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교수와 순회강연 ‘시골의사’ 박경철씨

이종탁 사회에디터

“젊은이들이 도전·모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어요”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어느 순간 내가 외과의사로서의 테크닉보다 칼럼이나 강연처럼 남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 방면에 물리가 트인 것”이라고 말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어느 순간 내가 외과의사로서의 테크닉보다 칼럼이나 강연처럼 남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 방면에 물리가 트인 것”이라고 말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시골의사’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박경철씨의 이름 뒤에 대중매체는 ‘원장’이란 호칭을 붙인다. 경북 안동의 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니까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이 그를 만나는 공간은 병원이 아니라 신문이나 잡지, 방송, 책과 같은 매체다. 그는 칼럼니스트이며 방송 진행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동시에 경제평론가다. 다만 이를 하나로 아우르는 적절한 통합호칭이 없으니 ‘원장’이라 부를 뿐이다. 그가 건네준 명함을 보니 ‘외과의사 박경철’이라 쓰여 있다.

박 원장을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준 첫 번째 책이 병원에서 겪은 사연을 담은 에세이집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다. 2005년 10월 나온 뒤 꾸준히 독자의 호응을 얻어 얼마 전 100쇄를 찍었다. 그런데 박 원장이 지난해부터 또 다른 ‘아름다운 동행’에 나서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와 함께 지방의 대학으로 강연을 다니는 것이다. 그동안 조선대·인천대·경성대·경희대(수원캠퍼스)·충주대·강원대를 돌았고, 오는 27일 영남대, 다음달 충남지역 강연을 예정하고 있다. 이렇게 지방 대도시를 한 바퀴 돌면 그다음부터는 중소도시 위주로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동행 강연을 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은 없다. 누가 그들에게 요청한 적도 없고, 정부가 관심을 보인 적도 없다. 단지 우리 사회를 보는 문제 인식에서 두 사람의 의기가 투합한 결과다. 꿈을 잃은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기성세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다. 세상 누구 못지않게 바쁜 두 사람이 각자의 일정을 쪼개고 맞춰서 함께 길을 떠나는 까닭이다.

두 사람은 요즘 젊은이들이 멘토삼고 싶어하는 사람 1순위에 꼽힌다. 이들의 한마디는 다른 누구보다 젊은이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 이들이 젊은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동안의 소통에서 느낀 점은 무엇이고 문제를 풀 해법은 과연 찾았을까. 지난 13일 서울 충정로에 있는 박 원장 사무실을 찾아 두 사람의 동행이 어디까지 왔는지 물어봤다.

박 원장과의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다. 2년 전 경향신문 자매지인 위클리경향(831호·2009년 6월30일 발행)에서 금융위기 이후 회복추세에 있는 한국 경제를 주제로 인터뷰한 적이 있다. 반갑게 손을 내미는 그에게서 첫눈에 들어오는 것은 날씬해진 몸이다. 그의 블로그에서 읽은 다이어트 체험기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에 대한 질문은 일단 뒤로 미루고 근황부터 물었다.

- 요즘도 스케줄이 빡빡하신 것 같습니다. 하루 일정이 어떻습니까.

“매일 오전 7시부터 라디오 방송을 하니까 5시쯤 일어나 방송준비에 집중합니다. 9시에 방송이 끝나면 그때부터 강연 다니고 글 쓰고 합니다. 칼럼은 일간지 3곳, 주간지 2곳 등 한 달에 12꼭지를 쓰고 있고, 강연은 아무리 적어도 월 30회 이상 다닙니다. 강연요청이 많이 들어오는데 다 응할 수 없어 죄송하죠.”

그는 강연에 큰 의미를 둔다. 일정한 공간에서 화자(話者)와 청자(聽者)가 서로 눈을 마주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강점이 있기 때문이란다. 여러가지 삶의 의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다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제주도에서 강원도까지 전국에 안 가본 자치단체가 없다. 특히 유명인사의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시골 학교에서 오라고 하면 다른 일정을 제쳐놓고서라도 간다. 그곳에는 대형 강단에서 맛볼 수 없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어제 경남 산청의 대안학교인 지리산고등학교에 갔습니다. 학생이 질문을 하는데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 중 어느 쪽에 찬동하느냐’고 물어요. 여기 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다 하나 싶어 ‘왜 그러느냐’고 되물으니 ‘제 생각에는요’ 하며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 학교는 학생이 80명인데 학생 전원이 저에게 편지를 써서 줍디다. 읽어보니 저에 대한 얘기, 자기 집안 이야기가 구구절절 적혀 있어요. 이 80통의 편지를 저는 가보로 간직할 생각입니다.”

