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忍’ 사라진 분노 권하는 한국… 왜?

정환보·주영재 기자

가족 살해 최근 급증, 사나흘에 한번꼴 발생

만삭아내 살해 혐의 부인… 검찰, 남편 구속기소

검찰이 만삭의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대학병원 의사 백모씨(31)를 살인 혐의로 24일 기소했다. 서울서부지검에 따르면 백씨는 지난 1월14일 새벽 장시간 게임을 한 뒤 부인과 다투다 목을 눌러 부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백씨는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사망자의 목 내·외부에서 찰과상과 출혈 등 목눌림에 의한 사망의 전형적 특징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고엽제 환자인 아버지를 아파트 13층 복도에서 던져 숨지게 한 김모씨(38)도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김씨가 소주 1병을 마시고 돈 문제로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다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부부싸움 도중 아내를 살해하고 아들까지 해치려던 30대 가장도 이날 경찰에 구속됐다. 해외에서 3년간 파견 근무를 하다 지난해 12월 귀국한 이모씨(38)는 외도를 의심하는 아내와 자주 다툼을 벌이다 지난 20일 아내를 목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현장을 목격한 아들(7)의 복부를 흉기로 찌른 것으로 조사됐다. 23일에는 머리를 염색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자 둔기로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양모씨(37)가 구속됐다.

최근 가족·근친 살해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천륜’을 저버린 범죄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범죄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참을 忍’ 사라진 분노 권하는 한국… 왜?

범죄 유형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부모의 재산이나 보험금을 노린 존속살해가 가족 살해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진로·이성교제 등 통상적 수준의 갈등이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성동구에서는 중학생 아들이 예술고 진학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집에 불을 질러 아버지, 어머니, 동생, 할머니 등 일가족 4명을 숨지게 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8년 44건이던 존속살인(자녀가 부모·조부모 살해)은 2009년 58건에 이어 2010년 66건으로 2년 사이 1.5배 증가했다. 형법상 죄목이 별도로 규정돼 있지 않은 비속(부모·조부모가 자손 살해)이나 부부·근친 살인까지 합치면 연간 100건 이상의 가족 살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전국적으로 사나흘에 한 번꼴로 가족 살해가 일어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경쟁 위주의 사회 구조 아래에 스트레스와 분노를 참지 못하는 개인이 양산되는 데서 원인을 찾는다. 강득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범죄심리과장은 “우리 사회에서 개인적 원인이든, 사회 시스템에 의한 것이든 분노가 높아져 가고 있다. 사람들이 사소한 일에도 항상 화를 내는 상태”라며 “이를 제어할 시스템이 없어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이르렀다. 이것이 가장 가까운 가족에 대한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민교 정신보건임상심리사는 “평범한 사람도 스트레스를 조절하지 못하고 억누르기만 하면 한번에 분노가 표출되면서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중재자가 많던 대가족 때와 달리 요즘 가정은 세대차이와 사회적 스트레스 등으로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해석했다. 표 교수는 “가족 내부의 문제를 사회 문제로 보고 사법적 개입과 처벌을 하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문제를 고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차원에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과 가정의 병립 구조로 갈 수 있느냐가 문제 해결을 위해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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