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인물탐구

(1) 내 인생의 순간들 - 박근혜

이지선 기자

부모님 모두 총탄에 잃었을 때 “가슴에 큰 구멍 뚫린 듯 찬바람”

“가장 아팠던 기억은?” “부모님 모두 총탄에 돌아가셨을 때.”

“가장 즐거웠던 때는?” “부모님 생전에 가족들과 함께했을 때.”

2007년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박근혜 후보가 내놓은 <90문 90답>을 보면 가장 아팠던 순간과 가장 즐거웠던 순간 모두에서 부모님이 등장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총격에 잃은 두 사건은 그의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다. 이후 2006년 박 후보 본인도 얼굴에 흉기 테러를 당했다. 스스로 지금은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올해 초 예능프로그램인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서는 “오죽하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겠느냐”며 가족들이 오손도손 사는 모습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이처럼 남다른 인생 경로를 택한 박 후보 인생의 순간들은 어떤 모습일까. 경향신문은 박 후보 측에 직접 인생의 순간들을 꼽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에 박 후보가 2007년 펴낸 자서전을 중심으로 인생의 순간들을 짚어 봤다.

[대선 후보 인물탐구](1) 내 인생의 순간들 - 박근혜

박 후보의 어린 시절은 ‘청와대, 마당 넓은 집’으로 기억된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따라 서울 생활을 시작한 박 후보는 처음에는 장충동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공관에 있다 청와대로 이주했다. “각자 방이 생기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집무실이 생긴 게 가장 달라진 부분”이었지만 “아이들이 지내기에는 심심한 공간이었다”는 것이 박 후보 회고다. 박 후보에게 박 전 대통령은 “가족에게 더할 수 없이 다정한 분”이었고 “매사 사려 깊고 부드러우며 확신에 찬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22세 때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박 후보는 인생의 첫 비극을 맞는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1974년 8월15일 문세광에게 피살된 것이다. 박 후보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찬바람이 불었다. 밥을 먹어도 허기가 지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한동안 산송장처럼 지냈다.” 이후 박 후보는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다.

비극은 다시 찾아왔다. 박 전 대통령이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피살된 것이다. 박 후보는 자서전에 박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시간을 이렇게 썼다.

“핏물이 가시지 않은 아버지의 옷을 빨며 남들이 평생 울 만큼의 눈물을 흘렸다. 죽을 만큼 힘든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후 박 후보는 주변 사람들의 배신으로 권력의 쓴 맛을 봤고 “아버지에 대한 재평가 작업”에 매진했다.

그러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1998년 4·2 재·보선에 출마하는 것으로 박 후보는 정치인생을 시작한다. 여권 실세 엄삼탁씨와 맞붙어 승리한 이 선거를 박 후보는 자서전에 ‘달성대첩’이라고 적었다. 박 후보는 지난달 11일 선거대책 회의에서도 당시를 예로 들며 “선거 전날까지도 모든 방송과 신문에서 20% 이상 진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진정성을 갖고 끝까지 뛰어 압승을 거뒀다”고 결기를 강조했다.

16대 대선을 앞둔 2002년에는 이회창 총재 1인 지배체제에 대응해 집단지도체제 도입, 국민참여경선 실시 등의 정치개혁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선 직전 복귀한 뒤 이어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과 차떼기 정당 오명에 휘청거리는 한나라당 구원투수로 전면에 나선다. 2004년 대표 취임 이후 “난파선의 선장”이 된 박 후보는 천막당사로 옮기고 연수원을 매각하는 등 당 개혁 작업을 실시하고 총선에서 121석을 확보한다.

‘선거의 여왕’이던 야당 대표 박 후보는 2006년 5월20일 서울 신촌에서 지방선거 유세 중 피습당해 큰 수술을 받았다. 자서전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나의 삶은 2006년 5월에 1막을 내렸다”고 적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덤”이라는 것이다.

박 후보는 2007년 첫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지만 이명박 후보에게 고배를 들었다. 불과 2000여표 차 패배였고 사실상 대선이라 불릴 만큼 치열한 경선이었지만 박 후보는 깨끗이 승복했다. “저 박근혜,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경선 과정의 모든 일들, 잊어버립시다. 하루아침에 잊을 수가 없다면 며칠 몇 날이 걸려서라도 잊읍시다.”

5년 뒤 2012년 박 후보는 패배 승복연설이 아니라 후보 수락연설을 했다. 박 후보는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 저에게는 큰 영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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