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사진 모델로 전업 선언한 에로배우 엄다혜

손동우 기획에디터

“옷을 벗는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자기 표현 방법이죠”

최근 누드사진 모델로 전업을 선언한 에로배우 엄다혜가 경향신문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내가 옷을 벗는 것은 자기 표현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최근 누드사진 모델로 전업을 선언한 에로배우 엄다혜가 경향신문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내가 옷을 벗는 것은 자기 표현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대중사우나에서 남탕·여탕의 구분을 없애고 ‘통합형’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면 아마도 정신나간 얼간이쯤으로 여론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대중목욕탕에서의 엄격한 남녀구분이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규범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독일의 남녀혼탕이다. 그곳을 처음 방문한 이방인이 느낄 수 있는 것은 결코 외설스러움이나 음란함 따위가 아니다. 목욕탕 밖에서 품었던 야릇한 호기심과 가슴 두근거리는 흥분은 수많은 인간군상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벗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스러움에 압도돼 사그라지면서 금방 ‘현지 정서’에 묻혀버리게 된다. 정답게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노부부, 아이들을 데려온 중년부부, 등을 맞대고 있는 젊은 연인들이 연출하는 넉넉하고도 푸근한 분위기 앞에 외부인의 쭈뼛쭈뼛한 이물감은 봄눈 녹듯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벗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이 나뉘어지는 예술 또는 연예의 영역에서도 동서양의 기준은 대조적이다. 노골적인 성행위를 표현한 포르노마저도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는 이미 1960~1970년대에 제작·진열·배부 등과 관련한 규제가 철폐됐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포르노는 엄격한 법적 규제를 받고 있으며, 전라(全裸)의 상태로 성애(性愛)를 표현하는 ‘비(非) 포르노물’의 제작·공연도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 걸음을 바깥으로 디디면 ‘합법적 에로티시즘’이 되지만 발길이 안쪽으로 향할 경우 저질·음란·외설 등 온갖 불명예스러운 멍에를 뒤집어쓰는 한편으로 사법적 처벌까지 각오해야 한다. ‘외설’과 ‘예술’을 구분짓는 잣대가 있다고는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1998년 에로비디오에 입문한 이래 수많은 작품에 출연한 뒤 전라 연극배우를 거쳐 최근 누드사진 모델로 ‘전업’을 선언한 엄다혜(33)는 문자 그대로 ‘알몸으로’ 일하고 있는 맹렬여성이다. 그를 경향신문 스튜디오에서 만나 ‘옷벗기 12년’에 얽힌 이야기와 에로배우로서의 애환을 들어보았다. 엄다혜는 스튜디오에서 사진기자가 요청하는 갖가지 포즈를 능숙하게 취하면서 프로페셔널 배우로서의 포스를 과시했다. ‘에로비디오의 지존’이라는 왕년의 별명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엄다혜는 충무로의 누드사진협회 소속 사진작가들이나 동호회원들의 요청으로 카메라 앞에 서고 있다. 그를 모델로 부르는 이는 김중만·조세현 등 널리 알려진 작가들도 있고, 순수 아마추어들도 적지 않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는 부산, 구미, 마산, 창원, 전주, 대전, 제주도 등 전국 곳곳의 산속이나 바닷가에서 포즈를 취했지만 지금은 주로 실내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작가들이 ‘피사체(被寫體)’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엄다혜는 “내 자랑 같지만 ‘사진 잘 나온다’ ‘표정이나 포즈가 좋다’ ‘역시 프로답다’는 등의 말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엄다혜가 누드사진 모델로 방향을 튼 것은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계속됐던 에로비디오 호경기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급격히 퇴조한 데다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에로비디오 시장에서도 ‘신인들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누드사진 쪽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지만 에로영화를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상황이 호전되면 언제라도 본업으로 복귀하겠다”고 말했다.

