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안철수와 정치의 다운사이징

박상훈 |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공기업 경영이 방만하다고 민영화가 꼭 대안이 아니듯이, 또 정부의 예산 운용에 잘못이 있다고 감세가 최선이 아니듯이, 정치가 문제라고 정치를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 능사일 수는 없을 것이다. 좀 더 책임감 있는 공기업 운영 방안을 찾고, 때로 증세를 통해서라도 정부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정치 쇄신'의 길 역시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데서 찾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최근 안철수 후보가 내세운 정치개혁안이 '정치의 다운사이징'만 말한 것 같아 안타깝다.

[정동칼럼]안철수와 정치의 다운사이징

정치를 '기득권' 내지 '특권'과 동일시하고, '정치권'을 사회로부터 단절된 권역으로 소외시키는 언어 사용도 걱정스럽다. 우리가 권위주의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면, 정치는 누가 뭐라 해도 시민주권의 결과물이다. 아무리 부족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 많다 해도, 시민으로부터 합법적으로 주권을 위임받은 정당과 정치인을 대체할 권위체는 없다. 그렇기에 정치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정치인을 선출한 시민을 모멸하는 일이 될 때가 많다. 정치를 줄이라는 주장이 새로운 것은 물론 아니다. 한국정치를 3류도 아닌 4류라고 규정했던 삼성 이건희 회장의 주장이나, 전경련 내지 재벌연구소가 내놓는 정치개혁안을 관통하는 것도 같은 정치관이다. 정당과 국회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는 관료들이나, 정치를 야유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주류 언론들도 늘 같은 주장을 해왔다. 그러다보니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안에 대해 이들은 모두 "방향은 옳다"라는 말로 반기는 데 반해, 대조적으로 비판언론들만 나서서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벌어지게 됐다.

지금의 중앙당이 문제가 많고 국고보조금 지급 방식도 개선할 것이 많지만 그렇다고 방향을 축소하고 없애고 하는 식으로 갈 수는 없다. 많은 시민들이 안철수 후보에게 기대를 건 것은 그런 개혁을 원해서가 아닐 것이다. 복지와 재분배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다수가 되었듯이, 정치가 제 기능을 한다면 정치에 대한 공적 지원과 투자를 지금보다 더 늘려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수 시민의 진정한 의사라고, 필자는 믿는다.

파당적인 의견에 휘둘리지 않는 전문가들이 좋은 정책을 연구해서 정부를 운영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며 정당의 기능은 줄여도 좋다는 것이 이번 정치개혁안의 또 다른 기조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운영이 당파를 초월한 전문적 연구에 의해 계도될 수 있다면, 민관의 협치를 이끄는 효율적인 행정 기능만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괴롭지만 그것은 인간의 현실이 될 수 없다. 정치란 인간이 갖고 있는 싸움과 갈등, 적대의 요소를 비폭력적으로 표출하고 해결하고 통합하는 기능을 하며, 이미 안철수 후보도 정치적 싸움을 개시한 지 오래다. 정치적 결정은 늘 갈등적 상황 속에서 내려질 수밖에 없고, 해결하기 어려운 윤리적 딜레마에 봉착할 때도 많다. 전문가의 조사와 연구, 통계자료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정치적 결정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망상이다. 최종적으로 정치적 결정을 인도하는 것은 특정의 사회적 가치와 비전 내지 삶의 경험이고, 그것을 집단화한 것을 우리는 정당이라 부른다. 가난한 보통사람들에게도 평등한 자유가 보장될 수 있어야 좋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과, 실제로 그들을 대표하는 경험을 쌓아가면서 하나의 팀으로서 집합적 열정을 공유하는 조직적 실체를 형성해가는 과정 없이, 무슨 수로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안철수 후보는 이미 정치를 하고 있고 사실상의 정당이 되어 가고 있는 바, 현실 정치를 비난하는 것으로 '아웃사이더의 이점'을 계속 향유하려는 것은 불공정한 행위이다. 그 자신의 최대 미덕이 그러하듯, 잘못된 방향 설정이라면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이 한국정치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된다면 더 큰 기대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 정치의 여러 문제가 제대로 토론되고 개선되는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다.


Today`s HOT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황폐해진 칸 유니스 교내에 시위 텐트 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 폭우 내린 중국 광둥성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한국에 1-0으로 패한 일본
아름다운 불도그 선발대회 지구의 날 맞아 쓰레기 줍는 봉사자들
페트로 아웃 5연승한 넬리 코르다, 연못에 풍덩! 화려한 의상 입고 자전거 타는 마닐라 주민들 사해 근처 사막에 있는 탄도미사일 잔해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