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인물탐구

(5) 화법 - 박근혜

이지선 기자

화려한 수사보다 절제된 강렬함 표출

명쾌한 단답형 표현엔 ‘권위적’ 평가

“박근혜는 노무현이나 빌 클린턴 스타일의 화려한 수식어 또는 친근감보다 절제된 단순함과 단아함, 무게감을 표출한다. 마치 한편의 (일본의 짧은시) 하이쿠를 보는 것 같다.”

진보성향의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2010년 출간한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책 <박근혜 현상>에서 김헌태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박근혜 후보의 화법을 하이쿠에 빗댔다. 하이쿠는 일본 단시(短詩)를 말하는 것으로 짧은 문장에 응축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특징이다. 박 후보 말이 그만큼 간결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준다는 이야기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6년 테러 피습 당시 병상에서 격전지였던 대전의 판세를 물어본 “대전은요?”다. 이후 병원에서 퇴원한 박 후보는 바로 대전으로 달려갔고 당시 한나라당은 승리를 거머쥐었다. 2007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할 당시 박 후보는 “참 나쁜 대통령” “국민이 불행하다”는 짤막한 논평만을 냈다. 2008년 3월 총선 공천에서 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대거 밀려나자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직공했다. 1979년 10·26 사건 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은 박 후보가 “전방에는 이상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대선 후보 인물탐구](5) 화법 - 박근혜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1999년 ‘인물과 사상’ 13호에 쓴 글에서 “박근혜는 말에 군더더기가 없다. 누구나 쉽게 알아들으므로 말 바꿈의 여지도 없다. 높낮이가 없어 대중을 휘어잡지 않는다. 다만 가는 방향이 뚜렷하다. 조용히 스며드는 물과 같다. 믿음은 거기에서 생긴다”고 평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박 후보의 화법을 ‘응축된 단문단답형’이라고 분석하면서 간단명료하지만 핵심을 묻는다고 분석했다.

[대선 후보 인물탐구](5) 화법 - 박근혜

하지만 이런 단답형 화법이 때로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난해 ‘안철수 열풍’에 대해 질문한 기자를 향해 “병 걸리셨어요?”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튿날 박 후보는 “(전날) 제가 입장을 밝혔는데 같은 질문을 또 하시더라. 그래서 농담으로 했는데 표현이 적합하지 않았다”고 사과했다. 또 지난해 말 비대위원 인선안이 발표되기 전에 언론에 보도되자 “지난번엔 촉새가 나불거려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당 관계자들은 공천심사위원들 인선안 보안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듣기 좋고 명쾌한 화법을 구사하는 반면 이를 ‘권위주의적’이라고 분석하는 경우도 있다.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 한겨레말글연구소가 주최한 대통령 후보 언어평가 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박 후보는 “제왕적, 권위주의적 표현이 잦다”고 지적됐다. 정몽준 공동선대위원장은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내가 (세종시) 특위 필요성을 설명하자 박 전 대표는 갑자기 화난 사람처럼 ‘허태열 최고와 상의하세요’라고 높은 톤으로 소리를 질렀다. 마치 ‘아랫사람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투로 들렸다”고 썼다. 당시 박 후보 측은 자서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또 다른 선대위 관계자도 박 후보가 지난달 26일 국민면접 TV토론에서 일부 언론의 사진 기사를 두고 “악랄하게 유포를 시켰다”는 표현을 쓴 것을 예로 들며 “박 후보가 강한 단어를 종종 쓴다”고 했다.

박 후보는 원고를 그대로 소화하는 스타일이다. 애드리브도 거의 없다. 힘을 주어야 할 곳에서는 ‘첫째, 둘째’ 등을 언급하며 손가락을 꼽거나 주먹을 쥐고 연단을 치는 등 제스처를 사용한다. 차분하고 단호하지만 단조롭고 밋밋하다는 평도 있다.

본인이 좋아하는 표현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경향도 있다. ‘100% 대한민국’ ‘국민 행복’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대선 출마선언문에서도 ‘국민’은 80번, ‘행복’이란 단어는 26번 등장했다. 이어 ‘여러분’은 24번, ‘꿈’은 18번가량 쓰였다. ‘신뢰’ ‘믿음’ ‘책임’ 등의 단어도 즐겨 쓴다.

지역 유권자들을 상대로 하는 대중 연설에선 지역색이 묻어나는 사투리를 쓴다. 제주를 찾았을 때에는 “제주도민 여러분 안녕하오십까. 박근혜이우다”라고 인사하고 “저는 여러분의 ‘괸당(친척을 두루 일컫는 제주도말)’ ”이라며 지지를 호소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대구의 노인회관을 찾았을 때에는 사투리로 농담을 했다. “지하철에서 한쪽에는 서울 학생들이 있고, 다른 쪽에는 경상도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경상도 사투리는 언뜻 들으면 싸우는 것 같지 않냐. 서울 학생들이 ‘거기 좀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말했고, 경상도 학생들이 ‘이 칸이 마 다 니 칸이가’(이 칸이 다 너희들 것이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서울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거봐,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했잖아’라고 했다더라.”

지난 7월14일 전남 나주의 한 노인회관에서 한 주민이 “얼굴이 징하게 이쁘요이”라고 말하자 “ ‘징하게’와 ‘겁나게’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박 후보가 가장 좋아하는 전라도 사투리를 “아이고~어째야 쓰까잉~”(자서전)이라고 소개했다. “너무도 정감 어리다”는 것이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