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출산’과 표현의 자유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사려 깊은 표현의 자유’를 생각해본다. 이념·정책과 권력을 두고 갈등하는 정적 역시 인간적 존엄성을 누려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표현의 자유 말이다. 그래서 정적에 대한 비판이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과에 대한 성찰과 숙고를 끌어내는 지혜로운 표현의 자유 말이다.

홍성담 화백의 일명 ‘박근혜 출산 그림’이 논란이 되고 있다. 홍 화백의 그림은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선글라스를 쓴 아기를 막 낳은 광경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에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얼마 전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의료드라마의 주인공(최인혁)인 의사 한 명이 아기를 보며 거수경례를 붙이고 있다. 언론 인터뷰와 보도에 따르면, 홍 화백은 박 후보의 출산설에 착안해 박 후보의 이상스러운 처녀성과 신비주의의 가면을 벗겨 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의사가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것은 최인혁 같은 의사다운 의사마저도 독재자를 닮은 갓난아기 앞에서조차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유신 시대의 트라우마를 의미한다고 했다.

[경향시평]‘박근혜 출산’과 표현의 자유

홍 화백은 특정 후보를 비방한 것으로 공직선거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 정도 표현의 자유도 없다면 국적 포기 선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화백의 표현의 자유는 결코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대한민국이 헌법에서 표방하고 있는 바와 같이 민주공화국인 이상 그러하다.

하지만 난 ‘국가폭력과 싸우는 미술가’라 칭해졌던 그의 이번 작품과 자유관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확인할 수 없는 ‘설’에 기대어 개인의 내밀한 삶의 영역에 대해 ‘모욕의 화법’을 쓰는 ‘고작 그 정도’의 표현의 자유에만 안주한 게 아닌가 싶어서다.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에 대한 혹은 그림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거부감을 더 키우면서 논란만 일으키고 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 미술학 교수는 홍 화백의 그림을 풍자 미술의 시도라는 측면에서는 주목할 수 있다고 했다. 박 후보가 낳은 아기를 박정희 전 대통령인 것처럼 묘사한 것이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유신독재의 부활을 의미한다는 혹은 박 후보는 결코 흉포한 유신독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홍 화백 나름의 풍자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난 그의 풍자가 인간적 삶의 애환을 담고 있는 출산의 장면을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단지 ‘추상적 형상’으로 취급하는 우를 범함으로써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즉 그의 풍자에는 ‘위트’, 즉 지혜가 담겨 있는 것 같지 않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과 <1984>의 저자로서 전체주의 권력의 끔찍한 속성을 폭로하고 경고한 작가로 유명하다. 그런 조지 오웰이 1930년대 중엽의 대표적 참여 시인이라는 오든을 <고래 뱃속에서>라는 에세이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비판의 이유는 오든이 스페인 내전을 다룬 ‘스페인’이라는 시에서 군인들의 죽음을 공산주의라는 대의를 위한 ‘필요한 살인’으로 묘사한 것에서 찾아졌다. 즉 오웰은, 그런 식의 묘사는 살해된 사람들의 시신들을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목격한 보통사람들의 느낌을 전혀 고려치 않고, 살인을 그저 하나의 추상적 단어로만 접한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홍 화백의 풍자에서 오웰이 통렬히 비판한 오든의 시어를 연상한 것이다.

박근혜 후보를 인간을 모욕하는 혹은 모욕할 개연성이 높은 ‘괴물’로 여기고 그리 표현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유의할 것이 있다. 그 괴물을 물리치기 위한 힘은 결코 ‘모욕의 화법에 기댄 위트 없는 예술적 풍자’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힘은 단연코 보통사람들의 넓고 깊은 공감에서 나온다. 이를 위해서 예술은 정치적 메시지의 표출보다는 인간의 정서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우선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예술이라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사려 깊은 표현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Today`s HOT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한국에 1-0으로 패한 일본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폭우 내린 중국 광둥성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교내에 시위 텐트 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 황폐해진 칸 유니스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개전 200일, 침묵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