산청에서 돌아온 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감흥이 살아있는 듯하다. 안철수 교수와 동반 강연할 때도 이런 느낌일까.

- 안 교수님과 지방대 순회 강연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명사 두 분의 동행이 쉽지도 않겠지만 국내에 전례도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재작년 말 안 선생님이 이화여대에서 리더십 강연을 하면서 저에게 제의를 해왔어요. 외국에 나가보니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강연을 하던데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요. 그래서 흔쾌히 수락하고 같이하게 됐죠. 첫 강연하던 날 제가 공개석상에서 다른 제의를 했어요. ‘오늘 반응 좋은데 이 강연 앞으로 계속하자. 그것도 서울보다는 지방으로 가자’고 했죠. 여기에 안 선생님이 동의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습니다.”

동행이 있기까지 두 사람이 번갈아 아이디어를 낸 셈이다. 강연은 박 원장이 주로 묻고 안 교수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 두 분의 강연에도 각본이 있나요.

“첫 번째 강연할 때는 질문지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실제 해보니 쓸모가 없더라고요. 두 번째부터는 안 만들었죠. 대신 내려가는 날 차 안에서 현안과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강연의 방향이 잡히고 교감이 되더라고요.”

-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주로 했는지 궁금합니다.

“안 선생님은 대학에 계신 IT(정보기술) 전문가로서 그 시선에서 보시는 게 있고, 저는 마이너리티 출신에 고교생을 많이 만나면서 갖게 된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보면 두 문제의식이 합쳐져 하나가 됩니다. 예를 들어 안 선생님은 국가적 차원에서 지금의 인재양성 방법이 과연 온당한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놓고 생각해보자 합니다. 저는 개인의 관점에서 자아실현의 기회가 과연 공평하게 주어지는가 하는 문제를 봅니다. 사람의 자질이라는 게 각기 달라서 누구는 예능에, 누구는 그림에, 혹은 고등어 배따는 데, 면(麵) 뽑는 데 물리(物理)가 트이는데, 지금은 성적이라는 잣대 하나로 사람을 자르잖아요. 그러면 공부에 물리가 트인 아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의 불행은 누가 감당할 것이냐, 이런 문제를 저는 이야기합니다.”

두 사람이 동행 강연에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이처럼 깊숙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놀랍다.

- 강연 다니면서 많은 것을 느끼시는군요.

“처음에는 우리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진짜 고민들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됩니다. 눈빛을 보면 느껴지거든요. 안 선생님과 같이 만나는 대학생들도 그렇지만 특히 지방의 고교생들을 보면 저는 마음이 아파요. 과거 우리 때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서슴없이 말했거든요. 실제 그걸 증명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됐어요. 그걸 강요하는 사회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받는 열패감은 깊은 상처가 됩니다. 달리기를 하는데 누구는 운동화 신고 뛰고 누구는 자전거, 혹은 오토바이 타고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기에서 자전거냐 운동화냐는 보지 않고 누가 1등으로 들어왔느냐만 따지면 운동화 신은 사람은 사회가 원망스럽겠죠. 이렇게 한(恨)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면 20년, 30년 뒤 우리 사회의 가치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 문제가 어디 있는 걸까요.

“문제는 기성세대라고 봅니다. 뒤틀린 사회질서를 말로만 바꿔준다고 하고 실제로는 안 바꿉니다. 기존 질서가 자신과 자기 자녀에게 유리하니까요. 사교육해서 스펙 쌓고 좋은 대학 가서 해외연수까지 하면 좋은 직장 잡아 고액 연봉 받으며 대를 이어갈 수 있는데 왜 바꾸려 하겠습니까.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바꿔야 할 동기가 없고, 바꿔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은 현실적 힘이 없는 게 딜레마인 거죠.”

- 그래서 학생들에게 무엇이라 합니까?

