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진중권 교수

■ 윤평중
이미 ‘아름다운 단일화’는 빛바래
가치동맹의 정치연합 실천이 중요

▲ 갈등의 봉합은 예정된 수순
단일화에 의한 정권 교체가
모든 걸 합리화할 시대 지나
관행의 질적 비약 이뤄져야

[윤평중·진중권의 대선비평 ‘판’](5) 문·안 단일화 재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중단상태였던 야권 단일화 협상을 오늘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역대 대선의 단일화를 복기해보면 이번 진통은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 새누리당이 비난하듯 극적 효과를 위한 쇼이든, 아니면 야권에서 주장하듯 아름다운 단일화를 낳는 산통이든 사태 수습은 예정된 거나 마찬가지다. 문재인·안철수의 이념적 정체성이 ‘두 지붕 한 가족’ 비슷한 데다, 각자 완주가 곧 대선 필패인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대선 패배의 후폭풍을 견디기 어렵다. 따라서 지난 며칠간의 충돌은 단일화를 앞 둔 두 사람의 전형적인 기싸움에 해당된다.

보수가 구조적 우위를 차지한 한국적 힘 관계에서 진보 후보들의 합종연횡은 불가피하다. 정작 문제는 다른 데서 발견된다. 역대 대선에서의 학습효과 때문에 야권이 원하는 만큼의 단일화 효과가 원천적으로 창출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화려한 쇼도 반복되면 질리기 마련이다. 문재인·안철수의 카리스마는 이전의 단일화 사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이야기의 흐름과 결말이 알려진 ‘단일화 드라마’의 흥행성도 반감되고 말았다. 이런 맥락에서 단일화의 파괴력에 대한 야권의 소망은 과잉 기대에 가깝다.

야권에 단일화라는 결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가 이루어져도 정말로 힘겨운 본선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는 건 문재인·안철수 갈등이 지리멸렬한 샅바싸움으로 국민에게 비쳤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두 후보가 애당초 내걸었던 ‘아름다운 단일화’의 그림이 빛바랬다는 걸 뜻한다. 두 사람 모두에게 커다란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후보 단일화의 결과보다 그 과정이 결정적으로 중요해진 첫 선거가 2012년 대선이다. 이런 역사적 교훈을 경시함으로써 문재인·안철수는 단일화라는 기회를 위기로 추락시키고 있는 중이다. 1997년 김대중·김종필의 ‘DJP 연합’은 헌정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강력한 정당화 기제로 단일화 과정의 흠결을 압도했다. 2002년의 노무현·정몽준 연합에서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의 흡인력과 한 편의 연극 같은 선거 결과가 단일화 과정의 하자를 가려버린 바 있다. 이에 비해 2012년 단일화의 결과물은 극적 장치가 보태져도 한참 왜소한 것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단일화 과정이 결과보다 더 중요해진 것은 한국 사회가 그만큼 변화했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이 구사하는 민주·반민주의 대립구도는 평균적 시민에게 선명한 일상의 실감을 주지 못한다.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 들어 우심해지긴 했지만 김대중·노무현 진보정부 10년 동안에도 양극화는 악화돼왔다. 단일화로 달성될 정권교체라는 결과만으로 모든 걸 합리화할 수 있는 시대는 영원히 지나가고 만 것이다.

선거를 목전에 둔 후보 단일화는 정치의 예측가능성과 책임정치를 파괴한다. 정치 엘리트들이 벌이는 단일화 게임의 와중에 민주주의의 근본인 국민주권이 왜곡될 수 있다. 결선투표제가 없는 한국적 특수성을 인정한다 해도, 정치의 공식 문법이 되다시피 한 단일화 관행에 일대 질적 비약이 이뤄져야 하는 사활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일화의 질적 발전은 투명하고 감동적인 과정을 통해서만 확보가능하다. 정치적 책략과 싸구려 흥정 대신 나라의 장래를 멀리 보고 앞장서 희생하는 원대한 스케일의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가치동맹의 정치연합을 단일화 과정의 매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말꼬리를 잡고 얼굴을 붉히는 방식의 문재인·안철수 갈등이 국민에게 ‘깊은 실망’을 준 건 이 때문이다. 가장 치명적인 건 정권교체를 통해 달성한다는 ‘새 정치’ 모습이 지금까지의 ‘밀고 당기기’에선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새 정치라는 목표에 구태 정치적 수단으로 접근하는 건 일종의 본말전도다. 아름답기만 한 빈말로서가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게 새 정치의 본질이다. 단일화 과정이야말로 새 정치가 증명되어야 할 삶의 현장이자 생생한 리트머스시험지가 아닐 수 없다.

