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착각

양권모 정치·국제에디터

‘야권이 단일화만 하면 무조건 이긴다. 정권심판론 하나로 선거는 끝난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는 과거사 공격만으로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다.’

지금의 민주통합당 얘기가 아니다. 지난 4월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대응이 딱 그랬다. 그랬으니 정책에서도 공천에서도 쇄신의 필요를 느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 의제를 선점하고 공천 물갈이를 하는 등 최소한 쇄신의 몸짓이라도 보인 반면, 민주당은 대책없는 승리의 낙관에 취해 밥그릇 챙기기와 세력 확보에만 골몰했다. 정권심판론과 새누리당 박근혜 중앙선대위원장에 대한 과거사 공격이 선거 전략의 전부였다. 그랬기에 미래 담론을 그들이 저주하는 ‘박정희의 딸’에게 넘겨주고 자신들은 과거의 세력으로 틀지워지는 것에 속수무책이었을 게다. 민주당 스스로 한탄했듯, 절대로 질 수 없는 환경의 선거에서 질 수밖에 없었다. 야당이 무력한 탓에 정권과 여당의 평가와 심판이라는 책임정치의 기제가 총선에서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안철수 현상이 더 강렬하게 등장한 것도, 정권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외려 야당이 심판받은 전도된 총선의 결과 때문일 터이다. 민주당이 이런 무참한 총선 결과를 받아든 후 잠시 반성과 쇄신을 거론하다, 변변한 성찰 한 번 없이 그 나물의 그 밥으로 재편된 궤적은 새삼 복기할 필요가 없겠다.

[정동에서]민주당의 착각

그래서 더욱 ‘박근혜 대세론’에 속절없이 휘둘리던 민주당이 지지율 상승의 기미에 고무돼 다시 그때의 행태를 되밟고 있다. 이번에도 단일화만 이루면 대선에서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는 소리만 들린다. 자연 단일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공법만이 대선의 잣대가 되고 있다. 여당의 박근혜 후보에 대한 대응은 과거사 문제를 빼고는 찾을 길이 없다. 의제와 정책에서 선도를 보여주지도 못한다. 단일화만 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맹신에 빠져 있으니 다른 것이 고려될 리 없다. 고스란히 19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저지른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꼴이다.

민주당의 과신은, “안철수 후보가 민주당에 입당해서 경쟁하고 단일화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문재인 후보가 대놓고 주장할 정도에 이르렀다. 안철수 후보가 민주당에 입당해서 경쟁하는 것이 문재인 후보가 이길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겠지만, 대선에서의 승리와는 가장 먼 길이다.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의 높아진 지지율은 온전히 자신들이 잘해서 이뤄낸 것이 아니다. 소위 용광로 선거대책위에서의 인적 구성, 정책 캠페인 등에서 비교우위를 내세울 수도 있겠으나 그것으로 지지율이 추동됐다고 보는 것은 오독이다. 결국에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연이은 자살골로 만들어진 반사 공간에 안철수 후보라는 존재로 인한 정권교체 열망이 확대된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사실에 부합한 해석일 것이다. 민주당 혼자로는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박근혜 대세론’을 흔든 것은 박 후보 자신의 퇴행과 안철수 현상을 불러온 대중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빚어진 지지율의 상승을 자신들의 능력 덕분으로 생각하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으니 정당 쇄신의 길을 방기하는 것이다. 요란한 선거대책위는 있으나, 정당 혁신의 요체일 주류 혁신이나 세력정치의 타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쇄신 소동 속에서 사퇴한 새누리당의 ‘최경환’ 같은 경우조차도 민주당에는 없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문재인 후보를 묶고 있는 친노의 프레임을 깰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바뀐 것이 없다, 최소한 바뀐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정당의 배경을 앞세워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경쟁에서는 우위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정권교체의 동력이 확대되고 문재인 후보의 본선 경쟁력이 강화되지는 않는다. 근거는 같은 인물 구도와 구조 속에서 치러진 지난 총선이 충분히 보여줬다.

변하지 않는 진실은, 한국 정치의 기본 지형은 보수가 압도한다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다섯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계열의 후보가 승리한 두 번은 보수가 분열한 가운데 민주당 계열 후보가 보수정파(1997년 김종필, 2002년 정몽준)와 연합하고 나서야 가능했다. 그것도 두 번 모두 득표 차이가 1% 안팎으로 간신히 이겼다. 사실 작금에 나오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의 지지율에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2002년 대선의 투표율을 대입하면, 모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야권 후보에 너끈히 앞선다.

단순한 후보 단일화만으로는 이러한 구도가 무너지지 않는다. 변화 없는 민주당의 낡은 틀을 그대로 둔 채 단순 결합의 단일화로는 턱없다. 민주당의 혁신이 필수적인 것이다. 새누리당이 아닌 민주당이 ‘후지다’는 것에서 등장한 게 안철수 현상이라면 그것을 담지하지 못하는 단일화는 승리는커녕 패배의 첩경이다. 인적 쇄신을 필두로 한 민주당의 혁신 없이 단일화 공법에만 목매는 것은 19대 총선의 재판이 되기 십상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이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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