“기성세대가 흔히 하는 말이 ‘젊은이여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 젊은이들이 뭐라 하는지 아십니까. ‘함부로 도전했다가 결과가 잘못되면 선생님이 책임지겠느냐’고 합니다. 도전 정신이 없는 게 아니라 한번 잘못 내디디면 결과가 비참하기 때문에 못하는 겁니다. 안 선생님과 저는 학생들에게 도전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약속을 합니다. 여러분의 도전과 모험이 무모한 일이 되지 않도록 사회를 바꿔나가는 데 작은 힘이나마 되어주겠다고 합니다. 지금은 여러분들 앞에 우리 둘이 있지만 주변에 얘기해서 늘려가겠다, 노력하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약속할 테니, 너희들도 어렵지만 절벽에서 떨어져라, 그러면 나무에 옷자락이라도 걸릴 수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진짜 이해하는 눈빛으로 하면 그들은 꽤 오랜 시간 위로를 받습니다.”

이걸 박 원장은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무브먼트라고 표현했다. 작은 영향력이라도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고민을 진정 이해해서 무브먼트에 동참할 때 사회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 학생들 앞에서 약속했다면 허투루 넘길 수 없을 텐데요. 어떤 실천을 계획하시는 건가요.

“큰 고민 중입니다. 안 선생님과 요즘 주말마다 만나서 머리 맞대고 이야기하고 있죠. 책 읽고 토론하는 전국 독서모임을 만들면 어떨까, 그건 너무 피상적인가? 우리 같이 강연팀을 만들어 전국에 위로강연을 다니면 어떨까?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무브먼트를 시작할 겁니다. 진심의 발자국을 내딛는 거죠.”

- 관련된 질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이너서클에 들어갈수록 사회의 부조리를 많이 보게 되더라”고 한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무얼 염두에 둔 말인지요.

“제가 좀 유명해져서 정부나 기업의 높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저는 굉장히 고민했던 사안을 그들은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을 보고 한 말이죠. 가령 자식에게 부담 안 주려고 치료를 포기한 할머니 이야기는 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그들은 그건 개인의 문제라며 관심조차 갖지 않는 거예요. 정책담당자들의 직업 윤리가 이 정도인가 싶을 때도 있었고요.”

그가 ‘마이너리티 출신’이라고 한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과거의 마이너리티일 뿐 지금은 누구보다 강력한 머저리티(주류) 아닌가.

“제가 라디오에서 이념문제를 터치하면 그런 비판이 날아옵니다. 너도 이제 주류 아니냐고. 세속적 기준으로 보면 저도 주류인 거 맞죠. 하지만 저는 발이 어디에 있든 시선을 어디 두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 요즘의 강남좌파 논쟁을 연상시키는 말이네요.

“아, 그거 제가 몇 년 전에 여러차례 공개적으로 얘기한 것이죠. 막걸리우파가 있으면 위스키좌파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무턱대고 좌파 우파로 나뉘어 갈등하는 것은 머리 나쁜 사람의 전형입니다. 머리 나쁜 사람은 두 가지밖에 생각 못해요. 예스 아니면 노, O 아니면 X. 어떻게 인간의 생각이 그렇게 단선적일 수 있나요. 더구나 지금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자본 독주의 시대인데요.”

- 경제평론가로서 자본의 힘을 실감하는 모양이군요.

“그럼요. 지도자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이다, 플라톤이 한 말입니다. 권력은 투표로 뽑으니까요. 그런데 자본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하느냐? 하면 아니거든요. 제가 강연을 다니면서 느끼는 건데 MB(이명박 대통령)는 까도 됩니다. 심지어 정부나 공공기관에 가서 대통령 거론해도 사람들이 웃어요. 그런데 삼성을 비판하면 분위기가 싸늘해집니다. 자본을 어떻게 개혁하고 통제할 것인가, 이 부분이 우리의 큰 숙제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소셜 네트워크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자. 그는 트위터 영향력이 국내에서 가장 큰 인물로 꼽힌다. 팔로워 숫자는 더 많은 사람이 있지만 트윗에서 호응하고 전파되는 것을 종합하면 그가 1위라는 조사다. 실제 그가 트위터에 무슨 책이 좋다고 추천의견을 올리면 그 책은 곧바로 베스트셀러에 진입한다.

- 트위터 이용에 적극적입니다.

