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25개국에서 만난 25살의 동갑내기들…그들의 각양각색 ‘고민과 꿈’

김석종 선임기자

청춘의 지도를 그리다…마크 세레나 지음·변선희 옮김 | 북하우스 |420쪽 | 1만5000원

요즘, 어느날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가 수없이 많다. 그들이 쓴 여행서는 유행이라 할 만큼 흔하디 흔하다.

[책과 삶]25개국에서 만난 25살의 동갑내기들…그들의 각양각색 ‘고민과 꿈’

1983년생 스페인 청년 마크 세레나가 떠난 여행도 다르지 않다. 안정된 직장인 바르셀로나 라디오 방송국을 박차고 나와 무작정 세계일주에 나섰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대륙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의 러시아까지 358일간 5대륙 25개국을 방문했다. 장장 15만㎞에 달하는 긴 여행이다. 저자는 여행을 하는 틈틈이 본인의 블로그에 여행담과 사진을 올렸는데, 그 블로그가 2009년 론리플래닛이 선정한 ‘최고의 여행 블로그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청춘의 지도를 그리다>는 그 여행의 기록이다. 그렇지만 여행정보를 전하는 예사 여행서는 아니다. 저자가 방문한 스물다섯개 나라, 자신과 동갑내기인 스물다섯살 친구, 나라마다 한 명씩 스물다섯명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그들의 연애, 결혼과 같은 사적인 주제부터 정치적인 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다. 불안정한 세대인 이십대 청춘들의 현재와 미래, 꿈에 대해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이야기한다.

“내가 만나본 사람들을 헤아려보면 부자 나라의 가난한 청년, 가난한 나라의 부자 청년, 공부를 많이 한 청년 혹은 그렇지 않은 청년, 재능이 많은 청년 그리고 지혜로운 청년이 있었다. 소년도 있고, 소녀도 있었다. 가족이 있는 사람도 외톨이인 사람도 있었고, 세상을 바꿀 의지가 있는 사람,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시대의 모델이 될 만한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18쪽)

이미 오래 전, 우리나라 한비야가 같은 방식의 여행을 통해 책을 썼고, 국제기구의 긴급구호팀장으로 수많은 청춘들의 ‘멘토’가 됐다. 이 책은 어쩌면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와 닮았다. 책에 등장하는 청춘들이 눈에 띄게 성공한 인물이나 드라마틱한 사연을 간직한 것은 아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어려운 국가, 불안정한 사회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세계 젊은이들에 대한 꽤 의미 있는 성찰이 담겨 있다. “무엇이 그들을 웃게 하는지, 그들은 누구이며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들 각자의 미래와 자기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19쪽)

저자가 방문한 곳은 남들이 가기를 꺼려 하는 위험한 장소들이 많다. 이를테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디제이를 꿈꾸는 소웨트의 흑인 청년을 통해 21세기 들어서도 여전한 인종 갈등을 이야기한다. 독재국가 짐바브웨에서는 낮에는 은행원으로 일하는 시인을 등장시킨다. “젊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쉽게 이 나라를 빠져나가지만, 나는 여기 속해서 할 일이 많아. 현실에 항복하고 싶지 않거든.”(87쪽) 시인은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참담해도 시심(詩心)으로 어두운 조국을 밝히고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한다.

같은 스물다섯살이지만 이미 아홉살, 다섯살짜리 딸이 있는 가난한 나라 스와질랜드의 평범한 가정주부, 자식만은 제대로 교육을 받아 성공한 삶을 살길 원하는 한적한 필리핀 어촌의 젊은 어부 이야기는 담담하면서도 가슴이 좀 아리다.

원주민의 전통을 잇고 있는 뉴질랜드 신세대 마오리족, 굳이 유행이 지난 고고학자의 길을 택한 캄보디아 학생, 행복과 삶의 가치를 찾으려고 승려가 된 일본의 젊은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환경운동가나 비정부기구 활동가로 일하는 중국 친구 등 자신이 처한 환경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면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차례로 소개된다. 남들과는 다른 성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인도 젊은이, 장애인 올림픽 세계기록 보유자로 늘 한계에 도전하는 홍콩의 ‘포레스트 검프’, 심지어는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수감되어 갱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칠레 친구까지 만난다. 이들은 보잘것없는 현실, 불투명한 앞날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마음속에 품은 꿈을 잃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친구로는 가수 이소은을 만났다. 잘 나가는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여행가로 변신한 손미나가 스페인에서 저자를 만났을 때 추천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소은의 공연장에 동행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분단국가의 상황, 전 세계에 K팝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이돌’ 가수들, 인터넷 열풍과 함께 개고기 식당까지 슬쩍 거론한다. “우리 세대 젊은이들은 행운아들이지만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바뀌는 문화 속에서 살다보니 1950~60년대의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곤 해.”(120쪽) 이소은은 얼마 전까지 가수로 활동하다가 미국 로스쿨에 진학해 법조인의 길을 걷고 있다.

저자는 우연한 만남이라며 짐짓 시치미를 떼지만 이소은의 예에서 보듯이 방문 국가와 인물 선정에 아주 꼼꼼하고 치밀한 준비를 한 것 같다. 그러니 대륙마다 흩어져 있는 보통의 또래 친구들을 통해 그 나라의 정치, 문화, 풍물, 그리고 사회문제의 핵심을 여실히, 적확하게 끄집어낸다.

태국의 국민 스포츠인 무에타이 선수, 전쟁 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베트남의 젊은 패션디자이너, 야생과 밀림의 땅 페루의 인디오족 주술사, 베네수엘라의 전통 스포츠 소꼬리잡기 선수, 핫도그 빨리 먹기 대회에 참가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미국 청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미래의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학생 등은 그가 속한 나라와 집단의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인물들이다.

전체적으로 내용이 다소 밋밋한데도, 저자가 또래 친구들과 나눈 대화와 경험을 진솔하게 기록한 문장은 한비야, 그 이상의 쏠쏠한 재미와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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