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사라진 재벌의 자리, 남은 재벌이 채워 창업 성공신화가 없다”

안호기·조미덥 기자

(1) 경제민주화 - 무소속 안철수 캠프 장하성 정책 총괄

장하성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 캠프 정책총괄(59·고려대 교수)은 ‘재벌 해체’ 얘기에 대해 “해체라는 말 자체가 난센스다. 누구도 해체를 주장한 적이 없는데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주주자본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것에 대해서도 “왜곡하고 있다”며 부인했다. 장 교수가 작정하고 인터뷰를 한 것은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장기간 은둔에서 벗어난 계기는 안 후보 캠프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서울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장 교수로부터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정치 필두로 금융·노동법 등
재벌 말고도 개혁 대상 많다

▲ 도둑질 시킨 사람에게 원죄
총수 일가 반칙 처벌은 당연

장하성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 캠프 정책총괄은 지난 16일 서울 인사동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재벌 해체는 누구도 주장하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이 ‘재벌 없어지면 국민 다 죽는다’는 식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모두 잘돼야 한다”고 말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장하성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 캠프 정책총괄은 지난 16일 서울 인사동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재벌 해체는 누구도 주장하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이 ‘재벌 없어지면 국민 다 죽는다’는 식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모두 잘돼야 한다”고 말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이번 대선을 앞두고 모두들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있다.

“나도 놀랐다. 1996년 참여연대에서 경제민주화위원회를 만들어 소액주주 운동과 기초생활보장법 제정 등을 추진했을 때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빨갱이 아니냐’는 등 온갖 비난에 시달렸다. 그런데 16년 만에 좌파 우파를 가릴 것 없이 국가적 아젠다(의제)로 세팅됐다. 국가가 발전하고 성장하면 국민이 보람을 느끼고 성장의 결실을 함께 맛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격차가 커지기 때문에 경제민주화가 부각됐다. 경제민주화는 더불어 잘사는 것, 정의로운 것, 따뜻한 공동체, 이런 것이다.”

- 국가가 발전하고 있음에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데….

“1인당 국민소득이 올해 2만2000달러를 넘어선다고 한다. 2001년에는 1만1000달러였다. 개인 평균으로 보면 2배 정도 잘살게 된 셈이다. 그러나 격차가 심해지니 보통 사람들은 그 ‘2배’를 느끼지 못한다.”

- 기득권에서 더 많이 가져가기 때문인가.

“기업도 보면 재벌이 더 공고해졌다. 단순히 매출이 늘고, 계열사 수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창업하려는 사람이 재벌이 하는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다. 골목상권에까지 재벌이 뛰어들고 있다. 규모의 이슈가 아니라 구조적 이슈다.”

- 기존 틀을 깨는 핵심이 재벌개혁인가.

“재벌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개혁이 필요하다. 금융개혁도 필요하고 노동법, 산업구조, 세제 등 개혁의 대상이 많다. 사실 거대한 과제라 한꺼번에 다 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시도를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수차례 정권이 바뀌었지만 국민들은 이 구조로는 안되겠다고 여기고 있다. 정치개혁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 재벌개혁은 과거 정부에서도 시도했지만 제대로 못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16개인가 재벌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 재벌이 사라진 틈을 새로운 기업이 커서 메꾸거나 새로운 창업자의 성공신화로 메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사라진 재벌’이 비운 공간을 살아남은 재벌들이 채우면서 재벌이 더 커져버렸다. 한국에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성공신화가 없다. 창업 성공신화가 없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 주주의 이익을 옹호하는 주주자본주의 운동을 했는데….

“주주도 아닌 사람이 대주주로 행세하는 걸 문제 삼은 것이었다. (일부) 주주가 하는 여러 가지 나쁜 행태를 바로잡고자 했다. 대안만 있다면 주주 다 없애는 것에 적극 찬성한다. 주주자본주의라는 건 사실 모호한 단어다. 소액주주 운동할 때 10주 가지고 했다. 그 권리로 이건희 삼성 회장 상대로 소송을 냈고, 8년 반을 대법원까지 가 혼자 싸웠다. 하지만 주주자본주의를 비판한 사람들이 대안 내놓는 걸 못 봤다. (나에게 주주자본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오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 왜곡하는 것이다.”

