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이 땅의 호랑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읽음

이고은 기자

▲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왕대
김탁환 글·조위라 그림 | 살림어린이 | 240쪽 | 9500원

아기호랑이 왕대는 ‘으뜸 호랑이’가 되고 싶다. 아직 태어난 지 5개월밖에 안됐지만, 언젠가는 엄마호랑이보다 더 많이 자라 숲의 왕으로서 인왕산 숲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싶은 게 꿈이다. 그런데 어느 날, 불을 다스릴 줄 아는 인간이 엄마호랑이를 해치고 왕대를 창경원 동물원으로 잡아간 뒤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 왕대는 동물원에서 여러 아기 동물들을 만나지만, 아기 동물들 사이에서 왕 노릇을 하는 사자 피터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다. 왕대는 점점 숲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지지만, 탈출을 감행하다 박제가 된 암컷 호랑이 태백을 보면 두렵기만 하다.

역사와 생태 동화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왕대>는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살고 있었던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다. 100년 전이라면 우리 민족에게 가장 비극적인 시기였던 일제강점기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호랑이를 해로운 동물로 보고 ‘해수구제(해로운 맹수를 없앤다)’라는 명목 아래 호랑이를 무차별 말살하는 정책을 폈다. 처음엔 한반도에 살고 있는 호랑이를 사냥해 동물원에 가두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엔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마저 ‘살처분’하기에 이른다. 인왕산 등지에서 천하를 호령하던 호랑이는 이렇게 잔인한 인간들 때문에 점점 이 땅에서 사라져갔다.

[책과 삶]이 땅의 호랑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책은 자연스럽게 역사와 생태를 말한다. 가상의 호랑이 이야기이지만, 우울한 근·현대사의 한 장면을 잘 보여준다. 왕대는 일제에 의해 동물원으로 변해버린 창경원에서 사육사 보조인 조선인 꼬마 재윤이를 만난다. 재윤이는 언젠가 정식 사육사가 되고 싶지만, 일본인들의 무시와 멸시를 받으며 지낸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왕대와 재윤이는 강자에게 짓눌리고 억압받는 약자의 모습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

숲과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인간사에서 횡행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쉽게 보여준다. 야생의 숲은 냉정하다. 제아무리 숲의 강자인 맹수라고 해도 적으로부터 공격받지 않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고, 만약 사냥에 실패하면 며칠이고 굶주림에 시달려야 한다. 먹이사슬의 원칙이 철저하다.

동물원은 비열하다. 그래서 더욱 잔인하다. 자연생태계의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아니라 절대 강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가장 상위에 있는 존재는 결국 ‘인간’이다. 동물원의 히로키 원장은 동물들의 먹이를 끊어버리거나, 말썽을 피우면 독방에 가둬버릴 수도 있다. 심지어 전쟁을 이유로 치사량의 3배에 달하는 독극물을 먹여 동물들을 대량으로 살상한다. 이는 한국에서 동물을 대량으로 사육하고 대량으로 죽이는 ‘살처분’의 시발점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자연과 생태, 인간이 함께 어울리는 공존과 조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무너지는 계기이기도 했다.

동화 속 왕대는 결국 동물원을 탈출해 숲으로 돌아가지만, 현실 속 호랑이들은 숲과 생명을 모두 잃어 멸종에 이른다. 저자는 “동물의 멸종위기에는 우리의 책임이 있다”며 “멸종된 동물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인 만큼 동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책과 삶]이 땅의 호랑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한 컷에 담긴 화산 분출과 오로라 바이든 자금모금행사에 등장한 오바마 미국 묻지마 칼부림 희생자 추모 행사 황사로 뿌옇게 변한 네이멍구 거리
이강인·손흥민 합작골로 태국 3-0 완승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