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 후보, 판결문은 읽어보고 회견장에 섰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어제 정수장학회 논란은 야당에 의한 정치 공세라는 입장을 밝혔다. 얼마 전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지분 매각 논란이 불거졌을 때 “저도 관계가 없다”고 밝힌 데서 오히려 후퇴한 모양새다. 다만 향후 해법과 관련해서는 명칭 변경 문제 등을 포함해 “장학회가 스스로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학회가 더 이상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서 국민에게 혼란을 줘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리하자면 장학회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나 정쟁의 대상이 된 만큼 이사장 퇴진이나 명칭 변경을 통해 논쟁을 마무리 짓자는 제안으로 들린다.

박 후보의 주장은 네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정수장학회는 공익 재단인 만큼 자신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야당의 주장은 정치 공세에 불과하고 둘째, 고 김지태씨의 헌납 재산 외에 국내 독지가 등의 성금이 들어 있어 단순한 부일장학회 승계가 아니며 셋째, 장학회는 강탈이 아닌 부정축재자의 재산 환수에 해당하고 넷째, 설립자의 뜻을 잘 아는 사람이 장학회를 운영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주장을 펴는 과정에서 박 후보는 민주당의 집권 10년 동안 장학회가 별 탈 없이 유지됐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는가 하면 장학회가 공익 재단이라면서도 설립자의 뜻에 따른 운영을 강조하는 모순을 드러내기도 했다.

압권은 장학회가 갖고 있는 MBC와 부산일보 주식의 강탈 여부에 대한 박 후보의 인식이라 하겠다. 박 후보는 처음 설명할 때 강압이 없었다고 했다가 이를 지적하는 듯한 보좌진의 메모를 받고서야 “ ‘강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패소 판결을 내린 걸로 알고 있다”로 말을 바꿨다. 그러나 그 해명마저도 충분하지 않다. 김지태씨 유족이 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소송에서 재판부는 정부의 강압을 인정하면서도 재산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기한은 지났다고 봤다.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취지였다. 이를 박 후보의 단순한 실수로 치부하기에는 사안의 성격이 매우 엄중하다. 박 후보가 판결문이라도 제대로 읽고 회견장에 선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세상이 뭐라든 굽히지 않는 박 후보의 불통과 비민주성을 엿보는 것 같다.

이번 회견은 박 후보와 국민의 정서 사이에 파인 괴리만 재확인시켜 주었다. 박 후보가 그나마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명칭 변경이나 이사장 사퇴만 해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는 것 외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장학회의 사회 환원, MBC나 부산일보 사태의 해결 약속이 없는 그 어떤 해결책도 수사에 불과한 상황에서 박 후보는 장학회의 문제점까지 부인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5·16이나 유신 등과 같은 과거사에 대한 그의 사과 역시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일련의 사태는 역사 인식이 사과나 반성만으로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한 개인의 삶과 철학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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