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정시퇴근, 실제 있는 회사?

정용인 기자

월화수목금금금(月火水木金金金). IT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하게 들어본 말일 것이다. 휴일도 없이 계속되는 프로젝트를 빗댄 업계 용어다. 잠은 언제 자냐고? 업계에 있는 한 지인에게 물어봤다. “아, 회사 한구석에 침대가 있어서.” 그러다보니 나이 마흔 넘어서 총각인 사람, 수두룩하다.

10월 18일,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IT 개발자들의 꿈의 직장’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모 유명 구인 사이트에 올라온 웹 개발자 채용 글이다. 연봉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근무조건은 파격이다. 주 5일 근무에 정시퇴근 보장. 복리후생을 보면 4대 보험 되고, 급여제도는 스톡옵션과 인센티브제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 ‘야근 강요 안함’과 ‘남성 출산휴가’. 그러다보니 회사 이름에 눈이 간다. ‘주식회사 정시퇴근’. 아예 못을 박았다. 웹사이트 주소도 ninetofiveinc.com, 그러니까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주식회사 ‘정시퇴근’이라는 이름은 정시 출퇴근을 목표로 지은 회사 이름이다. 사진은 회사 로고.

주식회사 ‘정시퇴근’이라는 이름은 정시 출퇴근을 목표로 지은 회사 이름이다. 사진은 회사 로고.

그런데 이 구인 게시글은 논란에 휩싸였다. 일단 회사의 창립 시기가 올해 9월이다. 둘째, 회사 주소가 경기도 안양의 한 아파트 주소로 되어 있다. 대표로 되어 있는 허익한씨의 이름은 ‘허약한’의 패러디가 아닌가 의심도 나왔다. 말하자면 누군가 IT업계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가짜로 올린 구인글? 종종 있던 일이다.

궁금하면 확인하면 될 일이다. 먼저 대표 이름. 실명이다. 개인 SNS도 운영하고 있다. ‘주식회사 정시퇴근’도 실제로 있었다. 위에 거론한 웹페이지로 들어가면 ‘안양FC시민연대’라는 커뮤니티 사이트로 들어간다. 안양축구팀 팬클럽이라는 건데, 홈페이지에서는 티셔츠를 팔고 있다. 그러니까, 저 팬클럽 운영을 위한 웹 개발자를 모집한다는 말일까. “간단하게 저희가 생각하는 솔루션은 취미생활에 대한 정보를 IT 기반으로 해서 빠르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생활체육 동아리 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정보를 취합해서 사용자들이 빠르고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플랫폼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입니다.” 허익한 대표(32)의 말이다. 일단 축구부터 시작하지만 다른 구기 종목, 일반 취미로까지 확대할 생각이다.

회사 창립일은 올해 9월 4일. 허 대표와 친구가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다. 회사 주소는 허 대표의 아파트다. 다시 말해 저 구인조건은 아직 실현된 것이 아니다. 회사를 처음 만드는 입장에서 ‘희망사항’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IT업계 현실은 잘 압니다. 데드라인도 물론 중요하고요. 퀄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계약이 틀어지거나 수정하다보면 혹사당하는 것이 맞습니다. 요즘 스타트업이나 청년창업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아예 시작부터 못을 박는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서요.”

얼마 전,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대선 출마 후보의 구호가 화제를 모았다. “저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줬어요. 학교 시절부터 가장 많이 써먹은 ‘기술’이 있다면 ‘밤늦게까지 학교에 앉아 있는’ 스킬이었는데, 사실 창의적 인재를 이야기하지만 창의와는 거리가 멀거든요. 그게 그런 문제의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왜 우리는 저녁에 퇴근을 못하나. 근본적으로 퇴근하면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제 가족과 취미생활로 저녁시간을 채워야지요.” 초심 잃지 않고 꼭 ‘IT 개발자들의 꿈의 직장’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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