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강정기지 해법도 틀렸다

이중근 정치부장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가 지난 2일 하루에 두 개의 굵직한 국책사업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오전에는 안 후보 캠프가 환경·에너지 공약을 발표하며 4대강 공사에 대한 정책을, 오후엔 안 후보가 직접 제주 강정마을을 방문해 해군기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안 후보의 정책관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하면서도 논란이 있는 발표임에도 애매하게 표현한 때문인지 묻혀가는 느낌이다.

안 후보 측의 4대강 사업에 대한 발표를 요약하면 ‘4대강 사업 중단 - 환경영향평가 등 재검토 - 복원 여부 결정’이다. 대통령이 되면 일단 공사를 멈춘 뒤 원점 상태에서 보 설치 등 4대강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재검토한 뒤 보를 부술지 말지 등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안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필자와의 통화에서 “4대강을 복원한다는 것이고, 보를 어떤 방법으로든 처리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보가 4대강 환경을 파괴한다는 판단이 나오면 부수거나 형체만 남겨놓고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를 한꺼번에 다 부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시정하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캠프는 설명했다. 22조원을 들여 다 만들어놓은 보 등을 부수겠다는 엄청난 공약이다.

[아침을 열며]안철수, 강정기지 해법도 틀렸다

그런데 안 후보는 같은 국책사업인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서는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안 후보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문제, 과정상의 많은 문제들이 있었던 것 같다”며 “(이런 절차상의 문제와) 처음 약속한 것과 다르게 진행된 부분에 대해 책임 있는 정부와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여러 정부에서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며 “이념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국제환경도 지난 20년간 많이 바뀌었는데 (여러 정부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면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있는 것이 안보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결론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절차에 문제가 있지만 기지는 건설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안 후보는 자신이 이 같은 결론에 도달한 논리도 밝혔다. 그는 “해군기지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들이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운, 굉장히 국가안보상의 정보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해군기지 사업에 대한) 고급 정보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강정마을 주민들을 만난 것은 높이 평가한다. 민감한 현안을 비껴가지 않고 갈등 현장에서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은 것은 박근혜 후보나 문재인 후보가 못한 일이다. 그러나 해군기지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평소 그가 말해온 ‘상식에 입각한 해결’과 다르다. 당장 해군기지 건설의 필요성에 대한 고급 정보가 없다면 당선된 후 이를 받아보고 결정하면 된다. 이곳이 미군의 기지로 쓰여서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할 염려가 있는지 없는지를 정권 인수 과정에서부터 따져보면 될 일이다. 또 대통령은 이전 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나라 안팎의 정세변화를 폭넓게 짚고, 이해 관계에 얽혀있는 군 지휘부와 안보정책 관료들의 논리를 뛰어넘는 식견과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안보상황이 달라졌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없던 미국과 맞서는 중국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변수도 감안해야 한다. 덧붙여 이미 완성이 된 4대강 보를 부수자는 마당에 사업비가 4대강 공사의 20분의 1도 안되고, 공정률이 20%에도 못 미치는 해군기지 사업을 중단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안 후보의 4대강과 제주 해군기지에 대한 해법을 보면서 중도세력을 끌어안으려는 영리한 선택이라는 것 이상의 논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해군기지 필요성을 묻는 여론조사를 하면 제주도민을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찬성 의견이 높다. 4대강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이 높다. 확고한 국정 철학에 의한 정책이라기보다 다중의 생각을 따른 게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안 후보가 제주 해군기지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 그에 대해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하는지도 금세 나온다. 4대강 사업처럼 공사를 중단하는 게 맞다. 타당성을 재검토한 뒤 그래도 기지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주민들을 설득해 재추진하면 된다. 그런 모습을 원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고,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척척 하는 게 안 후보에게 기대하는 바이다.

최근 안 후보를 보면서 고개를 자주 갸우뚱거리게 된다.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자는 정책에서부터 과거 이당 저당을 오간 사람들을 쓰는 것을 보면서다. 진보적 지식인들 중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안 후보가 중도층을 공략하다 보니 정책의 전체적인 방향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좌우를 아우르면서 폭넓게 지지를 받으려면 모든 분야에 적용하는 기준과 원칙이 같아야 한다. 이것이 흔들리는 한 ‘안철수 대통령’은 불가능하다. 4대강에 들이댄 잣대를 제주 해군기지에도 똑같이 적용하는게 안철수다운 행동이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