- 안 후보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얘기했다.

“이해관계자는 여럿인데 주주와 채권자, 노동자, 소비자, 공급자, 그리고 정부가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서는 누가 주인이 되느냐부터 정해야 한다. 주주가 나쁜 사람이라면 빼면 된다. 쉽게 말해서 노동자가 주인 되는 회사를 만들자고 한다면 대찬성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자본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의 문제다. 주주를 제외했으니 돈을 빌려서 회사를 설립해야 하는데 그럼 채권자본주의가 된다. 채권자본주의에서는 돈 빌려준 측에서 ‘돈 갚아’ 하면 회사가 끝나고 만다. 그래서 노동조합, 협동조합이 좋은 제도라고 본다.”

- 재벌개혁 얘기가 나오면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을 해체하자는 거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해체라는 단어 자체가 난센스다. 재벌 해체를 주장한 사람이 누구인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오해를 하게 만들고 있다. 기득권 세력이 그렇게 몰고 가는 것이다. 이거(재벌) 없어지면 니들(국민) 다 죽는 거다 이런 식이다. 삼성전자가 망하면 한국도 망한다. 삼성전자 지켜야 한다. 현대차도 잘돼야 한다. 미국 같은 메이저 마켓에 한국 기업이 뛰어들어서 성공한 사례는 사실 현대차 하나뿐이다.”

- 재벌의 문제점은….

“왜 재벌 그룹마다 호텔을 갖고 있나. 어떤 호텔은 객실 사용률이 100%를 넘는다. 계열사가 도와주는 게 뻔하다. 재벌마다 백화점도 갖고 있다. 꽃배달 서비스 회사를 은밀하게 갖고 있는 재벌도 있는 것으로 안다. 자기 그룹에서 화환 보내고 조화 보내는 것만으로도 장사가 되는데 굳이 남 줄 이유가 없다. 그런 걸 하지 말라는 걸 재벌 해체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의도가 뭔지 의심스럽다.”

-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쉽게 설명해달라.

“동네 부잣집이 농사를 짓는다고 하자. 소작인도 있고, 정미소와 쌀가게도 갖고 있다. 거기까지는 괜찮다. 근데 동네 이발소, 구멍가게, 버스도 전부 부잣집 소유다. 거기까지도 봐줄 수 있다. 그런데 파출소장은 그 집안 조카고, 면장은 사촌, 신문사 사장은 사돈이라고 하자. 그 집안으로 보면 효율성이 아주 높지만 그 동네는 뭐가 되나. 우리 사회에서 재벌 구조가 갖는 힘이 경제·산업 쪽에만 그친다면 문제 풀기가 오히려 쉽다. 하지만 지금 정치·사회·법조·문화·교육 어느 한 곳 안 들어간 데가 없다. (재벌이) 전방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게 안 후보나 나의 생각이다.”

- 재벌지배가 더 심해지면 어떻게 되나.

“민주주의 자체가 무너질 것이다. 결국 부잣집은 더 잘살게 될 테고, 그 밑에 소작농이나 동네 사람들은 부잣집에서 얻어먹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부잣집 사람 이외에는 생전 자기 가게도 가져보지 못하고 도전하지도 못하는 위험한 구조로 가는 거다.”

- 기업은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데….

“경제학 교과서의 ‘기업은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말은 틀렸다. 개인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문화와 가치를 존중할 의무가 당연히 있다. 기업도 당연히 사회의 가치와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아무렇게나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옛말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속담이 있는데 학생들에게 절대 그러면 안된다고 얘기한다. 개가 돈 번다고 정승이 될 수 있나. 돈은 벌 때부터 정당하게 벌어야 한다.”