엄다혜는 고교 졸업 후 케이블TV 홈쇼핑 속옷 모델을 하고 있던 1998년 우연한 계기를 통해 에로비디오 배우가 됐다. 어느날 그는 명동에서 옷을 산 뒤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 명함을 건네며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에로비디오 판에서 일명 ‘스카우터’로 불리는 ‘신인배우 발굴인’이었다. 평소 자신의 몸매에 대해 그 나름의 자신감을 갖고 있던 엄다혜는 두말없이 흔쾌하게 제의에 응했다. 그는 “홈쇼핑에서 샤워젤 등 보디용품과 ‘뽕브라’ 광고모델을 하면서 주위에서 호평을 받았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엄다혜의 에로비디오 데뷔작은 <애인2>였다.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전직 남자’가 ‘현직 남자’와 결혼해서 빚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작품이었는데 그가 맡은 역할이 바로 주인공 성전환 여자였다. ‘엄다혜’라는 예명을 얻은 것도 이때였다. 감독이 ‘이 이름이 어울리겠다’며 별생각 없이 작명했는데 엄다혜는 “ 감독님이 ‘에로 연기에 관한 한 뭐든지 다 해(다혜)!’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름의 ‘규정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엄다혜는 실제로 몸을 사리지 않고 배역에 충실했고, 에로비디오 배우로서의 명성도 비교적 이른 시간 안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특유의 까무잡잡한 피부와 도발적인 연기로 에로비디오 마니아들로부터 ‘흑진주’라는 별명도 얻었다.

도둑이 들어와서 집 안에 있던 여성과 정사를 나누는 <누나 길들이기>, 형부와 처제와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다룬 <처제일기> 등도 그의 데뷔 초기 작품들이다. 엄다혜는 “지금 생각하면 작품 내용이 거의 예외없이 유치하고 조잡했지만 그때는 이런 것 저런 것 가리지 않고 오로지 일에만 몰두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멀티 오르가즘> <포르노 모텔리어> <암고양이> <쾌감질주> <굵은 놈만 아는 여자> <몰래 먹은 엉덩이> 등에 잇따라 출연했다. 비디오 작품의 제목들이 하나같이 거칠고 투박한 까닭은 에로티시즘을 강조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기획단계에서 정했던 것이 촬영과 출시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갈수록 강도를 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는 ‘돌아온 젖소 부인’이었던 것이 촬영 도중에는 ‘젖소 부인 바람났네’로 한 단계 상승했다가, 나중에 비디오가 나온 것을 보면 ‘젖소 부인의 젖은 팬티’ 식으로 둔갑해 있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엄다혜는 “조연과 단역까지 한 것을 합치면 출연작은 100편이 훨씬 넘는다”고 말했다.