<윤평중 교수 | 한신대 철학과>

18대 대통령 선거가 31일 앞으로 다가온 18일 서울 종로구 인의동 선거연수원 외벽에 내걸린 역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 그림이 눈길을 끌고 있다. | 연합뉴스

18대 대통령 선거가 31일 앞으로 다가온 18일 서울 종로구 인의동 선거연수원 외벽에 내걸린 역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 그림이 눈길을 끌고 있다. | 연합뉴스

■ 진중권 교수
유권자는 ‘통큰 양보’에 후한 점수
둘의 장점 합친 ‘제3 후보’가 돼야

▲ 정당정치에 대한 인식 차도
나흘간의 협상 중단 한 원인
단일화 결과는 특정후보보다
미래·비전 갖춘 협력이 우선

[윤평중·진중권의 대선비평 ‘판’](5) 문·안 단일화 재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18일 저녁 전격 회동하여 3개항에 합의함으로써, 막혔던 안철수 캠프와 문재인 캠프 사이에 단일화 협상의 길이 다시 열리게 됐다. 3개항의 내용은 협상 중단 전에 이미 합의된 것과 다르지 않다. 잠시 멈췄던 기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할까? 그래도 민주당의 이해찬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사퇴함으로써 민주당의 쇄신이 가시화한 것은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두 후보는 또 지난번에 가합의를 해놓고도 발표하지 못한 새정치 공동선언에도 합의해 내용을 공개했다.

단일화 협상이 잠시 삐걱거린 것은 물론 두 후보 사이의 팽팽하던 저울이 최근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리라. 아무래도 조직이 없는 안철수 캠프에서는 상대의 조직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자, 이를 시급히 견제해야 했을 것이다. 지지율 하락을 저지하면서 동시에 민주당의 쇄신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철수 캠프로서는 이를 통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다.

두 캠프가 가진 성향의 차이에서 나온 오해도 이 알력에 한몫했을 것이다. 여러 번 말했듯이 두 캠프는 ‘정당정치’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다. ‘정당정치’의 틀 내에서는 관행적으로 해 왔던 일도, 안 캠프의 눈에는 부당하게 비칠 수가 있다. 반면 문 캠프로서는 그런 것에까지 시비를 거는 안 캠프 측이 유시민씨의 말대로 “어깨 한번 밀었을 뿐인데 드러누웠다”고 말하고 싶을 게다.

하지만 이 모든 피상적 사안들보다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원칙’의 측면이다. 안철수 후보는 출마의 명분 중의 하나로 대한민국의 소모적인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을 개혁하겠다는 것을 내걸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인적쇄신 없이 하나가 될 경우, 자신이 그다지 변하지 않는 민주당 속에 흡수되어 소멸되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 경우 자신이 출마한 의의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대선 후보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철수 후보에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자신이 그동안 사회에 던졌던 메시지가 구체적인 변화로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안 후보로서는 자신으로 인해 정당정치의 문화가 조금이라도 변했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면, 설사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어도 자신이 사회에 던진 화두를 실현하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데에는 이런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충분히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가 가져야 할 것은, 자신의 캠프는 아직 조직이 없어 그저 요구만 하면 그만이지만, 문재인 후보로서는 제각기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100여명의 의원을 가진 조직에서 그것을 실천할 부담을 진다는 사실에 대한 넓은 이해다.

문재인 후보가 단일화 방법에 관한 선택을 안 캠프에 양보하겠다고 말했다. 훌륭한 선택이다. 언젠가 “먼저 비우는 잔이 채워질 것”이라 쓴 바 있다.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를 놓고 아직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은 통 큰 양보를 한 후보에게 후한 점수를 줄 것이다. 유권자들은 조직의 우세로 인해 결과가 뻔히 보이는 게임보다는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열린 게임을 원한다.

어차피 단일화는 이루어질 것이며, 한 사람이 최종적으로 야권 대선후보로 뽑힐 것이다. 하지만 ‘단일화의 결과’라는 말을 ‘누가 후보가 되느냐’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단일화의 결과’는 두 캠프의 시너지 효과, 즉 문재인 후보의 국정경험과 정당후보로서 갖는 안정감에 미래와 세계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안철수 후보의 안목이 결합된 ‘제3의 후보’여야 한다.

단일화 과정의 아웃풋은 특정한 후보가 아니다. 최종 아웃풋은 두 세력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대한민국의 비전이며, 그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두 세력이 생산적이며 창조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이것이 두 캠프에 유권자들이 바라는 것이다. 두 캠프의 상호 인내와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 분발을 바란다.

<진중권 교수 동양대 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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