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인물탐구

(9) 롤모델·리더십 - 박근혜읽음

이지선 기자

불행 이겨낸 엘리자베스 1세와 비슷

당 어려울 때 구원 등판, 위기에 강해

“엘리자베스 1세는 파산 직전의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다. 그는 어려서 고초를 많이 겪었다. 그 시련을 다 이겨내고 지도자가 됐다. 자기가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관용의 정신을 갖고 합리적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8월14일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 5명이 출연한 MBC <100분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는 “롤 모델로 삼는 정치인과 그 이유를 밝혀달라”는 공통 질문에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을 꼽았다.

박 후보와 엘리자베스 1세는 어린 시절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는 점이 비슷하다. 튜더 왕조의 헨리 8세와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의 딸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는 어머니가 간통 반역죄로 참수된 어두운 과거가 있다. 엘리자베스 1세도 런던탑에 유폐되어 연금 상태로 지내는 어려움을 겪었다. 박 후보는 최고 권력자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흉탄에 잃었고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18년 동안 은둔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대선 후보 인물탐구](9) 롤모델·리더십 - 박근혜

▲ 여성대통령론에 “여왕 대통령” 비판
2인자 안 두는 용인술 박정희와 닮아

둘 다 결혼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1세는 결혼을 권유받을 때마다 “과인은 국가와 결혼했다”면서 평생 독신으로 보냈다. 박근혜 후보도 마찬가지다. 결혼은 언제쯤 할 거냐라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박 후보는 “이미 나라와 결혼했다”고 답하곤 했다.

박 후보는 리더십 측면에서도 엘리자베스 1세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 작가 앨런 엑슬로드는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 1세>에서 엘리자베스 1세를 ‘준비된 여왕’이라고 묘사했다. 남녀 평등이 확립되지 않은 시대에 한 런던 시민은 엘리자베스 1세를 처음 보고 깜짝 놀라 “맙소사! 여왕이 여자라니!”라고 외쳤다는 일화도 책에 소개된다.

엘리자베스 1세는 이런 상황을 반전에 사용했다고 한다. 어느 외교관이 엘리자베스 1세의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칭찬하자 “여자에게는 말하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말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게 더 어렵다”고 받아치는 식이다.

박 후보의 대선 캐치프레이즈는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다. 박 후보는 “여성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이자 정치쇄신”이라고 강조한다.

여성대통령론에 대한 반박도 있다. “박근혜 후보를 거의 여왕으로 만드는 대선 레이스에 들어간 것 같다. 우리나라가 봉건 왕조시대로 돌아간 게 아닌가”(민주통합당 이해찬 전 대표), “박근혜 대통령론은 여성대통령론이기보다 여왕 대통령론”(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위기에 강한 리더십이라는 점도 닮아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즉위하자마자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종교 문제에서 중용 노선을 걸어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립을 해소했다. 의회와 타협해 권력을 안정시킨 뒤 화폐 개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국내 안정을 바탕으로 후반기에는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릎꿇렸다.

박 후보도 위기에 강한 리더십을 보유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연설 등을 통해 자신을 경험 많은 선장에 비유하면서 “우리나라는 큰 위기에 있다. 경험 많은 선장은 파도 속으로 들어가 (위기를) 이겨낸다”고 말했다.

실제 새누리당이 어렵다는 선거 국면마다 증명된 경우도 있다. 2004년 탄핵 역풍을 맞은 당시 천안 연수원 국가 헌납 등의 조치를 취하고 대대적 물갈이로 한나라당을 존폐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재·보선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선거의 여왕’으로 떠올랐다. 이명박 정권 인사들의 잇딴 구속과 당내 비리 등으로 다시 당이 위기에 처하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다시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당을 뜯어고쳐 새누리당으로 출범시켰고, 대선 후보직을 거머쥐었다.

2007년 박 후보는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철의 여인’이라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꼽았다. 2007년 3월 ‘위기의 대한민국, 대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 후보는 축사에서 “위기의 대한민국을 살릴 리더십은 영국병에 신음하던 영국을 되살린 대처리즘”이라며 “대처 총리가 영국을 살려낼 수 있었던 힘은 ‘시대에 맞는 원칙’이었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그 원칙으로 과감하게 공공부문을 구조조정해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만들고, 감세와 규제 철폐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후보가 주장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우자)’ 공약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바로 대처 리더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처 리더십은 현재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등을 내세우고 있는 박 후보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2007년 박 후보가 작성한 90문90답에는 대처와 함께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아버지’를 꼽았다. 박 후보는 지난해 12월 경향신문 ‘이상돈·김호기의 대화’에 나와 멘토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아버지”라고 답했다. 그는 “아버지는 고뇌하시고 현장 가서 지시하고, 정책을 발표하고 현장에서 실행되는지 계속 확인을 많이 하셨다. 아버지가 갖고 계신 역사관이나 안보관, 세계관을 들으면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도 용인술 등 박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사람을 쓸 때 신뢰를 가장 중시하는 것도 아버지가 측근에게 배신당한 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2인자를 두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박 전 대통령의 후광은 박 후보를 보수의 화신 지위에 올렸지만, 그만큼 그림자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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