“제가 얼리어답터이거든요. 스마트폰에 글을 써서 e메일로 보냅니다. 하지만 트위터에 대해서는 양가(兩價)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트위터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호기심을 가지면 그것이 내 것이 된다고 니체가 말했거든요. 문제는 사유의 동종교배가 일어나기 쉽다는 점입니다. 팔로워라는 게 선의나 호감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잖아요. 어떤 사안에 대해 팔로워들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전체 여론으로 착각해선 안되죠. 팔로워 숫자를 가지고 대중적 영향력을 논의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 안 교수님도 얼리어답터인데 트위터를 보기만 한다고 하더군요. 그 점이 두 분이 다르네요.

“안 선생님은 우리 사회의 롤 모델이 되는 사람입니다. 대중과의 과도한 커뮤니케이션은 안 좋을 수 있어요. 저는 제 정체성을 메신저로 규정합니다. 대중과 친하게 지내며 대중의 언어를 결정권자에게 전해주고 반대로 결정권자의 말을 대중에게 들려주는 역할이죠. 밀가루의 물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도 합니다. 물은 아무것도 아니고 값어치도 없지만 물이 없으면 밀가루 반죽을 못하잖아요.”

그의 비유가 적절한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지지만 박 원장 같은 메신저, 물이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 최근 20kg 살빼기 성공… “단백질·지방·탄수화물 따로 섭취”

“저 사람은 어떻게 저 많은 일을 다 하지?” 이런 경탄을 자아내는 사람들의 이면을 보면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없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박경철 원장이 꼭 그렇다. 그는 2000년 0시를 기해 다섯 가지를 끊었다고 한다. 술, 담배, 골프, 유혹, 도박(부당이득)이다. TV는 전부터 보지 않았으니 할 것이라고는 일밖에 없는 셈이다.

그는 한번 작심한 일은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사전에 충분히 탐구하고 집중한다. 30대 초반 낚시를 시작할 때 찌맞춤의 원리와 같은 낚시이론서를 10여권 사 독파하고 전문지를 구독하는 등 낚시 원리를 먼저 깨우친 뒤 낚시채를 구입해 다섯 달 만에 목표로 한 잉어를 잡고 그만두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주식시장에서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하게 된 것도 의사이면서 경제공부에 파고들어 전문가가 된 때문이다. 클래식에 입문할 때는 레지던트 한 달치 월급을 투자해 명반 100장을 구입, 하루 20시간씩 들으면서 마니아가 되었다. 글쓰기도 꾸준히 해 매일 200자 원고지 20~30장 분량의 글을 별도로 써놓는데, 현재 컴퓨터에 저장해놓은 게 책 한두 권 낼 분량이다.

최근에는 살빼기에 도전해 20㎏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20대 이후 한번도 95㎏ 이하로 떨어져본 적이 없던 몸무게를 82㎏으로 만든 것이다. 이 다이어트도 의사로서의 지식을 동원해 실행매뉴얼을 세운 뒤 실천에 옮겼다. 비장의 다이어트 방법을 물으니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을 따로 섭취하면 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아침엔 밥과 미역국, 점심엔 밥 없이 두부나 생선, 저녁엔 삼겹살만 먹으면 절대 살이 찌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엔 트위터에 음식과 요리에 관한 글을 꾸준히 올리는데 스스로 요리전문가라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박식하다.

그렇다면 그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인가.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시골에서 똑똑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도시(대구)로 진학해 보니 평범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고교 때 담임교사가 “너는 OO대 전기·전자과는 꿈도 꾸지 마라. 그 대학 비인기 학과 가든지 지방의대 가라”고 하던 말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고 한다.

그의 어린 시절 우상은 경찰공무원이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읽은 책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으며, 그 역시 책을 읽고 난 소감을 간단히 적어서 아이들이 커서 읽을 수 있도록 집안에 따로 정리해둔다고 한다. 안동에서 대학에 다니는 큰아이가 의료사고로 뇌성마비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TV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나와 공개한 바 있다. 지금도 왼팔이 불편하고 지혜가 부족하지만 형편이 괜찮은 아버지를 만났으니 사회에 봉사하며 살라는 뜻에서 사회복지학과에 보냈다고 한다. 박 원장이 대학 다닐 때 아버지를 여의어 패닉상태에 빠져 있을 때 시험을 포기하면서 그의 곁을 지켜준 두 사람의 친구가 있었는데, 하나가 현재 안동 병원에서 동업하는 의사이고 다른 하나가 박 원장의 부인이다.

◇ 약력

△1964년생 △영남대 의대 △서울과 대전 병원서 외과의사 근무 △의사협회 대변인 △안동 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 △저서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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