에로비디오 배우로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엄다혜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경험했다.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가게 주인이나 손님들이 ‘엄다혜씨 아니냐’라고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면서 사인을 부탁할 때는 ‘이제 제법 배우가 됐구나’ 하는 마음에 공연히 어깨가 으쓱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주위에서 ‘촬영할 때 진짜로 하는 거냐’ ‘돈도 벌고 재미도 보니 얼마나 좋으냐’는 등의 반응을 보이며 야릇한 시선을 보낼 때 허탈함과 슬픔이 밀려온 적도 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진짜로 하느냐’는 것인데 처음에는 그때마다 “공사(주요부위를 비닐 등으로 가리는 것)를 하고 한다”고 답변했으나 나중에는 지쳐서 그냥 빙그레 웃는 걸로 대신했다고 한다. 엄다혜는 “원래 성격이 낙천적인 데다 ‘내가 좋아서 하는 직업인데 누가 뭐래도 내 길을 간다’는 배짱 비슷한 것이 있어서 주위의 차가운 시선 따위는 크게 개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에로비디오를 통해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엄다혜는 2002년 4월 서울 대학로에서 <아끼꼬상의 긴자꼬>라는 ‘성인연극’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에로비디오를 실제 무대에 올려놓은 이 연극은 주인공 ‘아끼꼬’가 술주정뱅이 ‘나까무라’를 만나 정사를 벌인다는 내용으로서, 대개의 에로비디오가 그렇듯이 간단한 줄거리에 외면적 행위가 두드러지는 작품이었다. 외설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끼꼬…>는 흥행에 성공했다. 연극은 같은 해 10월까지 6개월 동안 계속됐는데 엄다혜는 평일에는 4회, 토·일요일에는 5회씩 무대 위에 오르는 강행군을 무릅쓰면서 매번 ‘뜨거운 연기’를 펼쳤다. 그는 “지금 그런 일정으로 연극을 한다면 며칠 안에 병원신세를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다혜는 2007년 ‘본격 성인연극’ <미란다>에 출연하면서 또 한번 대학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영국 작가 존 파울로의 <콜렉터>를 각색한 <미란다>는 ‘외설이냐 예술이냐’라는 고전적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작품이다. <미란다>는 과감한 노출신과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등장하는 독특한 줄거리로 유명했는데 그때까지 18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색깔로 여주인공 미란다를 연기했다. 엄다혜가 출연한 2007년판 <미란다>가 특별한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은 남녀 주인공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로 무대 위에 선 데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들에게 연극의 음란한 장면을 마음껏 촬영하라고 극장 측이 ‘강추’했기 때문이다. 일부 관객들과 언론에서는 “아무리 UCC 열풍이라지만 공연 중인 여배우의 알몸과 성행위 연기 장면의 촬영을 묵인하고 홍보에 이용하는 것은 도를 지나친 상업주의”라고 비난했다.

‘미란다 엄다혜’에 힘을 실어 준 것은 직접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 그 가운데서도 젊은 여성 관객들이었다. 당시 극장에는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남성 관객보다 여성 관객이 훨씬 많이 입장했고, 이들은 연극 도중에 힘찬 기립박수를 보내는가 하면 연극이 끝난 뒤 “엄다혜씨 정말 멋있다”며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엄다혜는 “그때 여성 관객들의 열띤 반응을 접하고 시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고 말했다. <아끼꼬…>와 마찬가지로 <미란다>의 공연도 6개월 동안 계속됐으며 엄다혜는 평일에는 3회, 주말은 4회씩 무대에 올랐다. 막이 오르면 맨 앞줄에 혼자 앉아 전라의 엄다혜를 시종 뚫어지게 쳐다보는 남성 관객도 적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이상했는데 ‘어차피 나의 벗은 몸을 보러 왔을 텐데 실컷 보고 가시라’는 마음으로 거리낌 없이 연기했다”고 말했다.

<미란다>가 끝난 뒤 그는 더욱 유명해졌다. 네일 아트 숍에 손톱 손질을 하러 가면 주인이 “연극 잘 봤다”며 반갑게 맞는가 하면 국제선 비행기에서는 승무원들이 “엄다혜씨의 열렬한 팬”이라며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했다. 그는 <미란다>의 여세를 몰아 16㎜ 비디오가 아닌 35㎜ ‘진짜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연기자로서가 아니라 포스터의 모델로서였다. 한지민이 주연을 맡은 미스터리 영화 <해부학교실>의 포스터에 얼굴을 가린 반라(半裸)의 상체만 나왔던 것이다.

엄다혜는 중학생 때부터 배우를 꿈꿨다. 당시 인기 정상을 달리던 최진실·채시라 등이 출연하는 영화나 TV드라마에 빠져 학교를 빼먹고 촬영장을 찾았다. 엑스트라로 출연해 행인·손님·학생 역을 맡은 적도 많으며 연기학원에 등록해 본격적인 수업을 받기도 했다. 엄다혜는 “아직도 연기력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그 기초는 그때 다져진 것”이라고 말했다.

