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언어의 위계화 거부는 존재의 함성”

황경상 기자

증여·전쟁·권력의 관점서 ‘디시인사이드’ 분석… ‘우리는 디씨’ 낸 이길호씨

개드립, 낚시, 듣보잡, 디스, 솔까말…. 수많은 유행어의 진원지이자 각종 루머, 인터넷 세계의 유행을 만들어내는 공간. 이곳에서 사람들은 격렬하게 “까고 까인다.” 욕설과 반말 시비조의 말투가 거침없이 오간다. 어떤 권위도 인정되지 않으며 허세를 부렸다간 곧 ‘신상 털기’로 낱낱이 파헤쳐진다. 가장 ‘문제적’으로 꼽히는 인터넷 사이트 ‘디시인사이드’(디시·www.dcinside.com) 얘기다.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이길호씨(32)는 꼬박 2년간 ‘디시’의 각종 갤러리(사진 첨부가 필수인 인터넷 게시판)에서 “컨셉을 잡고, 개드립을 치고, 떡밥을 던지거나 물고, 짤방을 제작하고, 그리고 서로 싸우는” 사람들을 기록했다. 장기간의 현지조사로 특정 공동체의 생활양식을 기록하는 민족지 연구의 대상을 ‘사이버공간’으로 삼은 셈이다. 최근 펴낸 <우리는 디씨>(이매진)는 그 결과물이다.

이길호씨가 3일 ‘디시인사이드’를 인류학적으로 분석한 <우리는 디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이길호씨가 3일 ‘디시인사이드’를 인류학적으로 분석한 <우리는 디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3일 만난 이씨는 “디시의 공격성과 폭력성에 대해 한쪽에서는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소외된 사람들이 불만을 표출한다는 논리를 펴는데 두 가지 모두에 불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도 2007년 말 디시 조사를 시작했을 때 ‘막갤’(막장 갤러리)이 ‘소시갤’(소녀시대 갤러리)를 인정사정없이 공격해 게시판을 털어버리는(도배하는)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엇인가?” 거기서부터 책은 시작한다. “옹호나 비판에 앞서, 우선 그 사람들의 목소리와 내부 논리를 살펴보자는 것이었죠.”

우선 왜 사람들은 ‘돈도 안되는’ 게시글 올리기에 목을 매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존재 자체만으로 ‘있음’을 인정받을 수 있는 현실세계와는 달리 디시라는 사이버공간의 사람들은 갤러리에 올리는 게시글로 존재를 증명한다. “그들의 말과 글과 그림은 그들이 자신을 사회적 몸체에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해 ‘처절하게’ 내지르는 존재의 함성”인 것이다. 그것은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 증여 행위”이며, 그들은 “말을 들으려고 갤러리에 있기보다는 말하려고” 거기에 있다.

여기에 이씨는 인류학의 오래된 주제인 ‘증여와 선물’의 논리를 가져온다. “자본주의적 상품 교환의 논리로 보면 그들의 행동은 잉여짓이죠. 그러나 증여와 선물의 관계에서는 제3자가 참여하게 됩니다.” 즉, 말과 글과 그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증여자는 ‘명성’을 얻는다. 그래서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하기보다는 널리 퍼지기를 원한다. 다만 특정 생산물의 출처나 원제공자의 이름이 강탈당하면 격렬하게 반응한다.

또 하나의 관점은 ‘전쟁’이다. 디시 사람들은 갤러리 내에서 다른 이들과 싸우고, 갤러리끼리 싸우는 데도 가담하고, 디시와 외부 사이트 간의 싸움에도 한몫 거든다. 그들에게 어느 한편에 서서 싸워야 하는 전쟁은 자신이 ‘소시갤러’가 아니라 ‘코갤러’(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 이용자)임을 증명하는 행위이며, ‘웃긴대학’이 아닌 ‘디氏’인으로서 서로 ‘형제’임을 증명하는 기회다.

나아가 이씨는 디시에서 갤러리의 친목 행위를 극도로 경계하고, 여성 갤러들의 유입을 차단하는 이유가 ‘재생산’ 문제 때문이라고 본다. 인터넷에서 ‘재생산’이란 출산이 아니라 끊임없이 글이 올라와 갤러리가 유지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려면 새로운 사람들, ‘뉴비’들의 유입이 계속돼야 한다. 만약 기존 ‘올드비’들 간에 지나치게 유대관계가 형성되거나 여성 갤러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위만이 반복될 때 ‘뉴비’들이 섞이기는 어렵게 된다. 이런 폐쇄성의 가속화는 새 유입을 멈추고 갤러리를 몰락시킨다. 따라서 갤러리의 ‘재생산’을 염려하는 디시인들은 서로 극렬히 의식적으로 ‘욕설을 퍼붓고, 까고 까이며’ 사회적 유대관계를 혐오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분석은 ‘증여와 전쟁’ 현상의 너머에 있다. 이씨는 여기서 디시인들이 그들 사이의 완전한 ‘평등’을 현실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한다. “디시에서 평등은 실현돼야 할 목표라기보다 출발점입니다. 그들은 애초에 등급이 없는 평등한 이름(닉네임)으로 관계를 맺었지요. 전쟁이 벌어져도 어떤 갤러리가 항상 지배당하지 않고 상시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는 것 또한 그런 평등 의지의 표현입니다. 누가 증여를 하더라도 일시적 권위만이 부여될 뿐 명성은 금방 사라지는 것도 같은 이치죠.”

디시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디시를 ‘막장’이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디시 사람들은 현실사회의 계층화가 사이버공간에 재연되는 현상을 ‘막장’이라고 부른다. 네이버·다음 카페, 위키피디아에서 관리자와 일반 누리꾼 간에 위계질서가 형성되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디시 사람들은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회원가입을 한 뒤 로그인해야 글을 쓸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자 그에 순응하는 사람들을 ‘기뮤식의 노예’(디시 김유식 대표를 지칭)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그럼에도 익명성의 공간이 차츰 줄어드는 것을 막지 못하자 모든 이름을 ‘리얼’로 통일하자는 ‘혁명’의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방종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어쩌면 의도적인 것이죠. 이를 ‘민주주의적 혼돈’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이씨는 “디시는 일반화할 수 있는 사례는 아니지만 사이버공간의 보편적 특성을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증여와 전쟁, 위계관계 등은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으며 그것은 예외가 아니라 보편적 특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위계화를 거부한 디시의 ‘저항’ 과정을 읽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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