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두 기자

참여정부의 문제있는 정책 반성했지만 새로운 해법 눈에 안 띄어

“참여정부 한계를 극복하고 노무현을 넘어서겠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출마선언 후 자신의 정책 공약을 언급할 때 자주 하는 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추진, 비정규직법 입법으로 인한 양극화 심화 등 노무현 정부의 국가 정책에 쏟아졌던 비판은 그대로 문 후보에게도 적용된다. 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이끌던 장본인이었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문 후보가 대선에 나서기 전부터 그의 공약은 노무현 정부 공과론을 돌파할 발판으로 인식됐다.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후 노무현 정부의 오류에 대한 반성의 고개를 넘어 극복하는 정책 제시에 주력한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고 있고, 이는 문 후보 정책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오른쪽에서 두번째)가 9일 독일,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복지국가 대사들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동산 한옥 사랑재에서 환담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오른쪽에서 두번째)가 9일 독일,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복지국가 대사들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동산 한옥 사랑재에서 환담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복지·성장 두축으로 요약… 민주당의 당론들과 비슷
누구 탓 아닌 비전 보여야‘노무현 극복’ 평가 가능

■ ‘신자유주의 중심’에 섰던 과거

노무현 정부의 주요 정책 뒤에 드리워진 문 후보의 그림자는 희미하지 않다.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한·미 FTA 구상 및 협상이 시작됐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됐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색채를 더욱 짙게 한 한·미 FTA 협상이 시작된 2006년 2월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었다. 협상이 타결된 2007년 4월에는 비서실장으로 있었다. 그는 지난 7월 민주평화국민연대 토론회에서 “대부분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대리해서 오히려 대통령보다 훨씬 많은 업무를 처리했다”며 “그게 저에게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한·미 FTA 문제 등 사회적인 논란이 뜨거웠던 국정현안을 직접 컨트롤했다고 인정한 셈이다. 지난해 펴낸 자서전 <운명>에서 한·미 FTA 협상 때 “미국에 주눅 들지 않고 최대한 국익을 지켜냈다”고 자평했다.

문 후보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추진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던 2005년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해군 전력을 강화한다는 게 명분이었지만 주민 반발을 무릅쓰고 사업을 결정한 책임이 그에게도 없지 않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당시 결정이 지금의 환경 파괴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지적받는 ‘비정규직 보호법’에도 그의 손때가 묻어 있다. 이는 2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면 회사는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제도로 변질됐다.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기 위해 2년이 되기 직전에 계약을 끝내는 편법이 동원된 것이다. 당시 이 법을 만들 때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회사 측 반발도 컸다. 결국 이 제도는 기업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고용 불안만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이 문제를 다룬 문 후보의 책임론이 제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집값 폭등을 잡기 위해 김근태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 주장한 ‘부동산 원가공개 제도’를 청와대가 반대했을 때도 그는 시민사회수석으로서 노 전 대통령 옆에 있었다. 논란이 됐지만 이때 잡지 못한 집값은 노무현 정부 말까지 이어져 두고두고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 후보 문재인 뒤집어보기](3) 정책

■ 반성 불구 ‘시대 환경·언론 탓’

문 후보는 노무현 정부의 과오가 거론될 때 ‘반성’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지난해 정치권에 뛰어들기 전에는 성과를 더 부각시키던 그였지만, 국회의원이 되고 대선에 출마한 뒤 이 얘기가 나오면 사과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정책적 실수를 인정할 때 당시 정치권의 상황과 업무구조, 언론 환경 등을 거론하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한·미 FTA가 대표적이다. 설명의 핵심은 “이명박 정부 들어 협상안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문 후보는 “이명박 정부 들어 미국과의 재협상으로 노무현 정부가 받아낸 자동차 부문 이익의 75% 이상이 후퇴했다”며 “지금 상태로는 비준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에서 자신이 추진했던 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은 내용이 다르며, 문제가 되는 부분은 현 정부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 후보도 현재 다시 재협상을 해 없애겠다고 공약하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가 참여정부 추진 때도 체결된 내용이다.

문 후보는 청와대 업무구조를 탓하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개최한 타운홀미팅에서 노무현 정부 정책집행 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으로 ‘부처별 칸막이’를 꼽았다. 한·미 FTA, 이라크 파병 등 그가 비서실장일 당시 발생한 사회문제를 일정 부분 업무구조 탓으로 돌린 것이다. 그는 “청와대의 칸막이 때문에 정책 분야는 정책 분야끼리만 모여서 결정하고 이라크 파병, 한·미 FTA처럼 국내적으로도 중요한 문제는 외교·안보·국방·통상 분야만 모여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 국내에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면 그제서야 정무 분야 참모들이 함께 논의했다”고 했다.

언론에도 서운함이 많았다고 한다. 공적은 작게 전해지고, 과오는 부풀려졌다는 인식이 강했다고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한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문 후보와 그의 참모들은 대부분 노무현 정부 말기 관료나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잘했다고 생각하고,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 때문에 잘한 것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해 계속 노무현 정부를 옹호할 것이다.”

[민주당 후보 문재인 뒤집어보기](3) 정책

■ 미래 ‘문재인 정권’ 정책은 어떨까

문 후보의 대선 정책은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구조’로 요약된다. ‘공평’ ‘정의’를 최우선 가치로 ‘사람이 먼저’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중심으로 과거 시대와는 다른 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문 후보는 대선 후보 수락 연설문에서 ‘일자리혁명,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정치혁신, 한반도평화’의 5개의 문(門)이라고 구체화했다.

대부분 정책들에서 새로운 모습은 없다는 평가가 있다. 민주당 당론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시민사회와 진보정당까지 아우르는 정책 수렴을 해놓은 터라 무난한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몇몇 주요 공약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자리 창출 부분은 백화점식 나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화, 최저임금 노동자 평균임금 50%로 인상, 근로기준법 확대’ 등이다. 문 후보는 ‘국가일자리위원회’를 통해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챙기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양극화 해소 등 서민경제 해법으로 일자리 창출을 들고 있지만 정부의 지나친 관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고용은 정부가 만드는 게 아니라 ‘시장’이 만드는 것”이라며 “일자리위원회로 정부가 관리를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정부의 과도한 관리는 고용 성과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정권 초 해마다 30만개 일자리를 약속하고 이를 달성했지만 일자리의 질은 떨어지는 게 많았다는 지적과 궤를 같이한다.

청년고용 의무 할당제를 제시했지만 이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다.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은 “총고용에서 대기업·공공기관 고용비율은 10% 초반대다. 확대돼 봐야 5만~10만명 정도 늘어난다”며 “전체적으로 중소기업·하청업체 등 청년 일자리 등에 대한 복합적인 대책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 80~90% 청년들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적 접근책이 없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대표적인 정책인 ‘반값 등록금’에도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문 후보는 당선이 되면 내년 임기 첫해에는 국공립대를 대상으로 적용하고, 이듬해에 사립대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정책팀장은 “정작 등록금이 더 비싼 사립대 학생들에게 반값 등록금 도입이 시급하다”며 “이런 부분은 시민사회와 충분히 소통해서 현실을 반영한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벌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을 막는 대형마트 허가제 등 경제민주화 정책도 남다를 게 없다는 말이 나온다. 오히려 문 후보가 직접 나서서 이미 국회에 계류 중인 경제민주화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는 성과를 보여야 진정성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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