엄다혜에게 ‘당신에게 옷을 벗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자 “생계를 위한 직업인 동시에 자기 표현의 방법”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람은 누구든지 제각기 잘하는 일이나, 남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은 몸매·얼굴 등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데 그의 경우 자신의 몸이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에로비디오와 성인연극, 누드모델이라는 것이다. 엄다혜는 “내가 좋아서 표현 좀 하고자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규제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에로티시즘에 대한 규제와 간섭, 오해와 편견 때문에 그는 다시 태어나면 한국에서는 에로배우를 하지 않을 작정이다. 엄다혜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는 에로물 시장도 크고 대우도 좋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이런 지역에 진출해 본격적인 포르노 배우로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엄다혜는 인터뷰 내내 쾌활하고 솔직했으며, 가능한 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사진기자가 찍은 영상을 보여달라고 요청한 뒤 “이건 예쁘게 나왔다”라거나 “저건 실제보다 훨씬 못생겼다” 등으로 하나씩 ‘사전검열’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기탄없이 밝혔다. ‘종합일간지와는 처음 하는 인터뷰라 그런지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는 겸손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유머감각도 수준급이었다.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운동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에로비디오 촬영만큼 운동량이 많은 게 어디 있느냐”며 “워낙 운동을 많이 해놓아서 몸매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 ‘누드모델’ 엄다혜는
“포르노도 공권력의 침해로부터 보호받아야”


[손동우가 만난 사람]누드사진 모델로 전업 선언한 에로배우 엄다혜

포르노에 대한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고 한다. 그 첫째가 자유주의적 견해로서 ‘포르노는 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인 만큼 공권력의 침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보수주의로서 ‘포르노는 사회구성원들에게 불쾌감과 혐오감을 주며 반사회적 행위를 유발하므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이 여성해방론적 관점인데 ‘포르노는 여성 억압적 사회질서를 반영하고 남녀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기제인 만큼 허용해선 안된다’는 게 핵심이다. 논거는 전혀 다르지만 가장 진보적이랄 수 있는 여성해방론이 결과적으로 보수주의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기회가 되면 외국에서 포르노 배우로 활동하기를 희망하는 엄다혜는 당연히 자유주의적 입장을 지지한다. 그는 “포르노가 저급문화라고 해도 자유로운 나라라면 고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공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다혜는 어느 인터넷 방송매체의 리포터 자격으로 2000년 스페인에서 열린 포르노 박람회를 견학했다. 각국에서 출품한 포르노영화가 상영되고 다양한 행사가 열렸는데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포르노 배우들이 ‘진짜 영화배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팬들과 사인회를 갖는 등 프로페셔널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또한 일부 남녀 포르노 배우들이 직접 ‘시범’을 보이는가 하면 관중들에게 ‘동참’을 요청한 ‘이색 이벤트’는 엄다혜에게 오랫동안 충격으로 남았다. 엄다혜에게도 무대 위로 올라오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있었으나 ‘조신한 동방예의지국 여자’답게 단호히 거부했다고 한다. 그는 “나도 ‘한 에로’한다고 여겼는데 박람회장에서 실연(實演)을 보고는 완전히 기가 죽었다”고 말했다.

포르노 배우에서 출발해 할리우드 스타가 됐다는 점에서 엄다혜는 샤론 스톤과 데미 무어를 높이 평가한다. 그는 “<원초적 본능>에서 보여준 샤론 스톤의 섹시 연기는 포르노 배우를 하면서 틀이 잡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포르노 배우 출신은 아니지만 홍콩의 섹시 배우 수치(서기)도 엄다혜의 롤 모델이다. 수치는 1996년 장궈룽(장국영)과 함께 출연한 <색정남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밀레니엄 맘보> <유리의 성> 등으로 잘 알려진 중화권의 대표적인 여배우로서 2006년에는 국내 영화 <조폭마누라3>에 출연했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에서 초·중·고교 졸업

△홈쇼핑 여성 속옷 모델로 활동

△에로비디오 <애인2> <멀티 오르가즘> <쾌감질주> <몰래 먹은 엉덩이> 외 다수 출연

△성인연극 <아끼꼬상의 긴자꼬> <미란다>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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