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케이터, 사립박물관 위상 높였다

주영재 기자

놀이·학습 혼합된 박물관 교육 공감 얻어

올해 57곳 첫 지원…내년 130곳으로 확대

체에 거른 멥쌀가루와 으깬 호박을 담은 그릇에 학생들의 손이 모여들었다. 소매를 걷은 양손으로 반죽을 비빈다. 노란색으로 물든 가루를 다시 한 번 체에 거르고 설탕을 섞는다. 소풍 대신 진로 체험을 선택한 경기 시흥시 소래고등학교 1·2학년생 30여명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와룡동 떡박물관을 찾아 호박떡 케이크와 매화떡 만들기를 배웠다. 학생들은 왁자하게 떠들면서도 배웠던 대로 곧잘 만들었다. 1학년 임경빈양(17)은 “직접 만들어 보니 재미있고 한번 가르쳐줬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에 잘 남아 있어서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이날 떡 만들기 체험학습에는 강효은씨(28)가 강사로 나섰다. 그는 지난 3월부터 이곳에서 매주 2~3차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도시 아이들은 시골 아이들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겠지만 놀거리는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박물관에서 창의적인 체험활동을 한다면 아이들이 생각하고 보는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요.” 박물관 에듀케이터인 강씨는 학생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에듀케이터는 박물관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는 담당자를 일컫는 말로 전시기획과 연구를 전담하는 학예사와는 구별된다.

이지영 에듀케이터가 17일 서울 명륜동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견학을 온 초등학생들과 흙과 짚을 이용해 마을만들기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이지영 에듀케이터가 17일 서울 명륜동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견학을 온 초등학생들과 흙과 짚을 이용해 마을만들기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박물관의 교육기관으로서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놀이와 학습이 혼합된 박물관 교육은 학교 교육의 보완 혹은 대안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전문 분야로 나뉜 사립박물관은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사립박물관은 열악한 재정적 여건으로 내실 있는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에 한계를 안고 있다. 인병선 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은 “사립박물관 운영자들이 사명감을 갖고 각 분야에서 박물관을 만들어왔는데 계승하려다 보니 상당히 고충이 많다”면서 “학교만큼 중요한 교육기관으로 인정받는 것이 목표이지만 재정적 어려움으로 전문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인력을 갖추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사립박물관협회는 이런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 에듀케이터 지원을 요청해 올해 3월부터 시범적으로 57곳의 사립박물관에서 이를 운영하고 있다. 에듀케이터 인력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강인애 경희대 박물관·미술관교육 주임교수는 “큐레이터가 전시기획은 할 수 있지만 교육은 교육전문가가 필요하다”면서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이나 뉴욕현대미술관 같은 경우 오래전부터 에듀케이터를 활용해 학교 이상의 교육 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학생들이 학교의 억압된 질서와 규율에 갇혀 있다 박물관에 오면 자유롭게 배우고 놀면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며 “학교 교육의 대안으로서 박물관의 가능성을 대중이 인식하게 하고 그에 걸맞은 박물관 역량 강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듀케이터 제도의 필요성은 박물관 운영자와 정부, 학계의 공감을 얻었다. 올해 8억7000만원인 예산이 내년에는 22억원으로 확대되어 130개 사립박물관에 에듀케이터가 지원된다. 김인회 한국박물관교육학회 고문은 “다양한 문화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은 박물관에서 가능하다”면서 “박물관 현장의 경험과 교육적인 소양을 갖춘 에듀케이터와 이를 교육하는 박물관 교육 전공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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