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남자’ 문재인

김봉선 논설위원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어디쯤 자리할까. 3자 대결을 가상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 이어 3위다. 야권의 단일후보 선호도에서 대부분 안 후보에게 밀린다. 정책적으로는 가장 왼쪽이다. 보수 본색을 감출 수 없는 박 후보와 애매한 안 후보의 색채보다 진보적이다. 꼴찌든 왼쪽이든, 선이 굵고 분명하다. 중요한 건 이미지로 본 위치다. 가운데다. 새로운 것은 왼쪽으로, 오래된 것은 오른쪽으로 여겨지는 심리적 착시가 있다. ‘가운데’는 존재감이 떨어진다. 지지를 끌어낼 추동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문 후보의 지지율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늠자다. 정책의 선명성이나 제1 야당의 후보라는 배경 등을 감안하면 억울할 만하다.

주변 색깔이 낡아 보이는 탓이 크다. 민주당은 여당의 변장술을 당하지 못한다. 영입된 인사들도 발표 때만 반짝할 뿐 터줏대감들에게 자리를 내주곤 만다. 각계, 각층을 망라한 공동선대위원장이 238명에 달하지만 일하는 사람은 안 보인다. 고질인 친노 패권주의 비판을 의식하다 보니 탕평에만 골머리를 앓은 결과다. 선대위 산하 시민캠프 공동대표단에 임명된 고재영씨는 경기 군포에서 동네 빵집으로 기업형 프랜차이즈 빵집과 경쟁해 살아남았다. 그를 전면에 내세우지 못할 이유가 뭔가. 문 후보야말로 서민적 후보라고 치장할 필요도 없이 서민의 삶 그 자체를 살아온 이다. 낡은 더께가 창의적 사고를 가로막고 있다.

[경향의 눈]‘착한 남자’ 문재인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는 선대위 체제 출범에도 불구, 간판이고 얼굴이다. ‘이·박 담합’의 폐해를 자인했으나 건재하다. 최고의 전략가, 지략가로 대접을 받는다.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도 이 대표가 불을 지폈다. 야권후보 단일화론에 적색 경고음을 울린 패착이었으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문·안 두 후보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가치와 정책을 공유하기 위한 방향이어야 한다. 단일화 논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공세는 친노의 전략·전술일 수는 있어도 유권자의 생각은 아니다. 박 원내대표의 지략이 여당 인사들의 고개를 흔들 만큼 탁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소된 상태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내세운다 해도 그가 전면에 나선다는 건 불편하다. 적잖은 유권자들은 문 후보 뒤에 두 사람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지금은 대선이라는 비상 시기다.

후보 쪽으로 눈을 돌려도 엉성하다. 일정 관리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김대중기념사업회가 주최한 토론회에는 박 후보와 안 후보만 참석했다. 지방 일정을 들어 불참한 문 후보는 대신 보낸 동영상에서 “김대중은 노무현의 반쪽이자, 문재인의 반쪽이다”라고 했다. 와닿을 리 없다. 메시지 효과는 수용자의 판단에 달린 일이지 공급자의 의도대로 발휘되는 게 아니다. 강요된 메시지는 역풍만 부른다. 엊그제 광주 금남로에서 발표한 ‘호남 선언’도 예고와 달리 밋밋했다. ‘기득권을 버린다’는 메시지는 흐릿했고, 언어는 후보답지 않았다. 야당 후보는 도전자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노동 이슈인 현대차 비정규직의 철탑 농성장 방문도 안 후보에게 주도권을 내줬다. ‘서민 후보’인 그에게서 서민 냄새가 나지 않는다.

문 후보는 인품이나 도덕성에서 어떤 후보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여당이 문 후보 아들의 특혜 채용을 주장하며 청문회 개최를 요구했지만 보수언론조차 크게 이슈화하지 않고 있다. 현 정권이 몇 년에 걸쳐 문 후보의 뒤를 캐봤지만 ‘털어도 먼지가 안 나더라’는 얘기가 돌 정도이다. 유행하는 말로 ‘착한 남자’의 전형이다. 정책을 봐도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선관위가 질문한 10대 정책 의제 답변을 1차로 분석한 결과 3개는 반대, 7개는 찬성(1개는 조건부)으로 O, X를 분명히 했다. 박 후보는 조건부 찬성이 5개, 안 후보는 찬·반이 아닌 기타라고 답한 항목이 5개에 달했다. 검찰 개혁안은 핵심을 찌르고, 정치쇄신안도 현실적이다. 불행히도 인품과 도덕성은 지도자로서 마이너스 요인이 아닐 뿐 결정적 플러스 요인은 되지 못한다. 정책도 중요하지만, 준비된 유권자들에게만 소구력이 크다는 한계가 있다.

대선은 ‘누가 누가 착하나’를 가리는 마당이 아니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굴욕도 감내할 수 있는 ‘나쁜 남자’의 기질이 필요하다. 결단력과 카리스마가 요체다. 문 후보가 유일한 서민 후보라는 자산을 갖고도 대중의 기대를 묶어내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결단력이 가장 문제다. 친노 9인의 퇴진만 해도 당초 반대했다고 한다. 4·11 총선때도 한 후보의 진퇴를 결정하는 데 사흘을 번민했다는 문 후보다. 최우선 과제는 이·박 담합체제를 깨는 일이다. 경선 2위를 한 손학규 전 의원을 전면에 내세우고 영입 인사들을 총동원해 새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민주당 후보가 된 이상 핵심 지지기반인 호남의 마음을 붙잡는 책무도 그의 몫이다. 대권 고지에 다가서고 싶다면, 후보 자리 말곤 다 걸어야 한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가 절반이 넘는다는 지금 그는 제1 야당의 후보다. 무엇이 두려운가. 권력은 ‘착한 남자’의 차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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