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유로화 붕괴 가능성… 한국에도 타격 줄 것”

최민영·이윤주 기자

 자크 사피르 교수

프랑스의 석학 자크 사피르 교수(57)는 내년에 유로화가 붕괴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출주도에서 무게중심을 옮겨 교육과 복지부문에 투자하는 내수시장을 확대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일 수 있기에 경제적 이익을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 고등사회과학원(EHESS)의 경제학 교수인 그는 14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럽 재정위기는 2015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근거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에서 비롯됐다. 그는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불가피해보이는 그리스와 포르투갈이 내년 유로존을 탈퇴하면서 유동성 위기가 스페인·이탈리아로 번지고, 유로존이 결국 와해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크 사피르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교수가 14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유럽 재정위기가 2015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자크 사피르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교수가 14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유럽 재정위기가 2015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지난주 유럽연합(EU) 정상들의 ‘신 재정협약’ 추진 합의에 대해서는 “논의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면서 “2010년 10월 이후 위기가 해결된 척하는 회담만 반복됐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회원국 간 막대한 무역불균형의 공백을 국가부채로 막을 수밖에 없도록 잘못된 유로화의 설계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통화정책이나 환율정책을 독립적으로 쓸 수 없는 것도 구조적 문제로 꼽았다. 하지만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회원국의 재정적자 감축을 목표로 하는 독일식 해법은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도 진단했다. 그는 결국 내년에 유로존 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유럽의 경제가 침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피르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위기를 극복할 방법으로 내수시장의 확대를 해답으로 제시했다. 그는 “아시아 주요국은 외환보유액이 막대하기 때문에 1997년과 같은 위기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새로운 위기는 성장이 지나치게 수출에 의존하는 데서 발생할 것”이라면서 “내수시장의 발전 외에는 답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내수시장은 단순히 가계의 직접적인 지출을 뜻하지만은 않는다. “사회·교육시설로 대표되는 공공소비와 사회·의료적 보장”을 포괄한다. 그는 “소득분배의 원칙을 고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복지 확대를 통해 가계의 구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은 내수와 수출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최근까지는 내수시장을 희생해서 수출을 키우는 기형적인 경제발전이 이뤄졌죠. 사람이 양다리로 걷는 것처럼 이 균형을 회복해야 경제가 살아납니다.”

하지만 이처럼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 선행돼야 하는 것이 있다고 사피르 교수는 강조했다. 바로 자유무역과 국경 없이 넘나드는 자본을 규제해 자국의 시장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는 최근 캐나다의 교토의정서 탈퇴 선언을 자유무역주의에 의해 환경보호라는 공공의 목적이 타격을 입은 사례로 꼽았다. 그는 “교토의정서 비준국이 온실가스 감축부담을 지는 상황에서 경쟁국이 캐나다보다 저렴한 비용에 상품생산이 가능하다면 불공정성의 문제가 발생하고, 결국 교토의정서는 누구도 지키지 않는 약속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사회정책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인건비가 낮으면서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중국 등 신흥국에서 수입하는 자유무역은 선진국의 임금을 하락시키는 압력 요인이 됐습니다. 자유무역으로 부가 창출되면서 신흥국의 임금과 사회보장이 선진국 수준으로 수렴된 게 아니라 그 반대가 된 겁니다. 선진국 노동자들은 부족한 임금을 은행권의 대출로 충당했고, 이는 결국 가계부채의 증가로 이어지면서 현재 경제위기의 원인이 됐지요.”

이처럼 자유무역에 따라 기업들이 신흥개도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선진국에서 일자리가 줄면서 임금도 낮아지는 ‘소셜 덤핑’(social dumping) 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피르 교수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도 경제성장과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120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보면 자본시장의 개방정도가 높을수록 경제성장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금융 투기자본의 이동에 대한 규제를 재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빈세(금융거래세) 등이 수단이 될 수 있다.

사피르 교수는 내년 발효 예정인 한·미 FTA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1990~2007년까지 강력한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엔진 역할을 해왔지만, 다시는 이 같은 역할을 미국에게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어떤 이익이 발생하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가 뚜렷한 미국에서 모순적이게도 보호무역 기조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경제를 희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자크 사피르

프랑스 파리 고등사회과학원(EHESS) 경제학 교수. 1998년 러시아 경제의 붕괴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조절이론(레귤라시옹 학파)의 전통을 이어받아 사회변동과 제도, 규칙의 역할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2001년 뛰어난 금융경제 분야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튀고르상을 수상했다. <경제학자는 민주주의의 반대자인가?>(2002) <제국은 무너졌다>(2008)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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