 장꾼들에게 뜨뜻한 국밥을 말아내는 그에게서 내 어머니의 모습이 느껴진다. | 이원규 시인

여기서 잠깐, 잘 모르는 면단위 시골에서 맛집 찾는 법 하나. 일단 오전 11시50분쯤 면사무소나 우체국 앞에서 기다리면 된다. 이 지역의 공무원들이 줄줄이 나와 어디론가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그들을 따라가면 된다. 십중팔구 공깃밥 세 그릇 정도를 더 먹어도 웃돈을 받지 않는 구례군 토지면의 ‘우리식당’같은 어머니의 손길과 정성이 우러나는 밥집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여행자의 가장 좋은 ‘어머니 밥집’은 장터에 있다. 혼자 가든 여럿이 가든 아무 상관이 없이 마음 편하게 ‘집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례 장터나 봉성식당의 돼지국밥이나 동방사거리 허름한 동아식당의 가오리찜을 곁들인 김치찌개, 곡성장터의 ‘똥국’이라 불리는 돼지국밥, 순천 아랫장의 건봉식당이나 웃장의 순대국밥집 등도 언제나 정겨운 곳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눈길을 끄는 곳은 벌교장터의 국밥집이다. 벌교는 여자만의 벌교산 꼬막으로 유명한데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무대이자 인근의 조성면 장터 출신의 소설가 송기원의 작품 현장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한 끼 식사라기보다는 요리에 가까운 만오천원짜리 꼬막정식도 좋지만 유명 맛집에 혼자 가는 것은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싼 국밥집으로 갈 수밖에. 벌교장터에는 아직도 한 그릇에 단돈 이천원짜리 국밥집이 있다. 대개는 라면도 이천오백원 이상이요, 잔치국수도 삼천 원 이상이며, 국밥도 오천원 수준이 아닌가.

그런데 여전히 이천원이다. 조금 아쉬운 것은 매일 문을 열지 않는다는 점이다. 벌교장터는 상설시장이지만 5일에 한 번 4·9장의 장날에만 돼지국밥을 판다. 번듯한 상호도 없는 이 국밥집의 주인장은 김행금 할머니(64)와 조형기 할아버지(73) 부부. 36년 동안 장날이면 어김없이 배고픈 장꾼들에게 국밥을 팔아왔는데, 그동안 딱 하루만 쉬었다. 아니 쉰 게 아니라 부모상을 치르느라 딱 한 번 문을 닫았고, 자식들의 결혼 등 집안의 대소사마저 장날을 피해서 치렀다고 한다.

“할매요, 이천원 받고 대체 뭐가 남능교? 그래도 장산데” 하고 물으니 허허 웃으며 말했다. “첨엔 팔백원 했지. 근디 한 번도 내가 올린 적이 없당게. 어떤 장돌뱅이가 “아따, 아짐! 천원 받으씨요잉”해서 받고, 또 좀 지나자 “형수, 천오백원은 해야 안쓰겄소? 해서 또 그랬는디, 잔돈 거슬러 받기 귀찮고 뭐하다고 해서 이천원까지 올랐당게.”

할머니는 마치 ‘크게 남는 것은 없지만 이마저 비싸서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장날 하루에 200그릇 이상 팔고 국수·막걸리·소주도 곁들여 팔며(모두가 이천원이다) 자식들 다 키웠으니 “재미나다”고 했다. 장날이면 새벽 1시부터 준비를 하니 첫 손님은 장꾼보다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속을 풀러 오는 술꾼들이다. 단순 계산을 해도 한 달이면 1000명의 허기를 채우고, 1년이면 1만2000명, 36년이면 43만2000명이 되니 요샛말로 ‘허걱, 허걱, 허걱!’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도 밥값을 올릴 생각이 없다니 이 세상의 진정한 ‘밥보살’이 따로 없다.

“할매, 사진 좀 찍을 게요”하고 막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국물에 삶은 돼지고기를 푸짐하게 올리다 말고 가을바람에 수척해진 내 몰골을 스윽 훑어보고는 한 말씀 하는 것이었다. “근데 아자씨, 밥은 묵고 댕기냐?” 순간 왠지 모르게 울컥 하고 복받쳤다. 말투는 달랐지만 분명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의 목소리였다. 순천만 갈대밭에 몸을 숨긴 채 엉엉 울고 싶었다. 저물녘 맨발이 시린 겨울철새들에게 “아야, 밥은 묵고 댕기냐?” 국밥집 할머니의 남도사투리로 안부를 묻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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