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주의 교단일기

찻잎 위로 떠오른 부모 얼굴

다도 예절 교육으로 마음 치료를 실천하는 선생님과 함께 배움과 돌봄의 공동체 운동으로!

과연 학교는 미래의 행복을 준비하는 곳인가? 학교는 어떤 능력을 배우는 곳인가?오로지 석차와 등급의 서열화된 상대적인 학업 능력으로 진단하고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을 저당 잡히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정한 탐색은 부족하다. 학습 부진이 지체되어 회복할 수 없어 무기력을 학습한다. 학습된 무기력과 낙오감은 자존감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소통 능력의 부재, 나 중심적 사고와 제멋대로의 행동으로 인해 일어나는 급우간, 교사 학생간 갈등 현상은 교육의 책임인가? 입시와 학벌 중심, 물질만능의 사회적 책임인가?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교육 정책의 초점이 집중되는 대도시의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닌 중소도시의 농어촌 학교이다. 부모님이 다양한 학습 지원을 해주기가 어렵고 편의점이든 식당이든 아르바이트로 교통비와 용돈을 벌어야 한다. 무기력한 아이들, 제멋대로인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어떤 배움을 주어야 하나, 어떻게 하면 스스로의 능력을 믿고 미래를 낙관하는 힘을 길러줄 수 있을까? 교사인 나는 그저 연민의 감상에 무력할 뿐이다. 오래 기다려야 하고, 여럿이 함께 해야 하는데 마음이 조급하기 때문이다.

[우현주의 교단일기] 찻잎 위로 떠오른 부모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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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 11월 19일 우리 학교에서 열린 ‘효 실천 다도 대회’는 다도 예절 교육을 통해서 긍정성과 자아존중감을 배워가는 아이들의 대견한 모습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우리 학교는 올해 처음 실시되는 1학년 창의적 체험활동 교육과정의 자율활동 영역 가운데 학교 특색활동으로 3회의 프로젝트 학습을 운영하였는데 가정과 김용숙 선생님께서는 ‘다도 예절’ 수업을 진행하고 여기에 참여했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부모님을 모시고 ‘효 실천 다도 대회’를 기획했다.

[우현주의 교단일기] 찻잎 위로 떠오른 부모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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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는 부모님께 편지 낭송, 큰절 올리기, 전통 녹차 우려 대접하기, 발 씻어 드리기 등의 순서로 진행됬다. 행사에 참가한 학생들 중에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가장이 되신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편지로 표현했다. 교장 선생님은 물론 심사위원, 다른 학부모님들까지도 눈물을 훔치게 한 학생도 있었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술과 담배 등의 쾌락의 유혹을 절제하지 못했던 학생이 자신의 존재감을 믿어주는 엄마에게 차분히 차를 우려 드리는 모습이 믿기지 않아 흐믓한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미 아들과의 신체 접촉의 느낌을 잊은지 오래인 엄마가 아들이 양말을 벗겨 적당한 온도의 물에 발을 씻겨주며 맛사지를 해주니 ‘시원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몸은 엄마보다 컸지만 여전히 어리고 품에 안아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들키기도했다.

이날 대회의 진행을 맡게 된 나는 주책맞게 아이들의 편지글에 눈물을 흘렸다. 평상시에 보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차분하고 침착하게 큰 절을 올리고 느림과 기다림의 다도를 행하는 아이의 변신을 부모님 앞에서 과장해 칭찬하기도 하면서 아이 모습에 대견해하실 부모님 마음을 대신해드리며 잔잔한 분위기에 감동했다.

[우현주의 교단일기] 찻잎 위로 떠오른 부모 얼굴

한편 다도 예절 교육을 꾸준히 실천하는 김용숙 선생님은 "다도 예절 교육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세상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은 아이들에게 마음 치료를 하고 긍정성과 자아존중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번 행사를 통해 이와 같은 교육 활동의 의미를 더 많은 교사들이 공유하고 공감했다. 교사 본인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교육 활동을 풍부하게 하고, 학교가 진정 ‘배움과 돌봄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 노력이 교사들 스스로의 자발성과 창의성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우현주/양주 백석고등학교 교사 (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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