- 재벌 총수 일가의 반칙에 대해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과징금이나 벌금과 같은 경제적 제재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실형을 살게 해야 한다’고 했다. 보통 주주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자주 드는 예가 미국의 엔론 분식회계이다. 세계적인 분식이라고 하는데 2003년 드러났던 SK와 분식 규모가 비슷하다. 엔론 관계자는 20년 넘게 실형을 받았는데, SK 최태원 회장은 집행유예로 나왔다. 시장경제질서는 둘째로 치더라도 사회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거다.”

- 한국은 경제사범에 대해 처벌이 관대한 편인가.

“(미국에서) 마이클 밀켄은 금융천재로 꼽힌다. 밀켄이 내부자 거래를 했다가 구속돼 종신형을 받았고, 벌금으로 거래금액의 10배가 부과됐다. 미국 사람이 한국 사람보다 정직하고 착한 게 아니라 법질서를 제대로 세웠기 때문에 법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내부자 거래 하나로 종신형을 받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구조는 정의롭지 못하다. 경제민주화 개념 중 하나로 정의로운 경제를 말한 것은 그런 차원이다. 물건을 훔쳐도 몇 개월 (징역형) 살아야 하는데 불특정 대상의 국민을 상대로 한 범죄자를 왜 그렇게 가볍게 처벌하나.”

- 개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법적 근거가 있나.

“최근 (공정위 조사에서) 신세계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 빵집을 도와주라는 총수 일가의 메모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중요한 대목이다. 미국에서는 ‘커튼 뒤에 앉아 지시한 자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판례가 있다. 기업도 책임이 있지만 그 책임을 총수 일가에 묻는 것을 왜 못하나. 살인교사는 살인한 행위를 한 사람만 처벌하는 게 아니라 시킨 사람도 처벌하는 것이다. 같은 논리다. ‘너 도둑질해’라고 시킨 사람에게 원죄가 있다.”

- 재벌권력이 성장한 것은 관료집단의 비호와 결탁이 있었기 때문 아닌가.

“초기엔 정치권이 재벌을 비호했다. 불과 10년 전 현금 100억원을 트럭에 실어 키를 넘겨주는, 전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은 5000만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직 대통령을 그 지경으로 만들 정도로 정치권과의 유착관계는 표면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 관료들은 그 구조 속에 스며들어 있지 않다. 심지어 판사조차도 그만두고 나서 법무법인에 가거나 기업 법률고문으로 가겠다며 자기 앞길을 생각하면서 일한다.”

- 개혁 대상이 너무 많다.

“김앤장 같은 경우도 개혁 대상이다. 원고와 피고 양쪽을 다 대리하는 구조 속에서 어떻게 법정의가 설 수 있나. 김앤장을 먹여살리는 건 다 재벌이다. 재벌이 다 사건을 거기에 준다. 소액주주나 일반 시민을 위해서 사건 수임해주는 법무법인이 있나. 과거 정경유착이라고 했던 것이 지금 관경유착으로 바뀐 건 그런 배경이다. 어떻게 금융감독원에 있다 나오면 금융기관 감사로 가나. 감사를 제대로 할 수 있나. 그래서 저축은행 사태가 난 것 아닌가.”

- 각 정권이 관료집단을 멀리했다가도 결국 실패했는데….

“다른 시각도 있지만 노무현 정부는 처음부터 관료체제로 시작했고, 관료의 포로가 됐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관료체제가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멀리했다. 관료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능력과 경험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 장하성은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 ‘재벌 저격수’로 유명하다. 1990년대 말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13시간 반 동안 ‘혈투’를 벌인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장하성 펀드’로 알려진 라자드 펀드의 고문을 맡아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을 공격하기도 했다. 세간에서는 장 교수에 대해 주주가치를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자’라고 했으나 본인은 “일부 주주들의 나쁜 행태를 바로잡고자 소액주주운동을 했다”고 해명했다.


<2012 대선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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